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없는 사자
시아
냉혹한 사자가 있었다. 온갖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해치웠다. 그놈한테 당한 동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동물들의 원한이 숲을 뒤덮었다. 세월이 흘러 죽는 순간을 기다리는 사자한테 멧돼지가 다가와서 외쳤다. “원수를 갚아주마!” 그렇게 하면서 고작 한 것은 사자 코를 깨무는 거였다. 사자가 살려달라고 하며 산 아래로 굴러갔다. 지나가던 황소가 사자 코를 삼켜 버렸다. 나귀도 역시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하며 사자를 발로 찼다. 겁에 질린 사자는 살려달라고 거푸 외치며 말했다. “지금은 옛날의 내가 아니오!” 그렇게 엎드려 비는 사자한테 나귀는 “그래, 나도 옛날의 내가 아니야.”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이승훈의 산문 시 ‘코 없는 사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양한 사유를 가진 ‘피해자’를 위한 절묘한 시다. 이 시가 어떻게 폭력이나 사기를 포함한 피해자들을 위한 시가 될 수 있을까? 숲속 동물들의 보복은 시시하다. 기껏 한다는 것이 코를 깨물거나 그 코를 삼켜버리거나 발로 찰 뿐이다. 사자가 했던 피비린내 나는 행태를 따라 하지 않는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사자를 무참하게 처치해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이토록 미약한 복수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이 시는 처한 상황과 다르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가해자는 여전히 살기등등하고 늙고 힘이 빠진 사자가 아니며 반성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 시와 들어맞지 않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는 인간의 탈을 썼으니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긴 할 것이다. 육체를 벗을 때, 불가사의한 성찰이 이뤄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가해자의 몫이니 따질 계제가 아니다. 피해자인 입장에서 찍어야 할 방점은 나귀의 말이다. “그래, 나도 옛날의 내가 아니야!”라는 구절 말이다. 그저 피눈물 흘리며 울분이 가득한 채 고통 속에 빠져 있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견뎌내고 버텨낸 덕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세월에 진 것은 사자이지만, 세월을 이겨낸 것은 나귀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난과 역경을 딛고 난 뒤에 비로소 얻게 된 것은 ‘영혼의 성장’이다.
성숙한 내면을 가진 이들은 사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앙갚음하지 않는다. 치졸하게 애원하는 사자한테 발길질 한번 하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그것은 그냥 발길질이 아니라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기운이다. 오랫동안 원한을 안은 채 피폐하고 시들어간 마음의 활개를 펴는 순간이다. 기적 같은 치유를 위한 첫걸음은 어떻게 내디뎌야 할까? 그런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를 용서하는 것이다. 그 지경이 되도록 내쳐두었던 나한테 휘두르는 채찍질을 그만 거두는 것이다. 실수와 모순투성이인 나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는 것이다. 오래 견뎌온 나한테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라고 토닥토닥해주는 것이다. 지독한 삶을 지극하게 버텨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말하고 들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주어진 삶의 짐을 거뜬히 나르는 슬기롭고 겸손한 나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 위 글은 2024년 12월 9일자 <뉴스 아이즈>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