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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Sep 13. 2022

아이를 키우며 내가 의도했던 것

 아이가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찾아온 어느 날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침대는 놔두고 내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아무 말하지 않으면 밥 한 끼 먹지도 않고 그 자세로 아침부터 밤까지도 있을 아이였다. 나름 의무적으로 엄마를 보러 왔지만 그렇다고 무얼 하고 싶은 의지도 없어 기껏 선택한 것이 엄마 침대에서 뒹굴거리기 인 듯하다. 요즘 야근에 특근까지 하고 있다는데 나 또한 그런 아이가 안쓰러워 오랜만에 챙기는 휴식시간을 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었다. 핸드폰을 보느라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손가락만 까딱 까닥 하던 아이가 문득 키득 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뭔가 재밌는 것을 보았나 보다 싶어 궁금한 마음에 아이에게 물었다.


 “뭐가 재밌는데? 나도 좀 보자?”

 “지금 엄마 글 읽고 있는데 읽을수록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가?”

 “내가 어릴 때 했던 것들이 다 엄마가 의도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거든.”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웃음이 피식 났다. 당연한 얘기였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의도하지 않고 교육을 하겠는가. 아주 사소한 노래 하나 듣는 것까지 나는 모든 것을 의도하고 아이를 키웠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투영하는 일이다. 심지어 아이는 나의 행동, 말투, 생각까지 보고 배우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모는 아이의 거대한 성장환경이된다.


 내가 특별히 신경 썼던 교육은 노동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일상적인 생활들을 함께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노동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아이가 쉽게 할 수 있는 가사노동부터 아이가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는 항상 아이가 하는 일이었다. 아주 가끔 아이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는 내가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청소는 아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도맡아 했다. 정리된 환경에서 사는 경험이 아이에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스스로 정리하며 사는 것을 실천하게 되리라고 믿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빨래를 돌리고, 건조대에 너는 일, 무무(반려묘)의 사료를 챙기고, 화장실을 치우는 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일 등 모든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아이들과 하는 가사노동을 나도 아이와 나누어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는 그런 일들을 하면 할수록 더 하기 싫어했다. 당연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자신이 안 해도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시도했던 방법은 가사노동 분담 표를 만드는 일이었다. 각각의 노동의 세기에 따라 용돈 지급액을 조정해서 스스로 용돈을 벌 수 있게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지키기 힘든 약속들이었다. 아이는 그 용돈이 없어도 살 수 있었다. 하기 싫다고, 귀찮다고, 할 시간이 없다고 해버리면 그만일 때가 많았다. 용돈이 크게 필요 없던 시절 아이를 가사노동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이 기부였다. 세상엔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이야기 나누며 자연스럽게 그들을 돕는 방법으로 기부라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은 예상과는 달리 굉장히 큰 성과를 가져왔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며 한 번 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아이와 나는 매달 각각의 이름으로 기부단체에 기부를 하기로 했고, 아이의 기부금은 아이가 가사노동을 하고 번 돈으로 하겠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기부를 하는 동안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졌고, 귀찮지만 그것을 위해 가사노동을 자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성향을 살짝 발견했던 경험이었다.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대안학교에서 남은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곳에서 만난 교사와 내 아이에 대해 상담을 했던 무렵 했던 얘기들이 생각이 났다. 


 “OO이는 어쩌면 엄마처럼 돌봄을 실천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어요. 생활하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게 사람들을 챙기고 돌보는 일을 잘하더라고요.”


 물론 아이는 선생님이 이상하다며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 엄마처럼 보육교사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른 척 넘어가기는 했지만 선생님의 생각에 조금은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는 내향적인 편이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는 일이 서툴고 느리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편하게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배려하는 편이었다. 동생들도 잘 챙기고 가끔 보육교사인 엄마를 따라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면 아이들도 잘 보살폈다. 게다가 동물들도 매우 좋아해서 유기동물 보호센터에서 하는 자원봉사도 자진해서 다니기도 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무엇이 될지 처음부터 알 수는 없지만 아이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면 조금씩 아이도, 부모도 알아가게 되는 것이 잠재력인 것 같다. 내가 의도했던 교육은 아이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동안의 기본적인 생활 노동을 익히게 하는 것이었지만 아이는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얻게 되었다.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지금 당장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 아직 살아갈 시간 동안 해보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해보고 살아도 충분한 나이이다. 아이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만날 수많은 선택을 맞닥뜨리겠지만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의 힘을 믿고 잘 헤쳐나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의도했던 것이고, 조금은 성공한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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