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 감상문과 해석 사이
오래 전 보았던 영화를 뒤늦게 쓴다.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 영화에 대한 양질의 해석을 얻고 싶다면 이 글이 아닌 다른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신형철 문화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훌륭한 책이 이 영화를 면밀히 다룬다. 우리는 모두 21세기 정보과부하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어디선가 비슷한 정보를 보았을 수 있다. 한 작품을 관람한 후 누군가와 해석이 겹친다는 것은 같은 지평에서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대한다는 뜻인 것 같아 기껍다. 모든 사진자료의 출처는 다음영화이다. 이 글로 어떠한 수익창출도 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언질 주시기를.
본문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킬링 디어>의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킬링디어>의 원제는 ‘The Killing of a Sacred Deer’로 번역하자면 ‘신성한 사슴 죽이기’이다. 그냥 사슴이 아닌 ‘신성한’ 사슴. 여기서 한가지 재밌는 지점은 Sacred(신성한)과 Sacrfice(희생)의 어원이 라틴어 사체르(신에게 바친, 거룩한)로 같다는 점이다. 각설하고, 神聖에 사슴을 떠올리면 자연히 그리스신화의 아르테미스가 생각난다. 아르테미스는 달과 사냥, 야생동물, 처녀성의 신으로 곰과 수사슴, 활과 화살, 초승달이 대표적 상징물이다. 야생을 관장하는 만큼 성격이 거칠고 복수심이 강하며 손속에 자비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아르테미스와 관련된 신화로는 니오베 신화, 악타이온 신화, 이피게네이아 신화 등이 있다. 신화의 공통점은 모두 ‘복수’이다. 니오베 신화는 테베의 여왕 니오베가 교만한 말로 어머니 레토를 모욕하자 아르테미스가 아폴론과 함께 니오베의 아들·딸 열넷을 쏴 죽인 이야기이다. 악타이온 신화는 목욕 중인 자신을 훔쳐본 사냥꾼 악타이온을 사냥개들에게 뜯겨 죽게 만든 이야기이다. 이피게네이아 신화는 자식처럼 아끼는 사슴을 죽인 아가멤논에게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게 한 이야기이다. 신이 인간에게 하는 복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심한 듯 보이나 신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인간이나 저 인간이나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혹은 신의 기준이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킬링 디어>는 이피게네이아 신화를 가져와 만든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행해지는 복수의 원리, 과학적 개연성이 어떻게 되먹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인간의 복수가 아닌 신의 복수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이피게네이아 신화를 덧씌워보자. 마틴-아르테미스, 스티브-아가멤논, 안나-클리타임네스트라, 킴-이피게네이아, 밥-사슴.
킴은 아가멤논의 딸이라는 지점에서도, 사제라는 지점에서도 이피게네이아이다. 극 중에서 킴까지 죽음의 단계(다리 마비-거식증-피눈물)로 진입한 후, 마틴은 딱 한 번의 기적을 행한다. 킴은 마틴과 전화하며 잠시나마 걷게 되고, 겁을 먹은 안나가 휴대폰을 뺏자 신탁을 말하는 사제처럼 엄마도 곧 못 걷게 될거다, 적응하면 괜찮아진다고 말한다.
이쯤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이피게네이아 신화를 보면, 이피게네이아에게 오레스테스라는 남동생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온다. 왜 밥은 이 오레스테스가 아니라 사슴 역을 맡게 된 것일까?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겠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사슴을 죽이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마틴이 결국 인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물을 가여워할 줄은 알지만, 사슴으로 바꾸는 신력은 없는 인간. 그러므로 인간의 틀 안에서 이뤄진 역할의 분배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제의뿐이다.
그 전에, 아르테미스는 왜 분노했을까? 이야기 내에서 보면, 아르테미스를 맡은 마틴의 분노는 언뜻 보기에 아버지의 복수에서 기인한 것 같다. 마틴의 아버지는-본래 심혈관 질환이 있었으나-스티븐이 집도한 수술 중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틴의 초점은 ‘아버지를 잃은 것’에 맞춰져 있지 않다. 마틴은 아버지를 잃은 후 ‘제 삶이 망가진 것’에 집중한다.
이야기 외적으로 보면 신의 분노는 스티븐의 직업과 태도에 연관이 있다. 오프닝 장면에서 세차게 뛰는-개복된-심장이 보여주듯, 스티븐은 심장의다. 섭리를 거스르고 사람을 살리는 자, 그 중에서도 태동하는 생명의 이미지를 가진 심장을 수술하는 의사. 스티븐의 태도 또한 신만큼이나 교만하다. 밥의 머리, 안나의 검은 드레스에 명령하는 것도 모자라 침대 씬을 보면 ‘전신마취’라는 대사 다음 시체-신에게 바치는 공물은 보통 죽여서 태운다-처럼 늘어진 안나를 취한다. 신의 권능에 도전한 인간이 신의 분노를 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직업이 원전-이피게네이아 신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면, 안나의 직업이 안과의사인 것도 한 포인트가 된다. 안과의사는 눈에 생겨난 질병을 알아채고 치료하-려-는 직업이다. 원전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려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이다. 안나는 신의 복수-혹은 처벌-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왜 죄는 스티븐(아가멤논)이 지었는데, 그 값은 자신 혹은 아이 중 하나의 희생이 되어야 하는 지 묻는 유일한 인간. 이에 대한 신의 대답은 간단하다.
안나의 물음에 마틴은 엉뚱하게도 파스타 먹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파스타를 먹는데, 그게 제 고유한 방식인 줄 알았더니 죽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닮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사실은 엉뚱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이 행하는 복수의 무정한 법칙을 알기 쉽게 ‘비유’해 준 것이다. 파스타 이야기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죽은 아버지와 같이, 모든 사람과 같이.
전자는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읽힌다. “내 아버지의 죽음을 네(스티븐) 가족의 죽음으로 갚아라.” 여기서 멈췄다면 아마 인간의 복수에 그친 느낌이었으리라. 그러나 후자의 조건을 붙이며 마틴의 복수는 신성(神聖)을 획득한다. “죽는 이는 누구든 상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같으니까.” 혹은, “이쪽에서 하나가 사라지면 그쪽에서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균형이니까.” 등가교환을 목표로 하는 신의 비정한 물리법칙이 이 복수의 지반인 것이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후반부에 같은 도식을 한번 더 보여준다. 스티븐이 마틴을 납치해서 지하실에 묶어두고 여러 번 이유를 묻는다. 마틴은 스티븐과 제 팔뚝을 물어뜯으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법칙을 설명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총으로 자신을 쏴 죽여버리겠다는 스티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럼 왜 한 사람을 쐈는데 넷이 죽었는지 의아할 거다.”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보자면 마틴은 사람과 1:1로 치환되는 존재가 아니다.
이러한 신적 균형의 원리에 따라 복수는 거행된다. 스티븐은 더 이상 전능한 모습-안나와의 ‘전신마취’ 등-을 보이지 못하고, 제물을 고르는 일 또한 눈을 가리고 코끼리 코를 하는, 운에 맡긴다. 그렇게 밥이 심장에 총을 맞는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 않고, 뒤이어 마틴과 스티븐 가족이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며 복수의 완결성을 무너트린다. 밥이 희생 당했지만-혹은 그렇기 때문에-이들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보인다. 마틴은 여전히 나쁜 동네의 좁은 집에서 살 것이고, 의사 가족은 약간의 슬픔을 가지고도 너른 집에서 살리라. 어쩌면 밥을 대신할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복수의 불완전성이 드러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마틴이 결국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