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당신이 원하면 그렇게 하자...

by 정유진

이제 막 무더워지기 시작하는 계절의 토요일.

나는 이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아니, 어쩌면 전날 밤에 자기 전부터) 오늘 하루 일정이 아침부터 밤까지 쉴틈이 없다는 것을 마음에 두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5분마다 한번 꼴로 한숨이 쉬어지는데, 안 하고 싶어도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어느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서 결국 밤에 집에 돌아와서 신랑을 붙잡고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남편에게 말하는 투가 꼭 우리 아내 같네요. 그 사람 무시하면서 기분 나쁘게 하는 말투가 우리 아내와 닮았어요."


이 말이, 내가 컨디션이 좋았더라면 그냥 넘겨졌을 말이었을까?

저 말을 한 사람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저 말은 나에게 가시가 되어 박혔고, 나는 그 가시에 찔려서 억울함과 서움함, 분노를 신랑에게 쏟아내게 되었다.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너져 내리를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신랑은 몇 년 동안 들어줄 생각 없던 나의 바램을 이젠 들어줘야

겠다는 결심이 선 것 같았다.


내 바램은,

"우리 이사 가. 다 뒤로 하고 떠나. 시골이든 도시든 상관 없어. 그저 여기만 아니면 돼."


어찌 보면 너무 대책 없는 바램이지.

이 곳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고, 신랑 직장도 옮겨야 하는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올테니까.

심지어 아이들 교육이나 재산 증식의 목적도 없는 그저 '여기만 아니면 돼.' 라니...


그동안은 얼토당토 않는 얘기라고 여기던 신랑은 이 날의 나를 보며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자...당신이 원하면 그렇게 하자...

당신보다 중요한건 없어. 월요일에 출근하면 전근 신청할 곳이 있는지 알아볼께."


정말 이상했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그게 고마워서 내 서러움은 이내 그쳤고 다시 차분해지더라.


이렇게 나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렇게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아무리 이곳에 지겨워도

조금은 더 있어볼만하지 않을까?


나를 우선시 하는 사람을

나도 우선시 하고 싶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