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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Oct 18. 2022

내 아이의 알바는 부모가 알 바다!

 아이가 10대였던 시절, 아이는 항상 돈을 벌고 싶어 했다. 아마도 한정된 용돈 속에서 친구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조금 빠듯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는 정해진 용돈을 넘어서서 더 달라고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용돈 내에서 쓸 돈과 아낄 돈을 잘 분배할 줄 알았다. 가끔 함께 슈퍼에 갈 때가 있는데 내가 먹고 싶은 간식거리 앞에서 살까 말까 주저하는 것을 보면 매우 거리낌 없이 자신이 사주겠다고 나설 만큼 아껴서 모은 돈을 기분 내서 잘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매번 기분을 내는 것은 아닌데, 장난식으로 ‘저거 사줘.’를 남발하는 내게 딸아이는 ‘돈 없어.’를 반기계적으로 얘기할 정도로 짠순이이기도 했다. 돈이 없다는 아이의 말은 분명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정말로 돈이 필요한 순간에 아이는 항상 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사는 아이였지만 넉넉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자꾸 알바 자리를 기웃대었다. 물론 미성년자였던 아이에게 알바 자리가 쉽게 나올리는 없었다. 


 그러던 아이에게 공식적으로 알바를 해야 할 기회가 왔다. 지구여행을 가기 위한 비용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구여행에 가는 아이들은 각자 그들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했다. 딸아이는 처음엔 알바 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알음알음으로 들어오는 단기 알바들을 했다. 주로 내가 알아봐 주는 일이었는데 주말에 아이들 돌보는 일, 재정사업을 위한 일일주점 서빙 등이 그러한 일이었다. 처음 하는 일들이라 서툴고 어눌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야무지게 잘 해냈다. 돈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서투르게 하면 안 된다며 제법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정식으로 알바를 할 기회가 왔다. 같이 지구여행을 하는 아이가 자신은 정해진 돈을 다 모았다며 자신이 일하고 있던 식당 알바 자리를 우리 딸에게 양보해 주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알바 일에 아이는 무척 기대를 했다. 식당 일은 학교가 끝나고 3시간 정도 하는 일이었다. 모든 일이 처음이었던 아이는 적응하는 과정에서 조금 덤벙대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해서 사장님께 지적도 많이 당한 모양이었다. 일이 조금씩 손에 익어갈 즈음에도 실수는 줄어들지 않았는데 손님이 몰릴 땐 분주하게 서빙을 하느라 다른 일을 보기 힘들었고, 손님이 적을 땐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데 아직 처음 하는 일이니 그런 일들이 보일 리 만무했던 것이다. 하지만 잘 적응해 나갔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어려움을 잘 헤쳐나갔다. 


아이는 매일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투덜대며 엄마에게 털어놓을 때가 많았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돈 벌자고 고생하고 있는 아이가 조금 대견했다. 또 험난한 알바 신고식을 하느라 맘고생을 하고 있는 아이가 짠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처음엔 실수가 많은 게 당연하고 이제 곧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아이의 말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사장이 아이가 어리다고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찍 간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면서 조금 일찍 일이 끝나면 왜 그만큼을 임금에서 빼는 거야? 손님 없는 것이 니 책임도 아닌데? 그걸 왜 또 하루 계산해서 주고... 하루 고용된 것도 아니고 기본 한 달을 일하는 건데.”


 처음부터 근로계약서 같은 것은 쓰지도 않았다. 정해진 룰도 없이 사장 맘대로 근무시간은 정해졌고 그에 따라 매일의 임금이 달랐다. 아이와 함께 흥분을 하며 부당함을 나눴지만 달리 어쩔 도리는 없었다. 아이는 알바를 해야 했고, 미성년자 알바를 고용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는 그 일을 계속해야 했다. 어떤 면에서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의 처지도 딱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손님이 없을 땐 굳이 알바가 필요없으니 고무줄 같은 알바시간을 이해해보자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상식적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가 일을 그만둘 무렵에 우리는 그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그 식당에서 석 달 정도를 일을 하고 아이가 원했던 자금을 다 모았다. 그리고 슬슬 지구여행 준비를 해야 했기에 아이는 식당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바로 일을 그만하겠다고 나오는 것은 예의상 안될 일이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미리 얘기를 했다. 사장은 한 달간 다른 알바를 구해보겠다며 아이에게 한 달만 더 일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한 달이 다 되도록 알바는 구해지지 않았다. 사장은 한 달만 더 일하라는 약속을 깨고 아이더러 한 달 더 일하라고 명령식으로 말했다. 지구여행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이로서는 매우 난처할 뿐이었다. 미리 이야기해두었기 때문에 한 달 더 일할 의무는 없었던 아이였지만 나와달라고 말하는 사장 앞에서 안 나가겠다고 하기는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결국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직접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희 아이가 한 달 전에 미리 말씀을 드렸는데 계속 더 나와서 일하라고 하시는 요구는 조금 부당하네요.”

 “하지만 알바가 그다음 알바를 구해주고 나가야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그거는 노동법에도 나와있어요. 알바가 구해지기 전에는 일 그만 못 두니 알아서 하세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얘기였다. 아니 알바가 직접 다음에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한 달 동안 알바를 구할 기회를 주었으니 사람을 구하는 일에 대한 책임은 사장에게 있는 데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아이가 아직 어려 그 아이도 돌봐야 하는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내가 다 해야 하느냐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우리에게 투정을 부렸다. 도대체 알바가 사장의 사정을 봐주며 일해야 하는 경우는 어디에 나온 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 자꾸 언성이 높아져 결국 아이 아빠에게 직접 전화해 보라고 했다. 처음에 아이를 식당에 데려다주는 임무를 아빠에게 맡겼었고 근로계약서까지 잘 받아오라고 시켰었는데 아무래도 대충 넘어간 모양이었다. 첫 단추부터 아이의 아빠가 잘못 끼웠으니 마무리라도 잘 하라고 책임을 넘겼다. 조금 실수는 있었지만 아이의 아빠는 노동조합에서 오랫동안 상근간부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사장과 통화하며 구체적인 법 조항을 들어 사장에게 강수를 두었던 것 같다. 결국 아이는 그 식당을 그만둘 수 있었고, 지구여행 뿐만 아니라 갔다 와서 쓸 돈까지 조금 마련할 수 있었다.




 첫 알바의 교훈은 아이에게 꽤나 유효했는지 이후 다른 일을 할 때도 근로계약서 정도는 스스로 잘 챙겼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일을 경험해보니 지금 20대를 막 맞이한 아이들은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 말고 사회생활에 앞서 진정 알아야 할 지식을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학교는 미래의 노동자를 키워나가는 곳이다. 그들이 알아야 할 지식은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래저래 매우 바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내 아이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부모들 스스로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부모가 되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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