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식사를 위한 교사의 고민
오늘도 아침부터 감을 깎았다. 아이들이 잘 먹는 간식이라서 매일 감을 먹는 것이 싫지는 않으나 워낙에 잘 먹다 보니 한정 없이 먹겠다고 할 때가 있어 곤란할 때도 있다. 아이들과 과일을 먹을 때는 주로 껍질까지 다 먹게 해서 가운데 심 정도만 정리해서 주었는데 오늘 감은 따놓은지 조금 시간이 지난 것들이라 조금씩 물러지면서 껍질이 두꺼워져 한참 동안 감을 깎고 있어야 했다. 그나마도 아이들이 먹는 속도가 감을 깎는 나보다 빨라서 손이 안 보이게 감을 깎아주어야 할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고충도 모른 채 옆에 친구들과 아침부터 굉장한 수다를 떨며 순식간에 감을 다 먹어버렸다.
그렇게 아침부터 감을 한 바구니 동을 낸 아이들이지만 나들이 길에 만나는 감나무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익어서 홍시가 된 감들이 더러 땅에 떨어져 있기도 해서 그런 것들을 찾고 있느라 그런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도 잘 닦아서 먹으면 달콤한 부분을 꽤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먼저 먹고 나서 떨어진 것들까지는 먹지 않도록 그나마 덜 먹는것 같다. 그때 감나무 주변에서 한참을 그렇게 놀던 아이들이 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무언고 보니 까마중이다. 이맘때면 까맣게 익을 대로 익은 까마중을 꽤 많이 보게 되는데 마침 감으로도 배가 차지 않는 녀석들에게 제대로 딱 걸린 참이다. 까마중은 보리수 열매보다 더 작은 둥글둥글한 열매로, 여름에 초록색 열매로 지내다가 가을이 되면 진한 보랏빛으로 익게 되는데 얼핏 보면 까만색에 가까워 까마중이라 불렸나 싶다. 손으로 짓누르면 토마토처럼 무른 씨앗들이 과즙과 함께 툭 터져 나온다. 그래서 이 까마중도 작은 아이들보다는 소근육 발달이 조금 더 된 큰아이들이 더 잘 따먹는다. 그렇더래도 다 먹고 나면 작은 아이들이든, 큰 아이들이든 입 주변이 온통 보랏빛인 건 매 한 가지다.
"이모, 준호 입이 보래졌어요.(보랗게 물든 것을 아이들 딴에 맞춘 종결어미. 가끔 초래 -초록색- 졌다는 표현도 쓴다.)"
다른 열매들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새콤달콤한 강도가 덜한 토마토 같은 맹맹한 맛인데도 아이들은 가을 나들이길에 만난 까마중을 그렇게 좋아한다.
이렇게 오전 내내 뱃속을 든든히 채운 녀석들이 점심이 먹고 싶을 리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점심 밥상에 소극적이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오늘따라 밥상이 채식 밥상이다. 우거지 된장국에 호박나물과 버섯까지 있다. 잘 먹는 아이들이야 호박의 달큰한 맛도 좋아하고 진한 멸치육수에 우려낸 구수한 된장국도 좋아하지만 원래부터 반찬투정이 있는 아이들은 이러한 반찬이 나올 때마다 숟가락을 들 생각도 않고 친구들하고 장난만 친다. 오늘은 아무래도 아이들 밥 먹는데 집중을 많이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오늘처럼 밥상에 열의가 없을 땐 처음부터 굉장히 호들갑을 떨어 주는 것이 좋다.
“우와~, 내가 좋아하는 버섯이다. 오늘 이모는 밥을 두 그릇 먹어야겠다.”
이렇게 한마디 던져놓으면 분명 대꾸해주는 아이가 나타난다. 특별히 버섯을 좋아하는 도율이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마디 했다.
“나도 버섯 좋아하잖아요.”
이제 누가 더 버섯을 좋아하는지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런 기세면 아이들이 배식을 받자마자 버섯부터 먹을 것이다. 먼저 준비된 아이부터 배식을 하고 모두 밥 먹을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식사기도를 하기 위해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아이들은 교사를 보고 따라서 손을 가슴에 모았다.
“귀한 음식 주셔서 고맙습니다. 골고루 알맞게 잘 먹겠습니다. 이 음식 먹고서 참되게 살겠습니다~. 이모, 잘 먹겠습니다!”
매일 하는 기도라서 이제는 자다가도 생각나는 긴 기도문을 아이들은 각자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춰가며 운율감 있게 기도문을 읊었다. 아이들이야 참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야 없겠지만 참된 교육을 하기 위한 교사로서의 책임이 막중해지는 기도문이다. 간혹 밥 먹기 전 아이들의 진지한 기도문에 새삼스레 감동을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땐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한참동안 흐뭇해 하기도 한다.
날이 조금씩 쌀쌀해져서인지 아이들은 따뜻한 된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가끔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어도 되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럴 땐 반찬을 다 먹고 나서 국물만 남으면 말아먹게 했다.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에게 먹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좋은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서 균형 잡힌 발달을 이루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평생의 식사습관을 잡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먹는 것의 첫 번째 중요한 것은 잘 씹어먹는 것이다. 잘 씹어야 침도 많이 분비가 돼서 소화가 잘 되기도 하고, 씹는 일을 통해 뇌도 건강하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잘 씹어야 턱이 튼튼하게 잘 발달하는데 턱관절이 튼튼해야 모든 소화기 계통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아이들과 밥을 먹을 때 ‘스무 번 씹기’를 일부러 해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특별히 밥이 달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콩이 고소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이 의외로 맛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에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기질들이 다르듯이 태어나면서부터 먹성이 좋은 아이들이 있고,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특별히 교사나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먹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같이 먹는 어른들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모든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이 제각각의 특성으로 좋은 음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먹어보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먹어봐야 무슨 맛인지 알고, 그다음 경험을 어렵지 않게 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먹기 싫어하는 음식이더라도 한 조각은 먹어보게 한다. 억지로 많은 양을 먹이려 하지 않고, 하나만 먹어보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땐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버섯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버섯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앨리스라는 아이가 있었어.”
“나, 그거 아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자 책을 읽어서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은 한 번씩 알은체를 해주며 더욱 교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자, 다 같이 밥 한 숟갈 뜨고.”
그리고는 아이들이 각자 밥 한 숟갈씩 뜨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앨리스는 어느 날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된 거야.”
“토끼를 따라가서 그런 거야.”
이야기를 아는 아이가 또 참견을 한다.
“맞아. 나무 밑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리 들어갔대. 그랬는데 키가 갑자기 작아진 거야.”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이야기는 급전개 된다. 아이들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따지지 않는다. 교사가 하는 얘기가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앨리스 앞에 커다란 버섯이 있었어. 그래서 앨리스가 그 버섯을 한 조각 떼서 먹었지. 앨리스는 어떻게 되었게?”
이야기를 아는 아이는 앨리스가 키가 엄청 커졌다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얘기를 앞다퉈 풀어놓기 시작했다. 교사는 이럴 때 조용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스스로 조용해진다.
“근데 오늘 우리도 버섯이 있어. 이 버섯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봐볼까?”
이야기를 아는 아이들은 한입 먹어보고는 키가 커졌다느니, 또는 그냥 이야기니까 우리는 그렇게 안 커진다느니 하며 또다시 소란스럽다. 버섯이 싫은 아이들까지 모두 한입씩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먹는 것이 싫지만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매우 궁금해서 안 먹고는 못 배기기 때문에 결국 모두 한입씩 먹어본다. 마지막 아이까지 버섯을 먹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지막 일갈을 한다.
“어때, 키가 커지는 게 느껴져? 이모는 다 보이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키가 실제로 커지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커졌다고 믿게 된다. 물론 안 믿는 성숙한 아이들도 있지만 교사의 이야기가 재밌어 그런 부분은 너그럽게 이해해준다.
나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반찬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가 교사로 있는 동안 이 방법이 안 먹힌 적이 없었다. 심지어 밥을 먹는 동안 시장통 저리 가라 떠들던 아이들을 밥 먹는 일로 집중을 시키기 위해서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옛날 옛날에~’라는 서두를 꺼내 들면 각자 이야기로 바쁜 아이들이 모두 교사를 향해 반짝이는 눈망울을 모은다. 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어여쁜 아이들이 나만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는데 어련하겠는가.
결국 오늘도 모든 아이들이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오늘따라 된장국도 맛있어서 식판을 들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식성이 아저씨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아이들이다. 매일 소란스러운 시간이지만 이렇게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면 하루가 다 뿌듯하다. 덕분에 나도 든든하게 밥을 많이도 먹어서 빵빵해진 배를 툭툭 두드려댔다. 밥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른 건지 아이들의 사랑스런 웃음으로 배가 불러진 건지 그건 알 수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