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시청에서 내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서대문으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정동길에 있는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 도가니탕에 반주 한 병을 하고 조금 더 걸을 생각이었다.
잠시 생각하고 있던 차에 시청에 내리는 것을 깜빡했다. 을지로입구에 내렸다. 다시 한정거장만 되돌아가면 시청이지만 지상으로 올라가 조금만 걸어가도 시청이지만 을지로입구에 내리자 갑자기 칼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명동교자'는 나의 모든 계획을 틀어놓기에 충분하다. 새해 들어 이상하게 명동교자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실은 새해 첫날 먹고 싶긴 했는데 아내가 칼국수 하나 먹으러 명동까지 나가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아내의 의문은 반대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게 죽도록 먹고 싶던 것도 아니어서 나는 아내의 의문에 다시 의문을 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의도치 않게 명동교자 인근에 내려버린 것이다. 게다가 오래 걷기에 너무 추운 날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점심은 칼국수다.
명동교자는 혼밥석이 따로 있다. 칼국수 그릇, 김치 그릇 하나 놓으면 두 손을 올려놓기도 비좁은 자리지만 언제 가도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자리의 불편함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칼국수를 주문한다. 3분도 채 되지 않아 칼국수가 놓인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만큼 반갑다. 한 음식이 이렇게나 반가운 건 오랫동안 먹었다는 얘기다. 오랫동안 변치 않고 맛을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음식 값을 치르면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수저로 먼저 국물을 맛본다. 달고 짭짜름한 이 맛. 역시 반갑다. 면을 젓가락으로 조금만 들어 소리 내지 않고 조심스레 맛본다. 마흔이 넘으면서 나는 면치기를 관두었다. 면을 호로록거리며 면가락을 들숨에 당겨 먹어야 더 맛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면을 흡입하며 당기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더 맛있게 먹는 것이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흔이 넘으며 조금 차분해지기로 했다. 나는 품위가 있는 아저씨가 되고 싶다. 말도 가려하고 좋은 단어를 쓰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신발도 깨끗하게 신고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고 그리고 면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면치기를 하지 않으니 확실히 천천히 먹게 된다. 면치기를 한창 할 때는 3분이면 모든 국수를 먹어 치웠었다. 이제 위장도 그리 좋지 않으니 천천히 먹는 게 여러모로 좋다. 면을 다 건져 먹고 면을 추가하려다가 밥만 청한다. 조금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마늘김치에 마무리하는 것이 명동교자를 대하는 나의 정석이다.
더 이상 폴로사탕을 주지 않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마늘김치를 듬뿍 먹고 난 후 입가심으로 괜찮았는데 평소에는 줘도 안 먹다가 막상 없다고 하니까 아쉽다.
명동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코로나 때 명동을 들르면 좀비때라도 지나간 것처럼 골목이 휑했다. 일단 명동 성당 쪽으로 걸었다. 딱 한번 명동 성당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매번 멀리서만 봤지 가까이 볼 생각은 안 했다. 내부는 들어갈 수 없어서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새로웠다. 나는 그동안 명동성당에 가까이 와 볼 생각을 못했다. 전주에 가면 전동성당을 들르고 유럽에 가면 이름도 정확히 외우지 못하는 수많은 성당은 들르면서 명동성당에는 와 볼 생각을 못했는데 여행자의 심정으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동성당으로 걸음이 옮겨진 것이다.
외국 관광객이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성당은 첨탑이 높은 편이니 이리저리 찍어도 한 앵글에 담기가 쉽지 않다. 일본 관광객 하나가 거의 눕다시피 하며 성당을 배경으로 아내와 어린 딸을 찍어주고 있었다. 몇 계단만 내려가서 찍어도 저렇게 눕지 않아도 될 텐데. 내게 가족사진을 부탁하면 기꺼이 찍어주리라 맘을 먹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골목으로 나와 시청 쪽으로 걸었다.
시청 광장에는 있는 야외 아이스링크가 멀리 보였다. 처음에 아이스링크가 생긴다고 했을 때만 해도 무척 신기했었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후배들을 만나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좋아하는 선술집에 가서 데운 정종을 먹은 기억이 있다. 한동안 자주 술을 마셨던 그 후배들은 이제 연락도 자주 하지 않는다. 특별히 서로 잘못한 게 없었는데도 우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려다가 관둔다. 다시 자연스럽게 연락할 날이 오겠지.
아침에 마음먹은 것처럼 대한문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 돌담길을 걸어볼까 하다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대한문 오른쪽의 담장을 따라 걸어보기고 했다. 안내판을 보니 '고종의 길'이란다. 영국대사관으로도 갈 수 있는 이 길은 대사관으로 인해 막혀 있다가 덕수궁 안으로 새로 길을 내서 만든 길이다. 걸으면서 왜 고종의 길일까? 내내 생각했는데 길이 끝나는 즈음에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길의 끝에는 옛 러시아 공사관 건물의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그 유명한 아관파천 즉, 명성황후 시해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일본을 피해 숨어 지낸 곳이 러시아 공사관이다. 이 근처를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처음 본 건물이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 인근을 많이 걸었을 테니 '고종의 길'이란 이름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러시아공사관을 지나 평지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을 걸었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서 식당 간판만 확인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조금 웃겼다.
큰길로 나오니 익숙한 길이었다. 시네큐브가 있는 흥국생명빌딩으로 걸었다.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술을 한잔 마셨음 더욱 좋았겠지만 대낮에 혼자 보는 영화는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것이다. 마침 보고 싶었던 영화가 상영하고 있었다. '리빙:어떤 인생'은 빌 나이가 주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영국의 배우 빌나이를 알게 된 건 '러브액츄얼리'였다. 특유의 건들거림과 중지를 쭉 피고 사물을 가리키는 그만의 움직임에 반해 그가 나오는 영화는 모두 찾아보곤 했었다.
역시 영화는 좋았다. 평일 오후 1시 영화라 영화관 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 시간의 영화관은 2,30대보다는 5,60대들이 더 많다. 시네큐브가 맨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독립영화나 일반 개봉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를 찾아보기 위한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었다. 지금은 연령대가 많이 바뀌었다.
화장실에 갔다.
소변을 누고 있는데 옆옆 소변기에 노신사 한 분이 섰다. 꼬릿 한 술냄가 풍겼다. 소변을 다 누고 바지 지퍼를 닫으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방귀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바바바바바바방...."
나이가 먹으면 부끄러움이 없어진다. 나는 그게 싫다. 인상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는데 노신사가 말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
갑작스러운 사과에 나는 어떻게 답을 줄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방귀 소리가 울렸다
"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방"
한 번에 울리는 큰 소리가 아니고 짧게 스타카토로 끊어진 방귀였다. 나름 참으려 애를 썼을 때 그런 소리가 난 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이코, 이거 두 번이나. 이게 나이를 먹으면 나는 앞만 열고 싶은데 뒤도 열려요. 미안합니다."
화장실에는 여전히 나와 노신사만 둘이 있었고 나는 '아닙니다'라고 답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흐흐흑 대는 나를 보고 이번엔 노신사가 따라 웃고, 웃다 보니 다시 방귀가 바바바바방...
남의 방귀를 듣고 웃은 지가 언제였더라?
나는 노신사의 방귀가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과가 좋았다. 민망함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배려가 좋았다. 빌 나이의 연기는 잊어버린 지 오래고 할아버지의 방귀만 남았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그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