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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Oct 11. 2022

내 아이의 이성친구를 대하는 자세

겉과 속이 다른 부모의 마음!!

 우리 집 아이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제나 저제나 아이의 이성친구 소식을 기다렸다. 아이의 다른 친구들에게서는 누구를 만났네, 누구랑 헤어졌네 하는 소식이 들리는 동안 우리 아이는 무척 잠잠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조금씩 성장이 더뎠던 아이였기에 이성친구를 만드는 일도 느리게 찾아오는 것 같다며 어쩌면 조금은 안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보았다. 대개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은 나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세상이 흉흉하고 아무나 믿지 못하는 시대라 아직 성인이 되기 전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되도록 이성친구를 늦게 만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딸아이에게 그대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왠지 대범한 엄마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언젠가 청소년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랬다. 당시 이슈가 되었던 주제 중에 청소년들이 편의점에서 콘돔을 살 수 없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각자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을 하면서 콘돔을 사용하라고 하는데, 정작 청소년들은 콘돔을 어디서든 살 수가 없어. 미성년자라고 말이야.”


 “청소년들은 모텔도 갈 수가 없잖아. 청소년들도 신체적으로는 이미 성숙한 몸인데 어디에서도 그것을 표출할 수가 없다면 그것도 인권침해 아닐까?”


 딸의 제법 진지한 대화 속에서 나는 굉장히 진보적인 사람인 것처럼 맞장구를 쳐주며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 대한 억눌린 사회적 규범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화 내용은 사실 매우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내 아이의 경우라면 지금처럼 열렬히 동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속으로는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도 우려하던 일이 닥치고야 말았다. 


 아이가 18살이 되던 무렵, 아이는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남자아이와 자주 연락을 하더니 가끔 만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성친구로서 관계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둘은 객관적으로 연애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로의 주거지가 서울과 광주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은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한 번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면 기본적으로 1박 2일의 계획을 세워 만났다. 그런데 문제는 미성년자에게 1박 2일의 일정은 보호자 없이 계획하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모텔이든, 찜질방이든, PC방이든 미성년자는 12시 이전에는 집에 돌아가야 했다. 둘은 결국 그나마 단속이 덜한 무인텔에 가서 하룻밤 같이 지내다 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미성년자 딸이 무인텔에 가서 자고 온다는 사실은 대단히 허락해주기 힘든 일이었는데 그나마 이 모든 것들을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미 아이와 청소년의 성에 대해 개방적인 엄마인 것처럼 이야기를 나눈 후라 아이의 선택을 말릴 수는 없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딸을 믿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 걱정을 내내 하다가 이렇게 집에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어 봐야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남자아이가 광주로 내려온다는 날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저녁밥을 사준다는 핑계로 같이 만나자고 했는데 직접 상대 남자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나면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차를 타고 역에서 내린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 남자아이는 매우 긴장한 채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는데 매우 깍듯이 인사를 했다. 순두부처럼 하얗고 말랑하게 생긴 아이였다. 되바라지지도 않아 보였고, 순진했으며 매우 예의가 바르게 보였다. 내 딴에는 긴장도 풀어줄 겸 농담도 하고, 여러 이야기 주제들을 던져놓으며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남자아이도 금방 마음을 풀고 즐겁게 저녁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걱정했던 마음을 내려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아이가 매우 순진했던 것도 있었지만 관계의 주도성이 내 아이에게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 아이는 둘의 관계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좋아서 하는 행동도, 싫어서 하기 싫다는 표현도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저녁을 먹은 후 두 아이는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러 갔고, 나는 온전히 딸만 믿으면 되겠다는 판단이 서니 그날 밤은 조금 마음이 편했다. 


 그날 이후로 딸아이는 남자 친구와 뜸뜸이 연락을 하는 것 같았는데, 80여 일간의 지구여행이 끝난 이후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헤어지는 날 딸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남자아이와 오랫동안 전화통화로 싸움을 하고 펑펑 울었다. 방문을 닫아놓은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고, 또 조금은 부끄러운 일일 수 있어 그날의 일은 애써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의 방에서 들리는 울음소리가 내 웃음 단추를 눌렀는지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어쩌지는 못했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란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다. 마침내 '내 딸아이도 실연의 아픔이라는 것을 겪게 되었구나. 우리 딸 다 컸네' 하는 마음에 웃음이 툭 터져 나왔을까? 이미 세상 희로애락을 다 겪어 본 어른으로서 아이가 겪는 아픔이 아이들 장난 같은 느낌이기도 해서 웃음이 나온 듯도 했다. 한편으로는 두 아이의 불안한 연애가 끝난 것에 대한 안도하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각나면 웃음이 지어지는데 사실 무엇때문에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 진짜 이유는 아직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한바탕 울고 난 아이는 이후 힘든 티도 내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았다. 아이 말로는 이미 헤어지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되었던 터라 많이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힘들다고 하지도 않고, 조금은 아슬아슬한 내 아이의 연애를 보는 것도 끝이 나서 매우 안심이 되었다. 속으로는 이제 남자 친구는 성인이 되어서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시간은 흘러 아이는 이성친구가 없어도 매우 즐겁게 잘 살았다. 하지만 한창 잘 나가는 꽃 같은 청춘 시절에 영원히 솔로로 지낼리는 만무하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갈 무렵 다시 남자 친구가 생겼다. 이번 남자 친구는 같은 학교 졸업생이었고 둘 다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거의 매일 붙어있다시피 하는 듯했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 나 이외에도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아이라서 특별히 걱정되는 바는 없었지만 여전히 나는 부모로서 매일 걱정을 한다. 성인이 되면 나을 줄 알았는데 성인이 되어도 비슷한 고민으로 딸아이의 이성교제가 매우 걱정이 되는 것이다. 단 둘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상이 펼쳐지며 안 해도 될 걱정을 줄줄이 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 앞에서는 언제나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딸아이와는 숱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들을 주저 없이 잘하는 편이지만 이성관계에 대해서만큼은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매우 주저된다. 자칫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혼자서 자취를 시작한 딸아이를 보는 엄마의 심정은 더욱 불안하다. 그래서 아이가 집에 찾아온 어느 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엄마의 걱정을 표현해 보았다.


 “너! 응? 말이야! 엄마는! 응? 아직 할머니가 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알아서 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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