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인사 발표가 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행정실장으로 발령이 났다. 사실 언젠가는 가게 될 자리였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발령에 얼떨떨하고 정신이 없었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발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진 않았다. 아직은 시기 상조라는 생각과 실장의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1순위를 유예로 냈고, 2순위로 인근 고등학교, 3순위를 옆 동네 행정실장으로 내신서를 냈었다.
인사상담을 갔을 때 고등학교는 관할이 본청이라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럼 가능하다면 지금 학교에 더 유예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그런데 며칠 전 본청 사무관님께서 지금 실장님께 전화가 오셨는데, 본청으로 발령날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셔서 실장님은 본청으로 가시는 게 거의 확정된 듯 보였고, 실제로 본청에 어느 부서로 발령이 나셨다.
실장님이 발령나신다면...?
그럼 나는?
2가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실장님은 본청에 가시고, 나도 다른 학교로 발령 나는 것과 또 하나는 실장님이 본청에 가시니까 2명 다 보내긴 그래서 나를 지금의 학교에 한 번 더 유예를 시켜준다.
물론 후자를 원했다.
2년 반 전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이사 와 인사발령)으로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사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마음 깊숙한 곳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던 대로 유예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행정실장으로..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내게도 해당될까?아직 조금은 먼 훗날의 얘기라 생각했는데, 막상 발령을 받고 나니,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인사 발표도 4시 넘어서 나는 바람에 하루 종일 공문게시물과 접수 대기, 그리고 노조 홈페이지를 100번 넘게 새로고침했다. 역시 노조 홈페이지에 가장 빠른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본청 6급 이하 인사발령을 클릭하고, 맨 먼저 실장님 이름을 검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본청의 어느 부서로 이동을 하시게 됐다.
그럼 나는?
몇 초 후에 우리 지역청 인사발령을 클릭하고, 떨리는 맘으로 ctrl+F를 누르고 내 이름을 검색했다. 그런데 이게 머선일이고!
내가 행정실장이라니! 이거 실화임?
학교의 몇몇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도 축하한다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실장님.. 축하 인사를 받았다.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인사발령 소식을 전했는데, 한결같이 승진 축하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행정실장이 된 게 승진도 아니고, 축하받을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 지게 된 막중한 책임들과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대한 사안들까지 수도 없이 의사결정을 하고, 고민해야 하는 자리인 것을.
게다가 난 결정 장애도 있잖아. 그런데 실장님 되면 그러면 안 되잖아.
지금 실장님이 너무 좋으셔서 선생님들 사이에 평판이 좋으신데, 내가 후임으로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실장님 가신다고 너무 크게 아쉬워하시는 걸 옆에서 듣고 있으니, 약간 섭섭하기도 하고, 나도 실장님처럼 잘 해야 되는데 하는 부담감이 밀려온다.
교행으로 근무한 지 12년 만에 행정실장이 되었다.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실장님들과 학교를 떠올려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떤 실장님이 될 수 있을까? 이전 실장님 중의 어떤 분을 나의 롤 모델로 삼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느꼈던 실장님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으로 보였던 부분을 보완해나가면서 나의 새로운 부캐인 행정실장을 만들어나가야겠다.
어쩌면 12년 동안 학교에서 차석, 삼석으로 근무했던 에피소드보다 행정실장으로 겪게 될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 같아서,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어차피 글을 계속 쓸려고 했고, 좋은 글감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신나는 일이다. 신규일 때나 처음 차석 업무를 맡았을 때에도 내가 글 쓰는 사람이었다면 너무 좋았을 것 같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기록해놓을 예정이다.
브런치 작가 합격하고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 글 발행을 못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꾸준한 업데이트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