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코앞에 두고

불혹이 뭐길래

by 당이

마흔, 즉 불혹이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력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 한다.


나는 이제 그 불혹이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날이 없으며

판단력이 흐린 정도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 맞는지를 매일 의심한다.


불혹이라고 누가 이름 붙인 것인가 검색해보고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해가 된다.

위에서 언급한 불혹의 정의는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논어에 언급된 내용이라고 한다.


그래..... 공자는 공자고, 나는 나다.

너는 공자잖아........


20대 중후반, 나는 그 당시에도 이 시절은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며, 이 시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하기도 한 날을 보냈다. 돌아보면 참 나는 일관성 있게 나답다. 그냥 그 좋은 시절을 즐기면 됐는데, 그걸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 멜랑꼴리 한 기분에 젖어버리던 것도 그냥.. 참 나다.


대학 교양수업 시간에 '10년 후의 나에게 편지 쓰기"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편지는 실제로 10년 후 우리 집 우체통에 꽂혔고, 그걸 다시 읽으며 피식 웃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아무튼 그 프로젝트를 계기로 대학시절 나는 어렴풋이 내가 마흔쯤 되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에 대해 자주 생각해봤다.


무슨 일을 하고 살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나의 분야에서 분명 두각을 나타내는 자리에 있을 것이라 스스로 주문 외우듯 확언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보다 더 행복한 내가 될 것이라는 것에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다. 확언이 이렇게 중요하다. 나는 영어교육 필드에서 독하게 살아남았고, 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나의 분야에서 나름 자리를 잡은 것은 맞다.


20대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럼 그때가 더 행복했나? 거꾸로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답이 안 나와서 그 시절의 일기장을 펼쳐봤다.


역시 나는 나다. 전혀 아니었다.

나의 일기장은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의 미래는 아주 장밋빛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낫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듯 보인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그때의 일기와 최근 나의 일기의 흐름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고민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늘 선택의 기로에 놓여 걱정하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작하기 엄두가 안 나고,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과 상황에 실망하고 그래도 내일은 좀 낫겠지. 다음 달은 좀 낫겠지. 내년은 좀 낫겠지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끊임없이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사니까 이 험난 한 세상을 39년이나 잘 버텼구나.

칭찬한다.


미약한 긍정으로 하루를 또 이렇게 살아낸다!

그 끝은 창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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