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한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

생산성을 외면하는 결단의 필요

by 또빠

요즘 시대에,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하거나, 가족이 중요하지 않다고 발언하는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내가 맡겨진 임무나 사명으로 인해 지나치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할 때,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 없다거나, 가족들도 그런 남편을/아내를, 엄마/아빠를 그저 보내줘야 하는 것이, 즉 (재화 및 가치의) 생산 활동을 위해 가족의 함께함을 일정 부분 희생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미덕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지수가 높다고 하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경우에도 '온전히'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아 보인다.


온전히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 즉 배우자와 자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진정성 있게 있어줌(present)을 통해 그들의 정서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공간을 성실히 채워준다는 것은 사실 생산적 관점에서 볼 때 다분히 지리멸렬한 것들을 위해 시간을 비워놓고, 의미 없는 대화가 시작될 때 지체 없이 대화에 참여하거나, 시답잖은 놀이를 하면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할 것을 요구한다.


그 와중에 빨리 다른 활동, 즉 좀 더 대의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혹은 사회적 의미는 없더라도 내 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활동으로 회귀(spring back)하려는 경향이 작동할 때 우리는 그곳에 존재하더라도 온전히 있을 수(present)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의 중심에 말뚝이 하나 박혀있고, 각자의 허리를 동여맨 밧줄은 그 말뚝에 묶여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주변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도 그 중심의 말뚝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을 지니게 된다. 밧줄의 탄성은 건강한 자아를 의미할 것이다. 말뚝 주변을 자유로이, 꽤 멀리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나가 있는 순간이 즐거우면서도 쉬이 돌아와 안정을 취할 때 우리는 중심이 잡혀있으면서도 건강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가정을 꾸리고 가족 중심의 삶을 살려한다면 그 말뚝은 가정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배우자와 담소를 나누다가도 못다 한 회사 일이 생각난다거나, 자녀와 놀아줄 때면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가족 중심일 때 우리는 일을 할 때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기타 개인활동을 할 때도, 마음 한편에는 가정으로의 회귀를 지향하게 된다. 그것이 싫지 않고 즐거울 때 즐거운 가정, 서로의 마음을 비워두지 않는 가족이 되겠지만 이것은 사실 성향이라기보다 결단의 문제라 하겠다.


배우자의 오늘 하루에 대한 불평이나 토로가, 자녀의 하찮은 관심사에 대한 끝없는 설명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각자의 세상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고 그것의 공유 대상이 되는 것이 나의 특권이자 그들과 하나 됨에 더욱 다가갈 수 있는 열쇠임을 지적으로 인지하고, 그것이 내가 가치를 창출한다고 생각했던 일들과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는 일이 아님을 잘 들여다본 후 내릴 수 있는 결단일 것이다.


물론, 가정이 진정 쉴 수 있는 곳이려면 가족 구성원 간의 끊임없는 이해와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집 한가운데 나의 말뚝을 박는 결단(commitment)이 있을 때 그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