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 감상문과 해석 사이
22년 09월 27일에 관람한 영화이다. <겟아웃>과 <어스> 모두 재밌게 본 사람으로써 첫 글이 <놉>에 대한 리뷰인 것이 감사하다. 절대적인 해석이라기엔 성의-하다못해 장면 캡쳐라도 해서 넣는 성의-가 부족하고, 한 의견이라기엔 난삽하다. 단순히 영화를 관람한 후 산발적으로 든 생각을 정리한 메모에 가깝다. 우리는 모두 21세기 정보과부하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어디선가 비슷한 정보를 보았을 수 있다. 한 작품을 관람한 후 누군가와 해석이 겹친다는 것은 같은 지평에서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대한다는 뜻인 것 같아 기껍다. 영화 장면 출처는 다음 영화, 마이브리지 사진 자료의 출처는 구글이다. 이 글로 어떠한 수익창출도 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언질 주시기를.
본문은 2022/08/17에 개봉한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의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영화 <놉>은 ‘나쁜 기적’이라 불릴 만한 두 개의 사건을 액자식 구성에 끼워 넣는다. 하나는 20년쯤 전에 발생한 ‘고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속 현재에 발생하고 있는 ‘진 재킷’ 사건이다. 두 사건은 똑 닮은 구조를 취하나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이 결말의 차이가 영화의 본질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가장 먼저 적기로 한다.
먼저 ‘고디 사건’의 경우 당시 인기를 몰던 시트콤 ‘고디스 홈’의 촬영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인사건이다. 고디 역할을 맡은 침팬지가 헬륨 풍선이 터지는 소리에 광분하여 폭주하듯 출연진을 살해한 사건. 이때-온전히-살아남은 아이가 현재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는 주프이다. 주프는 ‘고디 사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장면에 충실한 해석으로 보면 고디와 주프 사이의 베일 한 겹이 주프를 살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놉>에서 ‘보는 것’, 더 정확히는 ‘눈이 마주치는 행위’는 경계하도록 그려지고 있으므로 이 해석도 무리는 아니다.
관계적 측면에서 보면 해석은 좀 더 나이브하다. 주프와 고디가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해석이다. ‘고디스 홈’은 백인 가정에 입양된 동양인 남아와 반려 침팬지를 기본 설정으로 한 화이티 시트콤이다. 이는 백인 주류 사회에서 동양인의 취급과 긴장도를 여실히 드러낸다. 시트콤 내에서도 그렇지만, 영화 중간에 삽입된 촬영 씬을 보면 주프가 대사 실수를 하는 장면이 있다. 고디 역할의 침팬지의 울음소리도 함께 삽입된다. 더구나 고디와 주프가 주먹인사를 하는 시그니처 장면도 있다. ‘고디 사건’의 마지막에도 고디가 주프에게 주먹인사를 하려다 사살된다. 이는 의도적으로 고디와 주프를 같은 선상에 놓는 연출이라 볼 수 있다.
‘고디 사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주프를 어떤 인물로 만들었는지다. ‘고디 사건’에서 20년쯤 지난 현재, 주프는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애쓰는 인물이 되었다. 과거의 영광이란 백인 주류 사회에-기형적 형태로라도-편입되어,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 인기를 얻는 것을 말한다. 영화의 ‘고디 사건’ 서술은 철저히 주프의 시선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클로즈업으로 강조되는 것이 중력을 거스른 듯 꼿꼿하게 서 있는 신발 한 짝이다. 영어 숙어 중에 ‘wait for the other shoe to drop’이 있는데, 이 뜻은 ‘마음 졸이며 곧 일어날 것 같은 (좋지 않은)일-나쁜 기적-을 기다리다.’이다. 어린 주프가 마음 졸였던 그 감각이, 성인기에 트라우마이자 엔터테인먼트의 추구로 발현한 것이다.
그리하여 주프는 평생을 대상화 속에 살았고,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말초적 인기를 돌이켜 보려 하는 인물이 된다. 이러한 인물로는 ‘고디사건’으로 얼굴에 끔찍한 부상을 입은 메리도 있다. 주프가 진 재킷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돌리려는 현장에 메리는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과거 자신의 얼굴이 박힌 스웻셔츠를 입고, 소비되던 그 시절 그대로 앉아있다. 진 재킷을 뷰어(보는 사람)라 부르며 신적인 존재-이 대목에서도 평생을 대상화 되었던 주프의 시선이 보인다.-로 놓고, 이 신적인 존재의 강림으로 기적(인기의 재부흥)을 행하려는 주프는 제사장이 된다.
이 고디-주프-메리의 대척점에 진 재킷-OJ-에메랄드가 있다. ‘고디 사건’의 20년 후 벌어지고 있는 ‘진 재킷 사건’의 주연들이다. OJ와 에메랄드는 영화의 시초라 불리는 에드우드 마이브리지의 말과 기수 사진-영상-의 기수가 자신의 조상이라며, 할리우드 산업의 지분이 흑인-특히 자신의 가문-에 있다고 주장하는 헤이우드 목장의 주인 남매이다. 이들은 진 재킷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목장의 존속을 위협받는 와중에 진 재킷을 찍어 떼돈을 벌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진 재킷의 특성에 대해 알게 되고 의도치 않게 그 외계 생명체를 해치우게 되는 것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주프-메리(유사)남매와 OJ-에메랄드 남매의 결말은 왜 달랐을까? 스크린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주프는 헤이우드 목장에서 말을 사서 진 재킷에게 주기적으로 먹여 길들였다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고디를 길들여서 시트콤에 쓰려했던 사람들처럼. 아마 그런 주기적 피딩으로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던 주프가 최후를 맞이한 표면적 이유는 에메랄드가 진 재킷을 유인하기 위해 주피터 파크에서 훔쳐왔던 말 모형을 삼킨 진 재킷이 화났기 때문이리라.
아니, 사실 이들의 결말이 갈린 것은 본질을 파악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다. OJ-에메랄드 남매는 진 재킷이 생명체임을 알았고, 쳐다보는 것에 반응함을 알았다. 자아가 없는 생명체는 길들일 수 없는 것을 알았고, 말을 대하듯 진 재킷을 대할 줄 알았다. 반면에 주프-메리 남매에게 뷰어는 말 그대로 절대적 존재, 카메라이자 고디였다. ‘진 재킷 사건’은 이야기 외적으로 보자면 엔터테인먼트에 중독된 이들에 대한 단죄와도 같은 것이다.
영화 <놉>은 앞서 말한 시선을 빼앗기는 것-엔터테인먼트에 중독되는 것-에 대한 경계를 그리는 영화이자, ‘영화’에 대한 헌사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가장 미래적이고 흉포한 카메라 ‘진 재킷’의 프레임으로 보는 에드우드 마이브리지의 말과 기수 사진-영상-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말과 사람을 먹게 되었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영화역사에 관한 이미지를 깔고 진행되는 영화는 점차 태초의 카메라로 가장 미래적이고 흉포한 카메라를 대적하는 이야기가 된다.
OJ-에메랄드 남매가 가장 처음 선택한 최첨단 CCTV는 진 재킷이 등장하면 먹통이 되고, 이후 앙헬과 앤틀러스를 영입해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 수동 카메라로 찍은 것은 진 재킷에게-앤틀러스와 함께-먹힌다. 가장 마지막에 에메랄드가 촬영한 우물 카메라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카메라라고 볼 수 있다. 찍는 것, 보는 것 자체가 공격성을 띠는 이 세계에, 혹은 디지털과 현대문명이 힘을 못 쓰는 미래의 카메라에 대적할 것은 결국 태초로 돌아가는 일 뿐이다.
<놉>이 영화에 바치는 헌사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앞서 말한 앙헬과 앤틀러스의 영입 이후 ‘진 재킷 촬영 대작전’ 시퀀스가 벌어지는데, 이때 각 인물이 역할을 분담하고 작전에 임하는 광경이 영화를 찍는 현장과 같기 때문이다. 진 재킷을 유인하는 OJ는 배우-이자 에드우드 마이브리지의 영상에 나오는 헤이우드 기수의 오마주-이고, 앤틀러스는 촬영감독, 앙헬은 조연출, 에메랄드는 연출 감독이 된다. 이때 영화 초반부에서는 카메라 앞에 서기를 원했던 에메랄드가 카메라 뒤의 감독이 되고, 시선을 받는 것을 꺼리던 OJ가 배우가 되는 것은 재밌는 전복이다.
조던 필 감독이 탁월한 지점은 ‘영화’에 대한 영화, 혹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는 <놉>이 이러한 찬사 구간의 함의를 알지 못해도 스토리 자체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가득 채운 상징과 비유는 유머의 가장 든든한 지반이라는데, 스탠딩 코미디를 했던 감독의 경험이 밀도 높은 영화를 만드는 데에 큰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헤이우드 목장을 소개하는 에메랄드의 멘트와 영화의 모든 사건들이 말하듯, <놉>은 또한 빼앗긴 것을 돌려주는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영화사에서 무언가를 착취당하고 인정 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박수를 돌리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한 상징이 바로 진 재킷의 이름이다. 진 재킷의 이름은 영화 후반부에 붙는데, 그 전에 에메랄드와 OJ가 말 진 재킷에 대해 이야기 하는 씬이 나온다. 에메랄드가 자신의 첫 말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러나 결국 오빠의 몫이 된 말의 이름이 바로 진 재킷이다.
백인 주류 영화사가 유색인종과 동물에게서 권한을 비롯한 것들을 빼앗아 갔듯이, 가부장제의 대표격인 아버지가 에메랄드에게서 말에 대한 권한을 빼앗았다. 에메랄드는 이 사건으로 농장을 떠나 헐리우드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이 빼앗김을 OJ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외계생명체의 이름을 진 재킷으로 짓는 것을 통해 에메랄드에게 이를 돌려주려 한다. 그리고 진 재킷을 마지막으로 처치-촬영-하는 일은 에메랄드의 몫이 된다. 영화 전체에 이렇듯 ‘돌려주려는’ 시도가 숨어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디 사건’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주프의 관점을 반복 전달하여 이해시키는 장면들 또한 같은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진 재킷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OJ-에메랄드 남매이지만 해결에 쓰인 실마리들은 모두 주프가 남긴 것이다. 사건의 해결 자체도 흉포한 카메라를 처단-촬영-하여 역으로 뷰어의 권위-주체의 권위-를 되찾아 오는 것이라 생각하면 빼앗긴 것을 되돌려주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의문점은 하나다. 주피터 파크의 ‘먼 곳’ 너머로 사라졌던 썬더를 찾아 떠난 OJ가 마지막 장면에서 에메랄드의 시점으로 홀연한 듯 보여진다. 이 장면 직전에 OJ는 에메랄드를 살리기 위해 진 재킷의 미끼가 되기로 하고 남매는 반대편으로 달린다. 그렇다면 홀연한 안개에 감싸진 듯 보이는 OJ는 에메랄드의 환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