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기록들

2. 취미부자, 그게 나다

by 나예

20대에 면접장에 앉아 있으면 늘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취미가 뭐예요?”
그때마다 기계처럼 대답했다. “독서요, 영화보기요.” 실제로는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부산에서 캐리어 하나 끌고 서울로 올라와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시절, 90년대엔 이 직업이 지금처럼 각광받는 일도 아니었다. 매일같이 야근과 철야에 치이며, 취미란 단어는 내 사전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가정을 꾸리면서 처음 손에 잡은 게 베이킹이었다. 책을 펼쳐놓고 빵을 굽고 쿠키를 구웠다.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설렘, 집안을 가득 채운 고소한 향, 아이가 한입 베어물고 지었던 웃음. 그 작은 장면들이 그 시절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달래주었다.

혼자가 되었을 때는 산으로 향했다. 아이가 어려서 멀리 나갈 수는 없었고, 짧은 시간 허락된 주말 낮에 근교 산길을 올랐다. 낯설게 시작한 산행은 곧 내게 익숙한 위안이 되었다. 숲길을 혼자 걸으며 들이마신 공기는,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나만의 호흡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삶에 텐트와 모닥불이 들어왔다. 캠핑이었다. 딸과 함께 떠난 자리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 먹어도, 별빛 아래서 웃고 떠들던 시간은 유난히 따뜻하게 남았다. 캠핑장에서는 낯선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싱글맘들과 함께한 모임에서 좋은 지인들도 생겼다. 캠핑장은 단순한 야외가 아니라,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 무대였다.

아이의 키가 어느덧 나를 훌쩍 따라잡을 무렵, 마음속에 오래 남겨두었던 취미 하나를 꺼냈다. 골프. 새로운 동작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어려움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공이 멀리 뻗어 나가는 순간의 해방감은,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굴곡마다 취미가 함께했다. 취미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때로는 삶을 견디게 해준 숨구멍이었고, 때로는 다시 걸어 나가게 만든 신호였다.

앞으로 이 작은 기록 속에서, 그때그때 나를 지켜준 취미들을 하나씩 풀어내려 한다. 달콤했던 베이킹, 고요했던 산길, 불빛으로 가득했던 캠핑장,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골프까지. 나는 분명 취미부자다. 그리고 그 사실이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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