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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in Apr 05. 2023

프랑스에서 모태솔로 탈출하다



나는 짝사랑에 재능이 있다. 연애를 하지 않아도 외로울 때면 언제든지 짝사랑 상대를 골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을 가졌다. 그야말로 혼자 사랑하고 헤어지기.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수없이 넓고 많았던 그때의 내 고질병이었다.

그런 내가, 연애를 했다. 엄마 말마따나 그건 연애도 아니었다고 하기에 정정해서 잠시 연애를 체험했다. 

옛날부터 연애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사는 걸까 궁금했다. 좋은 것만 봐도 생각나는 설렘부터 익숙해진 연애의 권태에서 이별의 아픔까지 모두 겪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하기로 결정했다.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는 게 웃기지만 귀국 전까지 국제 연애 로망을 이뤄야겠다는 열망으로 마감 기한이 붙은 과제처럼 쫓기고 있었다. 한국도 아닌 프랑스에서 첫 연애라니. 한국에서도 이 나이에 연애를 시작하면 모든 게 서툴고 어려울텐데, 국제 연애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될지 감이 안 왔다. 여느 연인들처럼 카페를 가고, 발을 맞춰 거리를 걷고, 자기 전까지 통화하는 일을 했다. 대충 설렘의 단계까지는 왔다. 그런데 권태를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반짝였다 사라진 꿈같은 그 몇 개월을 한 장에 적어본다.


그 애를 만나게 된 건 어플을 통해서였다. 어학원에는 프랑스인을 찾기 힘들었고, 프랑스인과 연애라도 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될 것 같은 내 말에 친구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k-pop fan이라는 말, 어쩐지 우리와 말이 통할 것 같았고 그렇게 덜컥 우리는 셋이 만나게 되었다.


셋이 만나 한국과 프랑스에 관한 주제를 막 던졌다. 도망치고 싶은 어색한 공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나는 어색하면 괜히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있는데, 어쩐지 그날은 상대의 얼굴보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색함의 단계를 깬 후, 막심과 밤마다 통화했다. 기숙사 발코니로 나가면 까만 밤하늘에 별이 잔뜩 펼쳐졌다. 오늘은 별이 잘 보이거나 안 보인다며 서툰 언어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눴다. 당시 어학원에서 배웠던 것, 언어가 서툴러 생겼던 에피소드와 반과거가 이해되질 않다며 찡찡대기도 했다. 

나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막심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공책에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로 적은 막심 글씨체이다. 


막심은 시골 청년이었고, 부모님이 농부였다. 주말마다 우리 동네에서 마켓이 열리면 그 농작물들을 파는 일을 했다.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님 일을 도왔다. 한 번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어렸을 때부터 돈을 많이 모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야망가였다.


pardon과 désoléé의 의 차이를 몰랐던 나는 간혹 실수할 때마다 désoléé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와 데이트할 때 실수하면 입에서 désoléé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막심은 "너는 왜 항상 미안하다고 해? 이거 미안한 일 아니야." 라고 화를 냈다. 아니.... 화는 왜 내는데?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들은 실수할 때마다 미안해요, 죄송해를 쓴다. 하지만 가벼운 실수는 pardon, 정말 미안한 일이 생기면 désoléé를 사용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동양적인 마인드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니 서로에게 오해가 생기는 일도 간혹 있었다.

막심은 우리 동네에서 이십 분 떨어진 거리에 살았고, 나를 보기 위해 차를 몰고 시내로 왔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위해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고, 가끔 학교 앞 바 테라스에서 음악을 듣고 밤에는 물결이 일렁이는 강가를 걸었다. 강가를 쭉 걷다보면 나오는 성당이 있다. 프랑스는 카톨릭 국가라 지역을 대표하는 성당이 기본적으로 한 채씩은 있다. 막심 못지않게 야망가였던 나는 기필코 반짝거리는 성당 앞에서 막심과 데이트를 하리라고 결심했다. 자기 전 꿈꿨던 그림같은 장면을 남기고 싶었다. 친구에게 들뜬 목소리로 실컷 내 로망을 늘어놓다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오늘 밤도 니 로망을 이루지 않으면 실망할 거다" 라는 거였다. 

앙큼한 로맨스를 응원해 주는 친구가 있는 게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기고 귀여운 우정이다.


데이트 코스는 늘 내가 짰다. 생각해 보면 프랑스인이라 항상 데이트에 늦은 건지, 나를 향한 애정이 그만큼밖에 안 되는 거였는지 의문이다. 후자라고 인정하기 싫었던 것도 사실이라 친구들에게 프랑스인은 원래 그런 것 같다며 쿨한 척 넘겼다. 막심과 했던 데이트를 곱씹어보면 의자에 앉아 항상 그를 10분정도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쉬운 쪽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저녁 학교 앞 벤치에 앉고 막심은 내 무릎에 누웠다. 뜬금없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선전포고했다. 곧 떠나는 너를 좋아하면 본인이 너무 힘들어질 거라는 얘기였다. 그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사귈 수밖에 없는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그 날은 내 로망을 실현했다. 밤에 더 아름다운 성당 앞 계단에 앉아 강가를 바라보았다. 셔츠를 입고 나온 나를 안아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 우리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바람이 부는 강가 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한 편으로는 이 꿈같은 시간이 나에게 왔다는 사실이 벅찼다. 내가 연애를 하다니, 그리고 친구에게 로망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기뻤다. 한국에 돌아가면 가족, 친구들에게 당신들만 해 봤던 거 드디어 나도 했다며 당당하게 말할 생각이었다. 돌이켜 보면 사랑이 아니라 연애라는 행위를 했다는 자체가 기뻤던 것 같다. 돌아와서 이 날의 스토리를 얘기하니 친구들은 나에게 로망 실현에 이렇게 적극적인 애가 있냐며 야유를 던졌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에 잔뜩 어긋났다며 웃기도 했다.


어쨌든 여름이 한창인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에서 스페인까지 실컷 여행을 하다가 마지막 파리 여행을 끝으로 여행비가 바닥났다. 사실 교환학생에 지원할 돈조차 없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교환학생에 갈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가 8시간이라는 시차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내내 의문을 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적은 일기이다. 처음은 새벽에 밤을 새워가며 전화했다. 막심은 저녁이 돼서야 일이 끝났고, 전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쪽은 늘 나였다. 사랑에 갑을을 따지자니 우습지만, 더 좋아하는 쪽이 을이라면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내 피곤함은 점점 쌓이고 인내심은 동이 났다. 게다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그를 위해 새벽에 전화기를 붙들고 있기에는 지쳤다. 가망이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기에 막심에게 이별을 고하고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예상 밖으로 그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는 마음이 좀 짠했다. 내가 원했던 로망은 다 실현했으니 된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생각보다 허했다.


우리는 한때 함께 헤어짐에 관해 얘기했다. 헤어진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헤어진 적이 없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내 성격상 그런 애매한 관계는 만들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막심이 생각난다. 통화로 오늘 배웠던 한국어를 서툴게 말하는 목소리가 생생하다. 아직도 한국어는 잘 배우고 있는지, 이제 내가 쓴 일기를 읽을 수는 있는지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어쩌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우리를 먼저 내려놨겠지만, 언제나 느려 프랑스는 8시인 시간에서 그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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