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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Sep 15. 2021

선물

과거 완료형 7

아기를 만나기 전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낳지 않은 아기를 키우게 된다면 얼마쯤 지나야 그 아기가 내 자식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까, 정이 안 들면 어쩌지, 혼자서 소설을 썼다 지웠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는지 우리가 가족이 되는 순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기가 있기 전에는, 옷을 좀 신경 써서 차려입고 얼굴에 뭐 하나만 살짝 찍어 바르고 외출했을 때 길을 걷다가 시력 안 좋은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를 받곤 했었다. "저, 아가씨~ 말 좀 물어요." 어엿이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결혼한 여자가 어째 '아가씨'라는 단어 한 마디에 그리도 기분이 둥실 떠오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그 멋진 미시족들 틈에 나도 좀 덩달아 끼어볼까 기웃대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기가 생기니 나의 관심사가 바뀌었다. 내 아기를 안고 다닐 아기띠, 아기가 입을 옷, 바를 크림, 가지고 놀 장난감들에 온통 집중되고, 심지어 아직 때도 이른 유모차 등을 눈독 들이기도 한다.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예방접종을 맞추러 가는데 아니, 남들은 아기 없나? 나 혼자만 무슨 보물단지를 안고 가듯 어깨에 딱 힘을 주고 걷는 내 모습을 의식하며 웃음이 나온다. 내가 꿈꿔오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아기 냄새가 너무 좋다. 세상에 어떤 향기가 이보다 더 향기롭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아기의 냄새, 아기의 숨소리, 잠결에 하는 배냇짓, 통통한 손과 귀여운 발은 내 심장을 자주 두근거리게 만든다. 배 안 아프고 낳았는데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는 거구나.


아기가 우유를 먹으며 내 눈을 마주 볼 때, 어디가 불편한 지 낑낑거리다가도 내가 토닥토닥 두드려주면 안정된 표정을 지을 때, 아기가 누운 채로 나의 동선을 따라 눈동자가 따라올 때, 다른 사람 품에 안겨 울다가도 내가 안아주는 순간 울음을 그치고 밝은 얼굴로 활짝 웃어줄 때, 세상 편한 얼굴로 내 옆에서 쌔근쌔근 잠자고 있을 때, 내가 이 아기의 엄마구나 싶어 감동이 밀려온다. 세상 어떤 부귀영화도 부럽지 않다. 


아기의 옹알이가 날로 늘어간다. 함께 눈을 맞추며 딸아이와 오래도록 그렇게 수다를 떤다. 할 일도 많은데 하염없이 엄마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니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못 이기는 척 수다를 이어간다. 아기랑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선물 같은 아기와 선물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너무나 귀하다. 



2001년 4월 3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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