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기록들

3.경계에서 건너온 하루

by 나예

법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쉽지 않았다. 주차 자리가 없어 건물을 몇 바퀴나 빙빙 돌며 헤매야 했다. “마지막까지 왜 이렇게 번거로울까” 싶은 마음이 스쳤다. 겨우 차를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미 땀 한 줄기가 등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법원 문을 나서는 순간, 몸이 툭 하고 가벼워졌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던 2년의 별거, 애매한 경계 위에 서 있던 시간들이 이제야 한 방향으로 정리된 듯했다. 확정 판결의 종이 한 장이 손에 있었지만, 더 큰 무게를 지운 건 마음이었다.

홀가분했다. 동시에 텅 빈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나는 혼자다.” 그 사실이 몸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따라 하늘은 유난히 높고 맑았다. 사람들은 제 갈 길을 바쁘게 걸었지만, 나만 시간이 멈춘 듯 서 있었다.

오래 미뤄둔 숙제를 끝낸 사람처럼, 회사에는 휴가를 내고 나만의 하루를 갖기로 했다. 곧장 백화점으로 향해 눈길이 가는 옷을 하나 집어 들었다. 립스틱 같은 작은 위로가 아니라, “이건 입고 싶다” 싶은 옷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쇼핑백을 손에 들자, 그제야 뭔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위해, 내 기분을 위해 무언가를 사는 게 오랜만이었다.

카페에 들러 창가에 앉아 한참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누구는 바쁘게, 누구는 여유롭게, 각자의 하루를 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커피를 홀짝이며, 낯선 자유가 조금씩 몸에 스며드는 걸 느꼈다. 별것 아닌데도 묘하게 특별한 순간이었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니, 네 살 된 딸아이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하고 달려와 품에 안기는 모습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듯, 나를 껌딱지처럼 꼭 붙들었다.

그 짧은 순간, 내 마음은 두 갈래로 흔들렸다. ‘왜 이렇게 기특할까’ 싶다가도, ‘이제 이 아이는 아빠 없는 아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마음 한쪽이 시리게 저렸다. 하지만 아이의 체온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오늘 내 삶의 경계가 갈라지고, 세상이 변한 듯 느껴졌어도, 아이 앞에서 나는 여전히 같은 엄마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앞으로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즐겁게 세상 속으로 걸어가야겠다고 담담히 다짐했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작은 기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