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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Sep 13. 2021

현지 학교 적응기 3

베트남 이야기 9

3년 간 다닌 베트남 학교에서 상처를 받은 작은딸은 한국국제학교로 가길 원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학교에 들어가려면 관문 하나를 또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게 경제 발전 중이던 베트남은 한국 기업에서 일할 주재원 인력들이 점점 더 필요해지게 됨에 따라 가족 단위의 한국인들이 몇 년 전부터 이미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베트남에서 사업을 해보려고 건너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학교가 학생들이 급증하는 바람에 교실을 추가해서 만드느라 과학실이 교실이 되고, 교무실도 교실로 개조해서 쓰는 등 일선의 선생님들이 무척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해외 곳곳에 있는 한국국제학교들 중 학생수가 가장 많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학교로 단연 베트남이라는 뉴스도 봤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을 다 받을 수 없으니 학교에서는 국.영.수 세 과목의 시험을 치른 다음에 필요한 정원만큼만 합격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 난감했다. 딸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만 마치고 한국을 떠나와서 그 이후로는 한국 교과서를 열어본 적도 없고, 더구나 공부랑 안 친하고, 성적 때문에 상처를 받아 겨우 마음 추스르는 중인데, 또다시 국.영.수 시험이라니... 


방법이 없었다. 딸에게 이런 상황을 잘 설명을 해준 후, 혹시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일(홈스쿨)에 대해서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한국인 단톡방에 국.영.수 교과서와 문제집을 수소문해 겨우 구해서 딸과 함께 공부를 시작하려고 책을 열었다.  아... 그러나 7학년 수준의 국.영.수를 감당하기엔 딸이나 엄마나 무식했다. 


시험을 치르고 얼마 뒤에 한국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했다고. 한국 엄마들 통신에 의하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몇 명씩 들어가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데 이게 무슨 일인지... 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7.학.년.만. 미달 상황이었던 것이다. 딸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은 채(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우리 가족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것처럼 소리를 질렀고, 근사한 축하파티를 했다. 7학년 2학기부터 한국학교 학생이 된 딸의 얼굴이 오랜만에 미소로 환해졌다. 

  



고등학생이 된 큰딸은 엄마인 내가 봐도 참 성실했다. 베트남어 실력이 부쩍 늘어가니 성적도 쑥쑥 올라갔고, 언어가 되니 남의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발생하는 어지간한 일들은 거뜬히 해결해 냈다. 현지에 완전히 적응한 딸이, 어느 날 머리 식히려고 광고지에 올라온 '케이크 만들기 수업'에 참가했는데 1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진행된 수업이 끝난 후, 완성된 케이크를 들고 나오기 전에 이름을 써내야 했는데 한국인 이름인 것을 보고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발음이 정확해서 베트남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에 딸은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 말했다. 


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구 말대로 8학년이라 힘들었을 텐데 학교 생활이나 베트남어를 그렇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였다고 생각하느냐고. 딸이 대답했다. 첫 번째는 못 알아듣는 베트남어라도 수업 시간에 한 번도 졸지 않고 집중했었고, 두 번째는 언어가 부족하다고 해서 정신연령이 낮은 것도 아닌데 친구들에게 아기 취급당하는 게 싫었고, 세 번째는 혹시나 공부 못하면 베트남 친구들이 한국 아이들은 다 공부 못한다고 생각하여 얕잡아볼까 봐 열심히 한 거라고 대답했다. 포기하고 싶은 적이 당연히 많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12학년 졸업반이 된 딸에게 큰 관문은 대학교 입시였다. 우리나라처럼 이 나라 학생들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한국의 수능처럼 국가에서 주최하는 대학 입학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 점수 혹은 내신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교의 입학 원서를 지원한다. 그러나 시험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 왜냐하면 대학 입학시험이 곧 고등학교 졸업시험이기도 하기 때문에 졸업하려면. 


대학 입시 시험이 있는 날, 베트남도 한국의 수능 시험 날과 같은 진풍경이 펼쳐진다. 각 학교 정문마다 학부형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 나와서 그동안 수고한 자녀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할 겸 마냥 기다린다.

 

시험 마치고 저 정문으로 나오게 될 딸을 나도 기다리는 중...



대학 입학시험 성적으로는 감히 쟁쟁한 실력을 갖춘 현지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다. 1차로 원하던 외교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9.0의 내신 성적으로(한국처럼 등급제가 아니라 점수제로 한다) 베트남 경제 대학교이자 미국대학교 분교인 OOOO 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베트남어에 집중하느라 영어까지 못 챙겼던 것을 항상 아쉬워하던 딸이 영어로 공부하는 대학교에 들어가니 다행히 영어 실력도 부쩍 늘어가는 게 보인다. 2학년이 되자 현지 학생들의 추천으로 과대표가 되었고, 이달 말부터 3학년이다. 시간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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