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된 다는 것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것

by 당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면, 마음이나 돈을 쓴다면 그건 진정 우러나서 하는 거다.

내 이미지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데 잘해주고 그런 거 잘 못한다. 솔직히 내 사람 아니면 관심 없다.


내가 만났던 상사들을 역모델 삼고 과거에 나도 발로 뛰던 그 현장이 얼마나 치열한지, 얼마나 괴로운지도 알기 때문에 시답잖은 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고 소위 말하는 갑질 하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건 나는 절. 대.로. 갑이 아니다.)


아니지. 더 솔직히 말할까? 나한테 쌍욕만 안 한다면 일만 끝내주게 해 줘도 그걸로 충분히 감사한다.

과거의 나 또한 상사에게 쌍욕은 안 했지만 (진상은 부렸음) 일 하나는 제대로 했다.


사실상 현재 나는 회의도 자주 하지 않고(21세기의 혁신적인, 소통하는 민주적인 회의는 개뿔. 어차피 회의도 업무 전달이다.) 회식 또한 거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업무 지시들도 메신저나 문서로 하는 편인데 제대로만 읽는다면 그게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내가 만든 조직 속에서 운 좋게 헤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잘 들여다보면 이건 결국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이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나는 그에 맞는 재화를 제공한다.

그러니까 누가 갑이고 을이고 할 거 없이 같이 협력해서 win-win을 추구하는 관계이다.


다만, 서비스 질과 재화의 양의 균형이 깨질 때 갑과 을의 논리가 작용된다.

같은 조직 내에서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여력만 된다면 그들의 서비스에 때로는 재화로, 때로는 '마음으로' 보답하려 노력한다. 더 보답하고 싶은데 어려운 상황이 오면 미안하고 고맙고, 진짜 잘해줘야지 싶다. 그리고 나는 약속은 대부분 꼭 지킨다. (100%라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가 하면 제공하는 서비스가 형편없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말해 '월급 루팡'.

서비스가 형편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업무 태도도, 삶의 자세도 비슷하다. 본인 능력이 없거나 일 머리가 없는 것을 일의 질이나 양의 문제라며 외부 귀인하고,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이 지구 어디선가 본인들이 월급루팡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서 '어서 옵쇼'할지도 모른다 믿겠지만 그건 그들만의 판타지다.


취업난이라고들 하는데 고용주 입장에서는 구인난이다.

사람은 많은데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없다. 개뿔 능력도 없으면서 워라벨만 울부짖는다.

워라벨 운운하는 사람 중에 일 잘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 난 그래서 워라벨이란 말이 별로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워라벨 챙기며 일하던 사람 없다. 성공하고 나서야 워라벨 노려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돈 자체'가 아니라 '워라벨'을 목표로 두고 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워라벨이라는 놈은 나도 매우 갖고 싶다. 언젠가는 가지고 말 거다.


본인 삶을 내팽개치고 회사에 영혼을 갈아 넣으며 미친 듯이 일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일단 좀 본의아니게 이 세상에 태어났더라도 본인 한 사람의 몫은 하고 살자는 거다.




과거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고용주가 내 퍼포먼스에 비해 내게 주는 월급이 적게 느껴져 미안하다 느낄 만큼 제대로 일하자.'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운이 좋아 재화의 양과 서비스의 질의 균형이 잘 맞춰진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그릇이 너무 작았고, 일과 삶의 분리가 전혀 안 되었고, 업무량도 많은데 머리가 나빠서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하니 결국 곰같이 일하다가 번아웃이 온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1인분 이상은 충분히 했다.


2인분, 3인분 하라는 게 아니다. 1인분 이상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진짜 딱 1인분 몫만 하고 살자.


이해하고 배려하다 보면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실수나 실패에도 기회를 주고 격려해주면 그런 처사가 당연한 것이 되고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업무를 지시하다 보니 호구가 되어버린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이렇게 또 하나의 빌런이 탄생한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하며 글을 마친다.


공개나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대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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