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 Jan 01. 2023

내 띠는 말이야~

아이들과의 마주이야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하루하루가 즐거운 일들로 가득 차 있는 생활이다. 엉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라서 때론 그들을 규칙이라는 경계 안에 두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것을 틀렸다 말하지 않고 이해해주고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면 그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 없다. 특히 아이들이 대화하는 것들을 들어보면 때론 아이들의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들에 박장대소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잊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기록을 해 두려고 한다.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을 흔히 마주이야기라고 한다. 11년간의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기록하고 기억하는 마주이야기가 매우 적어 속상하지만 때때로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내 재산처럼 귀하다. 새해 첫 날, 재산처럼 귀한 이야기 한 부분을 선물처럼 풀어보려고 한다.


 


 새해가 밝아 토끼해가 시작되니 아이들과 나누었던 '띠' 이야기들이 생각이 난다. 매년 새해가 되거나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하는 순간이 되면 각자 아이들의 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아이들은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자신을 대표하는 동물 이미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해하는데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띠뿐만 아니라 같은 반 아이들의 띠, 선생님들의 띠, 부모님의 띠를 매우 궁금해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로 토끼띠이기 때문이었다. 토끼띠는 아이들이 선호하는 띠 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토끼가 가지고 있는 귀여운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듯했다. 게다가 옛날이야기 속 토끼는 영리하고 항상 승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알라는 무슨 띠야?"

 "나는 토끼띠인데?"

 "나도 토끼띠 할 거야."

 "바보야, 토끼띠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띠를 조금씩 알아가는 어린 동생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띠를 말하기도 하는데 조금 나이가 든 형님들은 동생들의 헛된 욕망을 바로 잡아 주느라 거침없이 직언을 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한편으론 슬픈 일일수도 있는데, 6살만 돼도 띠는 이미 태어난 순간 정해져 버린다는 것을 알아 다른 띠가 되고 싶은 꿈을 꾸지 못한다. 

 어떤 아이는 띠 결정론의 개념 자체가 아예 다르게 정립된 아이도 있었다.


 "나는 무슨 띠인 줄 알아?"

 "무슨 띠인데?"

 "내가 '양OO'이니까, 양띠야."

 "아, 그렇구나~"


 띠가 정해지는 것은 다양한 방법이 존재함을 그 아이를 통해서 배우는 거다. 실제로도 그 아이의 띠는 양띠였는데 어쩌면 부모가 농담처럼 아이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줬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믿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 애써 정정해주지 않고 진지하게 수긍해 주었다. 


 아이들과 나눈 띠 이야기 중 가장 웃음이 났던 이야기는 따로 있다. 몇 년 전 다섯 살 아이들을 돌보던 시절이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이었다.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점심시간엔 매우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범람하는데 어느 한 교사가 도대체 이렇게 시끄럽게 이야기 나누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주제의 이야기들을 하는지 알고 싶어 점심시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녹음을 해보았다고 한다. 결론은 200가지가 넘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교사들도 함께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단지 밥만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제 있었던 이야기, 오늘 있었던 이야기, 가족들이랑 여행 갔던 이야기, 할머니집 갔던 이야기 등등 수많은 생각들을 가감 없이 꺼내놓으며 밥상머리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녀석들인 것이다.

 그렇게 그날도 아이들은 점심을 먹으면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펼쳐놓고 있었더랬다. 그러다 문득 한 아이가 띠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나는 용띠야.”

 “어? 나도 용띤데?”


 어차피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라서 띠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서로 놀라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띠라는 것이 반가웠는지 서로 용띠라며 아는 척을 했다.


 “나는 호랑이띠 할 거야.”

 “너는 호랑이띠 못해. 우리 다 용띠야.”


 물론 걔 중에는 조금 지적 수준이 높은 아이들이 있어 아이들의 틀린 생각들을 정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애들이 있기 마련이다. 용띠보다는 호랑이띠가 하고 싶었던 아이가 실망을 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그 아이의 알바가 아니다. 그때 한 아이가 기습 질문을 한다.


 “우리 오빠는 무슨 띠인 줄 알아?"


 그 아이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다. 아이의 질문을 들으며 두 살 터울이니까 오빠가 호랑이띠라서 호랑이띠가 되지 못하는 아이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나 보다 싶어 아는 체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와중에 그 아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빨간 띠야.”


 나는 그 자리에서 듣자마자 포복절도하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아이들은 아마도 내가 왜 그렇게 웃는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아이들은 그저 '아~' 하고 안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이들의 엉뚱한 생각과 이야기들이 또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1년에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눈 오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