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아침부터 꽃향기가 나더라

by 정유진

둘째(딸)가 5살인 여름의 어느 날.

그 날 둘째는 배가 아팠는지 자다가 이불에 똥을 한 바가지를 싸놨다.


그래, 이건 아이의 잘못은 아니야.

배가 아팠으니 어쩔 수 없잖아.


라는 마음과 아픈 아이에 대한 걱정이 듦과 동시에

바쁜 아침에 똥 묻은 이불 빨래를 해야하는 상황에 짜증이 솟구쳤다.

여전히 감정 처리에 미숙한 나인데, 그 때는 오죽했을까...


그러고 싶지 않아도 아마 나는 온몸으로 짜증의 기운을 내뿜었을 것이다.

내 기억에 우리 딸은 그 날 유치원도 못 가고 오전 내내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점심시간쯤 신랑한테 전화가 왔고,

나는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내가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에 대해서 다다다다 쏟아내었는데

우리 신랑은

"당신이 고생이 많았어. 둘째가 똥 싸고 안 아프다니 다행이고 감사하네.."

라는 말로 나를 한번 머쓱하게 했다.


그래, 감사한 일이야.

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은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그 이후로 나도 짜증이 가라앉고(이불 빨래도 마무리가 되었고) 무난한 오후를 보내다가

신랑이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둘째를 번쩍 안아들고 하는 첫 마디가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우리 딸, 자다가 이불에 똥 쌌어?

어쩐지 아침부터 집에서 꽃향기가 나더라~"


덕분에 둘째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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