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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26. 2021

성냥 발의 소녀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글짓기 부문 동상 수상작 - 성냥팔이 소녀



성냥 발의 소녀의 두발은 딱 성냥 머리만 하다.

성냥 발의 소녀의 발은 동글동글 동그스레하고, 발긋발긋 발그스레하다.

그 작고 귀여운 발 위로 뻗은 두 다리는 가느다랗고, 각이 지고, 허연 것이 딱 성냥개비 심지 그것이다.





성냥 발의 소녀의 발은 너무 작아, 맞는 신발이 좀처럼 없었다.

집을 나설 때는 늘 신발을 신고 나간다. 하지만 급하게 길을 건널 때나, 바람이 세게 불거나, 행여 바닥이 미끄러우면 어김없이 신발이 벗겨지곤 했다.

성냥 발 소녀의 신발은 성냥 머리만큼 아주 작고, 아주 귀엽고, 늘 새것이었기 때문에 벗겨져 날아가 버리면 누군가 집어가기 일수였다.


언젠가, 벗겨진 성냥 발의 소녀 신발을 그냥 가져가려는 아이에게 “그거 내 신발이야, 돌려줘”

신발을 주은 아이는 “이거 내 코딱진데”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주머니에 성냥 발의 소녀 신발을 넣고 그냥 가 버린 적도 있다.

성냥 발의 소녀는 화가 났지만 그 작은 성냥개비 같은 맨발로 차마 쫓아가지도 못하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그날은 지독히도 추운 날이었다. 눈이 내리고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 해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거리는 알록달록 온갖 불빛과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고, 또 화려했다.

때마침 내리는 눈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저마다의 손에 무언가를 가득 안고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냥 발의 소녀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성냥 발의 소녀는, 성냥 발로 종종 거리며 걸음을 빨리 했다. 아무리 빨리 가려해도 성냥 발의 소녀에게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그때였다.

앞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봉지를 안고 오던 소년과 부딪히며 소녀의 몸이 위로 잠깐 떠오르는 듯하더니, 성냥 발이 위로 향하고 쿵!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넘어져 정신이 없는 사이, 성냥 발의 소녀의 성냥보다 조금 큰 신발은, 눈더미 어디인가 폭 박혀 보이지 않았다.

성냥 발의 소녀와 부딪힌 소년도 넘어지며 팔에 상처가 났다. 그리고 소년의 품에 있던 봉지는 땅에 널브러졌다.


봉지 안에 있던, 잘 구워진 칠면조 두 마리가 눈 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졌다. 아직 따뜻한 칠면조 때문에 거리는 순간 고소한 기름 냄새가 솔솔 번졌다.

칠면조 한 마리는 사지를 하늘로 향하여 눕고, 또 한 마리는 살얼음 낀 보도블록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었다.


“아 미안해. 봉지를 안고 가느라 앞을 못 봤어. 너 괜찮아? 이런 너 신발이 벗겨졌네 “ 소년이 말했다.

소년은 자기가 다친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냥 발 소녀의 신발을 찾으려 허리를 숙여 눈 바닥을 기어 다녔다. 하지만 성냥 머리보다 조금 클 뿐인 소녀의 신발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성냥 발 소녀의 작은 맨발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바삐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어떡하지… 너 맨발이네. 너무 춥겠다" 소년이 말했다. 눈 길 위, 성냥 발의 소녀의 두발은  금세 꽁꽁 얼어 울긋불긋했다.

소년은 성냥 발의 소녀의 두 발 앞에, 저만치 천연덕스럽게 퍼질러 있던 있던 칠면조를 두 마리를 가져다주었다. 성냥 발의 소녀는 맨발을 움츠려 모으며 물끄러미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걸 신발 삼아 신어봐” 소년이 칠면조 두 마리를소녀 발 앞에 놓았다.


소녀는 어느새 두 발에 칠면조를 신고 눈길을 걸었다. 칠면조는 아직 따뜻했다. 꽁꽁 얼었던 두 발도 어느새 말랑말랑 녹았다. 차가왔던 마음에도 기름기가 미끌미끌 돌았다.

오리발을 낀 듯 뒤뚱뒤뚱 걸어야 하지만 맨발보다 한결 나았다.


“미안해, 칠면조가 이렇게 되어서 어떡해?” 성냥 발의 소녀가, 눈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스꽝스럽게 걷는 칠면조 두 마리를, 그 안에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디 가는 길이였어?" 소녀가 이어 물었다.

“할머니한테 칠면조를 가져다주는 길이었어. 할머니네 집엔 칠면조 말고 다른 음식이 많으니까 괜찮을 거야. 할머니한테 같이 가보자, 분명 너를 도와줄 방법이 있으실 거야” 소년이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할머니는 창문으로 소년이 오는지 계속 살피고 있던 모양이다.

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할머니 집 문이 활짝 열렸다. 할머니가 준비하고 있던 음식 때문인지,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트리 때문인지, 아니면 방 한쪽의 벽난로 때문인지 할머니의 작은 집은 온기가 가득했다.

열린문으로 빠져나온 할머니집 온기로 거리의 눈도 순간 질펀하게 녹아내렸다. 거리를 데운 그 온기가 소년과 소녀의 허리를 휘감듯 집 안으로 와락 끌어들였다.

"이런, 많이 춥겠구나. 어서 들어와라"


할머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칠면조는 깨끗이 씻어 수프에 넣었다. 할머니는 성냥 발의 소녀의 발을, 맑간 부싯돌마냥 반들 반들 곱게 씻겨 주었다.  

“발이 꼭 성냥개비 같이 귀엽구나.  내 예전 신발 중에 맞는 게 있나 찾아보자”

할머니 오래된 신발장에서 소녀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보았다. 소녀 발에 꼭 맞는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신발장 제일 안 쪽 깊숙이한 곳으로 늙은 허리를 낮춰 기어 들어갔다.


신발장 저 안쪽에는 오래된 성냥갑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성냥갑들을 이리저리 헤치니 저만치, 할머니가 아주 어릴 때, 아직 작은 소녀였을 때 신었던 작고 빨간 신발이 보였다.

오래된 신발 안에는, 할머니가 어릴 때 팔다 남은 성냥개비가 잔뜩 들어 있었다. 신발 속에 들어 있던 성냥개비들을 툭툭 털어 내니 아직 신을만해 보였다.


“오래되긴 했지만 맞긴 할 테야”

할머니가 내민 오래된 신발에서는 알싸한 유황 냄새가 났다. 성냥 발의 소녀는, 작은 두 발을 할머니의 작고 오래된 빨간 신발 안에 들이밀었다. 소녀가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신발장에서 찾은 오래된 성냥갑들을 벽난로에 하나하나 던져 넣으며 말했다.

“이 성냥들이 아직도 집에 이렇게 많이 남아 있었네. 이젠 필요 없지”


성냥 발의 소녀는 할머니의 오래된 신발을 신고 타박타박 제자리 걸음걸이를 했다. 성냥 발의 소녀에게 꼭 맞는 신발을 요리조리 내려다보며 신이 나서 신기해서 계속 타박타박 타박타박 발로 춤을 추었다.  


타박타박 타박타박, 신이 발에 꼭 들어맞아 걸을 때 나는 경쾌한 소리가 난다.

타닥타닥, 타닥 타다닥, 벽난로에서는 성냥이 타며 한바탕 신나게 불꽃놀이를 한다.



타박타박, 타닥 타다닥, 타박타박, 타닥 타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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