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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ul 07. 2024

하지에 하는 일

“이번 주부터 하지 절기에 들어가게 돼요. 하지 절기에는 어떤 변화들이 있을까요?”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모두 함께 여는 자리에서 이번 주 무슨 일들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절기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것이라서 이야기의 서두는 자주 이렇게 시작하기 마련이다. 연차가 쌓인 고학년들은 절기마다 해야 할 일들을 이미 몸으로 체득한 상태라 답은 들어보나 마나 정답이다.   

  

“감자를 캐야지요.”     


 당연한 얘기다. 오며 가며 마당 틀밭에 감자 잎이 누렇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아마 마음속으로 곧 ‘감자를 캐야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토마토며 고추는 조금씩 열매가 커지거나 붉어지면서 따야 할 시기를 가늠할 수 있지만 땅속에 숨어 있는 감자는 잎이 누레져가는 것을 보아도 알이 얼마나 익었는지, 또는 커졌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으니 직접 캐보기 전까지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속으로 하지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어쨌든 하지를 앞뒤로 해서 모든 학년이 감자를 캤다. 올해는 반별로 홍감자를 심기도 하고, 수미감자를 심기도 했던 터라 수확하는 시기도 열매의 굵기도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한데 모아놓고 보니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여름 내내 감자만 먹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든든했다. 우리 반은 감자를 가장 먼저 심었던 터라 수확도 가장 빨리 했다. 3월 경칩 무렵 싹이 난 홍감자 더미를 발견하고 그중 씨알로 써도 좋겠다 싶은 녀석들을 골라 밭에 옮겨 심었었는데 막상 수확해 놓고 보니 씨알이 굵은 놈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밭이 틀밭이라 알이 들어찰 만큼 땅이 크지 않아서 알도 많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 위로 섞인 변명을 하며 작은 알감자까지 남김없이 캤다. 하지만 삶아 먹어도 될 만큼 알이 큰 것들도 있어서 골라서 삶아 먹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수확한 감자에 대해 뿌듯한 마음도 컸겠지만 직접 삶아 먹을 생각을 하니 그것도 꽤 기대가 되었는지 신나게 알이 큰 감자들을 골라냈다.


 감자를 깨끗이 씻고 냄비에 감자를 안치고 소금과 설탕을 적당히 풀어 넣어 삶았다. 아이들은 모든 과정을 다 해보고 싶어 해서 감자를 씻는 것도, 냄비에 감자를 넣는 것도, 심지어 소금간과 설탕을 넣는 것도 똑같이 나누어해야 했다. 감자가 익었을 법한 시간에 뚜껑을 열어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찔러보게 했는데 이미 껍질이 툭 터지고 노랗게 익은 속이 먹음직스럽게 벌어져 있어 확인 자체는 그저 요식행위였을 뿐이었다. 모든 학년이 나눠먹을 요량으로 삶았지만 막 삶은 감자의 유혹을 지나칠 수 없어서 우리 반 아이들끼리 먼저 하나를 나눠먹었다. 막 삶은 뜨끈한 감자에 아이들이 해놓은 간이 적당히 배어들어 포근하고 달콤한 맛이 그만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쪄놓은 감자가 너무 맛있어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먹고 싶어 했지만 조금만 참았다가 점심때 모두 나눠먹자고 겨우 달래서 반으로 데려왔을 정도였다.      


 감자를 삶아 먹고 난 이후 우리 반은 살림살이 시간에 감자로 된장국을 또 한번 끓였다. 3학년 아이들의 밥살림의 목표가 각종 국을 끓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학년별 밥살림 목표가 달라서 재료는 감자 한 가지였지만 하지 절기 내내 다양한 감자 요리를 먹어볼 수 있었다. 감자로 무엇을 해 먹을 것인지 함께 이야기하고 또 요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아이들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또 다른 반이 만들어준 감자요리를 먹어보는 일도 매우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요리를 해준 서로에게 감사하며 계절이 우리에게 준 선물에 또 한 번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여름이 깊어가고 있는 동안 작은 틀밭에는 토마토, 가지, 고추 등이 매일 쑥쑥 자라고 익어가고 있다. 마당에서 노는 동안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자꾸 아이들을 유혹해도 모두가 함께 먹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도 쌓여가고 있다. 아마도 방학 전에는 맛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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