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 블랙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다
겨울맞이 옷 정리를 하는 맥시멀리스트의 전투일지.
몸뚱이는 하나인데 옷은 왜 이렇게 많을까?
옷장 매트릭스 같다. 하나를 치우면 또 다른 차원의 옷이 튀어나오니까.
일단 손이 잘 안 가는 옷부터 추려본다.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은 옷들. 왜 샀는지 모르겠을 너무도 내 스타일이 아닌 옷들.
그 옆에는 한두 번 입고 다시는 안 입은 옷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넌 대체 어쩌자고 나를 입고 나온 거야?" 하고 비웃었던 바로 그 녀석들.
그리고 절대 빠질 수 없는 리즈 시절의 유물들.
작아져서 이제는 몸에 끼일 생각도 안 하지만,
언젠가 다시 입을 날이 올 거라는 희망 속에서 또 한 번 고이 접어 넣는다.
내 몸이 커졌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냥… 옷이 작아진 거야. 그렇다 치자.
결론: 깨달음을 얻었다.
“옷이 많아도 괜찮아. 내 안의 나도 많으니까....”
옷장과 나의 전쟁은 이렇게 또 한 번 평화 협정으로 끝났다. 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