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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밍키 Oct 20. 2023

텔레파시

지시를 내릴 때 주어, 목적어를 마구 생략하고 말하던 원장이 있었다. 대뜸 "해주세요", "갖고 오세요" 이런 식이다. 일한 햇수가 쌓인다는 건 때로 괴롭다. 고년차는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일 거라는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느 정도 오래 한 직종에 있었고 그에 따라 보수가 오르면 일도 더 잘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생각보다 무섭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나를 짓누른다. 안갯속 같은 그의 머릿속을 속속 다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상황의 공기만으로 요령 있게 다르르 원하는 작업을 해주는, 한마디로 일 감각이 예민한 직원을 더 좋게 여길 것이다. 눈치가 정말 없는 사람과 일하면 그만큼 답답한 것도 없다. 하지만 일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서로의 원활한 소통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을 읽어주기 바라기보다 먼저 자기 진료의 어떠한 일정한 방식을 익히게끔 조금은 넉넉하게 기다려주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효율적이다. 생각이 그렇게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우매한 원장이니 그랬겠지만.


본인 바람에 일치하지 않으면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몇 달, 몇 년씩 손발을 맞춘 사람이면 그렇게 어디가 부족한 말도 척척 알아들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입사한 지 며칠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자꾸 개떡같이 말하면서 찰떡같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개떡조차 안 줄 때도 많았다. 그러고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자꾸 비언어적으로 표현해댄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눈동자를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올리면서 한숨을 쉬는 것이다. 자기 눈알 흰자가 되게 매력적인 줄 아나. 왜 저렇게 자주 보여주는지. 아님 하늘한테 왜 저런 직원이 들어왔나 원망이라도 하는 걸까. 그 표정은 어떤 블레이드보다 예리하고 날카롭다. 말보다 표정이 더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분 덕에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게 제일 도와주는 일인 것만 같아 자꾸 위축이 되었고 자신감은 곤두박질쳤다. 다행인 건지 나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숱하게 당한 듯했다. 역시나 다들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건 서로 간에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 느끼는 건 다 비슷하구나 잠깐 위안이 되다가도 그 위인이 또 그렇게 천장을 보기라도 하면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한 동료는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말씀을 해달라고 항의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귀를 쫑긋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물어도 대답은 시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별 큰 불만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을 죄라도 지은 것처럼 한숨을 푹푹 내쉬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마음속 수첩에 적는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건 정말 밥맛없는 행동이구나’. 자꾸 명확한 지시를 안 해놓고 알아듣지 못하면 뚝별씨처럼 화를 냈던 원장을 보면서 반면교사 삼는다. 가끔씩 나도 주변 이들에게 내 마음을 똑바로 이야기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으면 혼자 토라질 때가 있었다. 반성을 했다.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다짐했다.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깊게 생각하게 해 주다니 어쩌면 감사한 사람이다.


수첩에 한 줄 더 적어본다.

세상에 텔레파시는 없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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