게임 비평의 안타까운 현실
지하철 출퇴근길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걔 중에는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게임을 즐깁니다. 가끔 닌텐도 스위치로 무언가를 하는 이도 종종 봅니다. 한국 사람들은 게임을 참 좋아합니다. 아무리 마켓 규모가 작은 나라라곤 해도 앱 스토어, 스팀 매출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지요.
인터넷엔 게임 공략도 수두룩합니다. 로스트아크 xx 패턴 분석, 포켓몬고 복귀 가이드, 우마무스메 인자작 방법 등등 각양각색이죠. 커뮤니티도 활발합니다. 너무 활발하다 못해 제작자에 대한 욕설은 물론, 심심찮게 싸우는 사람들을 봅니다. 대상을 희화화하고 깎아내리는 게시물도 많습니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게임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겠지요. 그래도 세상 모든 글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게임에 대해 진지한 비평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 게임 리뷰의 절대다수는 구매 가이드용 글입니다. 이는 해외 사이트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결국 뷰는 출시 초기, 그 게임이 궁금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거니까요. 몇 년 전 게임을 진지하게 다뤄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멀어진 지 오래인데요.
게임은 음악, 영화 산업과 달리 역사가 짧습니다. 18세기 슈베르트가 한창일 때도 평론가는 있었습니다. 영화의 현대적 비평 역시 지금으로부터 최소 50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에 비하면 게임은 코찔찔이 꼬맹이죠. 게임의 역사는 이제 겨우 50년을 넘겼는걸요. 게임 평론은 걸음마를 뗀 단계입니다. 게임 리뷰도 어느덧 30여 년, 그럼에도 평론이라 하기에는 많이 미숙합니다.
얼마 전 <디아블로 4>가 발매되었습니다. 닌텐도 게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대작들은 발매 일주일, 길게는 이주 전에 리뷰 카피를 뿌립니다. 웹진들은 선행 체험을 통해 <디아블로 4>가 어떤 게임인지를 확인합니다. 정식 발매를 앞두고 엠바고가 풀립니다. 마구 터져 나오는 리뷰들, 사람들은 기사를 읽고 기대감을 부풀립니다. 극단적으로는 웹진들의 합산 점수만 보고 게임을 평가하기에 이르죠. 이건 리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FIFA 시리즈의 오버올이 그렇지요. 세부 스탯을 신경 쓰는 사람은 줄어들고, 평균으로 뭉뚱그린 점수로 무언가를 평가하는 시대입니다.
<디아블로 4>는 메타크리틱 86점(PC판), 오픈크리틱 88점을 받았습니다. 출시 초기에는 88~89점을 왔다 갔다 했을 정도죠. 이 정도면 must-play급에 준하는 성적인데요, <디아블로 4>에 대한 여론은 냉담합니다. 유저들은 가열찬 비난을 가하다 못해, 다시는 블리자드 게임을 사지 않겠다고 벼릅니다.
이는 현행 리뷰 방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전 리뷰 정책 상 낮은 점수를 주면 웹진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 출시된 <스타필드>가 그렇습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리뷰는 나중에 공개하고, 우호적인 웹진을 중심으로 판매량을 끌어올리려는 시도지요. 아예 리뷰 카피를 특정 매체에게 안 푸는 방법도 있습니다. 치사하게 나가면 끝이 없어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전 리뷰 방식은 온라인 게임을 평가하기에 부적합해요. 온라인 게임은 변화무쌍합니다. 어떨 때는 똥겜도 이런 똥겜이 없는데, 어느샌가 갓겜으로 칭송받지요. 예를 들어 <철권 7>을 리뷰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철권 7>의 스토리를 즐기고, 프랙티스에서 기술을 연습하고, 아케이드 모드에서 테스트합니다. 2P를 연결해 오프라인 대전을 즐겨도 좋겠죠. 열심히 기사를 써서 송고합니다.
이 기사에는 온라인 대전이 빠져있습니다. 온라인 대전은 <철권 7>의 핵심 컨텐츠인데도 사전 리뷰 구조상 체험할 수 없는 것이죠. 설령 사전에 온라인을 열어준다 해도 플레이어 수는 한정적입니다. 내 실력과 비슷한 대전 상대 역시 기대하기 힘들죠.
이윽고 정식 출시의 날이 밝았습니다. 유저 A는 대전 중 화를 참지 못하고 Alt+F4를 눌러 게임을 강제 종료합니다. 그런데 패배로 기록되지 않네요? 패배는커녕 어떤 불이익도 없었습니다. 발매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핵이 돌아다닙니다. 하단 공격을 반드시 막는 핵, 고난도 커맨드를 매크로로 사용하는 핵, 보스 캐릭터를 고르는 핵 등등 각양각색입니다. 이 문제는 <철권 7> 발매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는 숙제입니다.
유저들은 핵이 난무하고 서버 저장이 되지 않는 문제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리뷰 점수는 고정되어 있어요. 출시 초기에 82점을 받았다면 4년 뒤에도 82점입니다. 낮은 유저 점수는 민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대전 게임으로서의 기본이 안 되어있는데 왜 82점이 유지되는 걸까요? 이는 <디아블로 4>도 마찬가지입니다.
howlongtobeat에 따르면 <디아블로 4>를 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44시간입니다. 출시 일주일 전에 리뷰 카피를 받았다면, 하루 평균 20시간은 해야 게임의 모든 요소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컴플리트를 포기하고 메인 클리어 + 사이드 퀘스트에 집중한다 쳐도 약 4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하루 평균 7시간꼴입니다. 눈높이를 낮춰도 강행군이에요. 어떻게든 발매 직전에 글을 써야 뷰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글이 나올 리 만무하지요.
가령 리뷰 카피를 3주 전에 받아 넉넉히 플레이했다고 칩시다. 싱글 플레이는 정복해도 온라인은 무리입니다. 미친 듯이 파밍해서 득템을 해도, 유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템을 교환하는 행위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냥터가 효율적인지, 어디서 어떤 템이 떨어지는지, 교환으로 아이템을 구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출시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어요.
<디아블로 4>는 잘못된 업데이트, 괴상한 방향성으로 인해 지탄을 받았습니다. 70레벨까지는 재밌는데, 그 뒤에 할 게 없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립니다. 만렙 컨텐츠 또한 부실합니다. 얄궂게도 <디아블로 4>의 컨텐츠는, 적어도 사전 리뷰 정책 하에서는 좋게 볼 여지가 많았던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디아블로 2> <디아블로 3> <패스 오브 엑자일>이 그랬듯이 엔드 게임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론 그렇지 않았죠. 그동안 블리자드가 보여준 접근 방식은 게임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과연 현행 리뷰 정책이 이러한 문제를 반영할 수 있을까요?
많은 리뷰들이 스포일러를 철저히 배척합니다. 이 또한 사전 리뷰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봐요. 저 역시 스포일러를 피하는 게 좋다고 보는 입장입니다만, 어떤 게임은 스포일러를 끄집어내야 비로소 게임의 훌륭한 점을 논할 수 있습니다. <역전재판 4>를 다루면서 스포일러 없이 게임을 되짚어본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인스크립션> 역시 마찬가지죠. 스포일러 경고 문구를 포함해야 분석할 수 있는 게임도 있는 법입니다.
전문성 또한 발목을 잡습니다. 사실 게임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출시되는 게임을 족족 플레이했다간 하루가 100시간이어도 모자랍니다. 게임은 온갖 것들이 한 데 뭉친 종합 엔터테인먼트입니다. MLB 기반의 게임이라면 야구에 대한 이해는 물론, 현재 MLB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어떤 게임은 온갖 SF의 오마쥬로 가득 차 있어, 이를 알고 보는 사람과 모르고 보는 사람의 차이가 극명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호러 게임은 어떨까요? 호러는 매우 이상한 장르입니다. 다른 장르는 시나리오를 볼 때 개연성을 중시합니다. 알고 보니 떡밥이 슬며시 뿌려져 있었다든가, 변화하는 심리 묘사를 이해하기 쉽게 연출했거나 하는 것 등 말이지요. 호러의 하위 장르로 코스믹 호러라는 게 있습니다. 호러소설 작가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다. 또한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다." 척 봐도 개연성하곤 일 만 광년쯤 멀어져 있어요. 호러 장르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력은 가히 컬트적입니다.
최근 묻지마 범죄가 성행합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을 해쳐 대중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죠. 참 흉흉한 세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사지 않고 착실히 살았다곤 해도, 언제든 범죄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방어운전을 철저하게 할지라도 얼큰하게 취한 취객에게 불귀의 객이 될 수 있습니다. 괜스레 이를 상상하니 송골이 오싹해집니다. 공포는 이렇게 피어납니다. 호러 게임을 평가하는 이들이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접근한다면, 개연성을 밥 말아먹었다느니, 왜 이리 불친절하냐느니, 왜 이리 주인공이 무력하냐느니 따질 수도 있겠지요. 호러 게임의 문법은 엄연히 다른데도 말입니다.
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빼놓을 수 없겠죠. <레드 데드 리뎀션 2>을 다룰 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글을 써 내려가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남북 전쟁, 서부 개척 시대를 알아야 보이는 디테일도 있겠지요. 어쩌면 이것이 전문가의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시리즈 팬만 알 수 있는 깨알 같은 묘사, 원작과의 싱크로율, 원작과의 차이점, 장르의 문법을 어떻게 흡수하고 진화해 왔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봅니다.
리뷰를 전문적으로 다룬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때로는 시리즈물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어야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들도 있어요. 시리즈 팬이기에 눈감아주는 포인트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게임을 통해 나름대로 밥벌이를 하는(혹은 그에 상응하는 자긍심이 있는) 전문가라면, 그중에 한 명쯤은 이런 너드(Nerd)가 있어서 나쁠 건 없지요.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