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내 몸엔 피 대신 커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커피 투어의 서막, 17시간의 긴장과 고베의 맑은 공기
2009년 9월, 내 몸엔 피 대신 커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은 늦더위 속에서 부산항국제여객부두에서 가방 속 서류파일꼬깃해진 일정표를 꺼내 들었다. 일본어로 가득한 메일 제목들이 번쩍 스쳤다. ‘책임 기획자’라는 무거운 자리와 ‘단순한 참가자’ 사이에서 내 마음은 차가운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그날의 공기는 왠지 무겁게만. ‘내가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계산하듯 계획을 되짚으며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 투어의 공기를 책임질 사람은 나뿐이었다.
부산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팬스타 드림호 위. 여기 선실 안은 웃음이 넘쳤지만, 나는 홀로 ‘공기’를 설계하느라 바빴다. ‘나는 배우러 간다’, 그 말 뒤에 숨겨진 사명은 ‘나는 이들의 기대치를 지켜야 한다’였다. 물결 따라 출렁이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장은 무겁지만, 이 순간 책임지는 공기를 만들어야 해.”
커피라는 인연으로 처음 보는 연수단은 잠시 서먹한 건 찰나일 뿐이었다.
선내에서 단체식을 한 후에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사들고 앞으로의 현지 일정에 대하여 이야기가 무르익었다. 부산항을 출항한 팬스타 드림호는 목적지인
향해서 순조롭게 항해를 가는 듯했다.
커피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져갔고
어느새 선내자판기 앞에 모여서 아시히 맥주가
동날 때까지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 다행히도
목적지인 오사카항에 무사히 당도하였다.
부푼 꿈을 안고 설렘 속에 우리는 고베로 향했고
고베에 도착했을 때, UCC 커피 아카데미 교육 현장은 마치 별안간 펼쳐진 또 다른 세계 같았다. 하지만 내가 짊어진 무게는 여전했다. 그날은 통역과 인솔역할을 동시에 맡아야 했기에, 머리와 목소리는 깨질 듯 바빴다. 한 번 쏟아지는 일본어 강의를 즉각 한국어로 바꾸면서, 단순히 단어만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열정과 의미까지 정확히, 그리고 또렷하게 전달해야 했다.
두 개의 무거운 짐을 동시에 나르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번역하던 순간, 나는 그들의 눈빛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낯설었던 눈빛이, 차츰 확신과 기대감을 띠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작은 표정의 미묘한 움직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그들 마음속에 작은 불꽃이 되어 번지는 듯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 공기를 만들어내는 일.”
그 아카데미의 매서운 공기 속에서, 나와 연수단은 ‘통로’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이어갔다. 내 목소리가 흐르는 길을 따라 커피의 온기가 퍼져나갔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그 안에는 분명 뜨거운 열정이 차올랐다.
일정이 모두 끝나고 전용버스에 올라탄 순간,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렸다. 니시무라 커피 한 잔에 녹아든 피로가 쏙 빠져나갔고, 고베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찬란한 고베의 가을밤은 고요하고 맑은 공기로 내 몸과 마음을 감싸 안았다.
오사카로 향하는 버스 안, 사람들의 감사와 만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정말 좋았어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들의 목소리는 내 온몸에 커피가 흐르는 듯한 전율을 일으켰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나는 ‘기획자’이고, 이 모든 순간이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공기임을.
고베 UCC 커피 아카데미와 박물관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커피 기업다웠다. 압도적인 규모와 정교한 커리큘럼,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를 대하는 그들의 지독한 열정에 나는 매 순간 감동했다.
하지만 열정의 대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현지에서의 첫날, 쉼 없이 이어지는 수업과 끊임없는 커핑(Cupping)으로 인한 커피 과다 섭취. 호텔로 돌아왔을 때, 내 몸은 마치 거친 파도를 넘는 배처럼 요동쳤다.
멀미하듯 어지러워 누워 바라본 호텔 천장은 뱅글뱅글 흔들리고 있었다. 지독한 카페인 기운에 몸은 떨렸지만, 그 울렁임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몸으로 받아내느라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었다. 시스템을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내 몸이 먼저 고베의 커피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사카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들, 커피 이야기를 넘어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공유하던 순간들.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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