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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Sep 23. 2021

잘했어!

과거 완료형 9

이틀 전에 아기가 감기에 걸려 고열이 있는 바람에 병원에 다녀왔었는데, 오늘은 얼굴에 뭐가 도톨도톨 올라와 있기도 하고, 귀에서 찐득한 물이 나오는 것이 심상치 않아 오후에 다시 병원엘 갔다. 중년의 친절한 남자 의사는 아기들이 감기로 인한 고열 끝에 중이염을 놓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고, 비염이나 아토피도 함께 오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할 거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일시적인 경우도 있지만 유전적으로도 생길 수도 있습니다. 두 분 중에 혹시 이런 증상을 가지고 계신가요?"

"........."

잠시 말이 막혔지만, 의사 앞에서 솔직해야 아기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건 너무나 당연할 일이었다.

"유전적인 부분은 자세히 모르겠어요. 아기를 입양했거든요."

"아, 그래요? 잘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의사의 말이 기분 좋게 들렸다.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않았는데도 깊은 진심이 전달되어 감사했다.  




최근에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 우리 부부가 입양한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다양한 말을 듣는다. 입양에 대한 인식들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잘 했네. 아기 데려다 키우면 (나의)애도 들어설 수 있다잖아." 

이건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내가 내 아기를 낳고 싶어서 입양을 한 게 아닌데 가끔 어떤 사람들은 마치 덕담을 해주는 듯하면서 악담을 한다. 그들 앞에서 바로 아기의 귀를 막고 싶어진다.


"대단해요. 훌륭하십니다."

아... 우리 부부는 남들과 달라서 입양을 한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기가 필요했고, 우리 아기도 부모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되었을 뿐이다. 훌륭하다는 그 표현을 들으면 힘이 쭉 빠지고 이상하게 가슴 한 구석이 허해진다.


"좋은 일 했으니 엄마 아빠가 복 받을 거예요."

좋은 일이란 표시 내지 않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각자 조용히 선행한 것을 서로 모르게 하는 것이 진정한 좋은 일이지 않을까. 아기를 입양해서 뭘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기가 복 받았네."

이것도 아니다.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우리가 어찌 거저 얻었단 말인가. 결혼하면 당연히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아기인 줄 알았지만 결코 아니었다.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선물로 온 아기인데... 복 받은 건 우리 부부다. 


"잘했네요."

맞다. 딱 이 말 한 마디면 좋을 것 같다. 더 이상의 부차적인 말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잘했다'는 그 간단한 말 속에는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말하며 등을 토닥여 주는 격려의 느낌이 있다. 또한 내가 나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잘했어!".


2001년 5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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