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리 레빈의(Sherrie Levine)의 차용 예술
쉐리 레빈(Sherrie Levine)의 차용 예술(Appropriation art)
쉐리 레빈은 미국의 차용 예술(Appropriation art)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사진 세대(Pictures Generation)’ 그룹의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예술에 있어서의 재현, 현대 정보 사회에서의 원본과 복제를 둘러싼 예술의 독창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콘스탄틴 브랑쿠지(Constantin Brancusi),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에드가 드가(Edgar Degas) 등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의 작품을 패러디(Parody)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녀의 작업은 예술 작품의 전시, 감상의 변화, 미술관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지는 해석 등과 관련한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모든 말이나 이미지들이 차용, 양도된다. 하나의 그림은 더 이상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특정한 공간, 맥락 안에서 그 어떤 것도 원본이라고 할 수 없는 여러 다른 이미지들과 충돌하고 휩쓸린다. 따라서 그림의 의미는 더 이상 그것의 기원이나 독창성에 있지 않고 그것이 가리키고 지향하는 것에 있다. 즉 관객은 그 지시자의 의도에 의해 예술의 역사 속 수많은 인용구가 차례로 새겨진 그림을 수용한다. 다시 말해 절대로 원본일 수 없는, 앞서 만들어진 작품의 흉내를 내며 더욱 방대한 백과사전으로 탄생되는 작품 앞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사진,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매체에 걸쳐 서양 미술사에 남은 많은 작품들, 기호화된 모티브 등에서 파생되는 여러 담론들,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가 인식, 소비되는 패러다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1936년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는 미국 대공황 시기의 앨라배마의 소작농 가족의 초상을 찍었는데 1979년 쉐리 레빈이 그의 전시 카탈로그, ‘처음, 그리고 마지막 (First and Last)’에 실린 사진을 그대로 찍어 ‘After Walker Evans’라는 제목으로 전시하였다. 쉐리 레빈은 개념 미술이 문화 이론과 예술의 역사의 맥락 안에 존재하며 종종 철학적 심도는 배제한 채 이해와 접근이 쉽지 않은 문제 제기를 한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워커 에반스를 비롯한 남성 예술가들이 서양 예술의 역사에서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믿었다. 그녀는 누구든 사진의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독창성’이라는 모더니즘적 언어의 인식에 대해 재고해 볼 것을 권고하였지만 그러한 과정 역시 포스트 모더니즘의 맥락 안에서 여전히 ‘독창성’의 개념을 발생시킨다. 그녀의 작품이 예술가의 독창성과 작품의 저작권 문제에 있어 예술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예의 부정이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지만 그녀가 워커 에반스의 사진을 다시 찍은 것은 어떤 면에서 애초의 그녀의 의도와 달리 ‘워커 에반스’라는 남성 사진가를 더욱 회자시켜 주는 형식이 되어 주었다. 1979년 그녀가 워싱턴, 링컨, 케네디 등의 남성 대통령의 초상 실루엣 안을 패션 잡지 속 여성들의 사진으로 채워 만든 일련의 콜라주 작품들은 그녀의 워커 에반스 패러디의 배경에 자리한 페미니즘적 성향을 보여 준다.
원본과 복제에 관해 탐구한 이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복제 또한 원본의 생산의 경험이라 주장한다. 벤야민은 복제가 사물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신성함을 파괴시키고 그러한 사물을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쉐리 레빈은 워커 에반스의 복제에 대한 복제, 즉 자신의 원본에 대한 복제를 더욱더 찾기 어렵게 함으로써 작품의 신성함을 배가시켰다. 그것은 거의 복제된 적이 없으며 미술관에 존재하거나, 개인 소장가에 의해 소장되었을 뿐이다. 그녀에게 복제란 ‘하나의 사진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사진’의 제시를 통한 은유이며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원본의 또 다른 우화를 탄생시킴으로써 과거의 작품을 현재로 소환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에곤 쉴레(Egon Schiele)나 말레비치(Malevich),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 많은 다른 시대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줄무늬, 체크무늬, V자의 갈매기 형상 등 민주적인 패턴으로 환원하는 형식의 패러디를 통해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등 역사 속 대가들의 작품이 동시대의 산물로 함께 호흡함을 호소한다. 반복, 유사와 상사, 변주, 그리고 파편 등 동시대 미술의 키워드를 제시하며 과거, 그리고 현재의 미술에 존재하는 보편성과 급진적 특성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더니즘 시대의 대표적 남성 화가의 한 명인 에곤 쉴레와 그 종말을 고한 말레비치, 그리고 그녀가 학창 시절에 항상 자신을 비롯한 여성들만 배제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 등의 작품을 자신의 질서 하에 패턴화 하며 결국 특별한 언급이 없이는 어떤 차용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자신만의 회화를 통해 이성보다는 본능이나 감정에 의해 탄생될 수밖에 없는 회화의 속성, 예술의 주관성 등을 어필하는 독특한 게임의 방식으로 하나의 역사서 혹은 연대기표를 만든 것이다. 이를테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를 패러디한 그녀의 작품, ‘The Bachelors’에서 그녀가 의도한 것이 Bachelor machine의 파괴였다는 것은 예술가 중심주의를 타파하고자 한 뒤샹의 그 유명한 작품인 남성 소변기 ‘샘(The Fountain)’의 원작을 오직 측근들만 보았을 뿐이며 지금은 사진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원작에 대한 존경과 반감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 예술의 역사 속에서 누구든 선대의 예술가들을 뛰어넘을 수도,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 속에서 그녀가 작업을 영위해 왔다는 것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차용 예술 장르의 작가이면서도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을 통해 한 사람의 저작권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장시켰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예술가의 아우라(Aura)나 신화 제조를 피하고자 했으면서도 정보의 부족, 익명성 등으로 인해 자신의 작품의 복제는 막고 오히려 주의를 끌며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주관성을 획득한 셈이다. 이러한 점들을 지적하며 어떤 이들은 워커 에반스의 사진집을 스캔하여 웹사이트를 만들어 그의 사진과 쉐리 레빈의 패러디 및 비평을 ‘책’이란 매체를 떠난 디지털 시대로 초대, 공론화하였다. 또한 고해상도 이미지들의 무료 배포, 각 이미지들에 대한 저작권 부여를 통해 벤야민이 차등화한 대체 이미지로서의 복제의 소유에 대해 협상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도가 문화적 가치의 획득에 관한 것이고 경제적 가치에 관한 것은 아니라 주장한다.
대체 불가능 토큰이 생겨나는 시대의 예술이 우리를 켜켜이 중첩되는 선대의 예술가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까? 모호함의 극대화를 통해 마치 좀비처럼 떨쳐낼 수 없는 예술의 역사 속 대가들의 영향을 토대로 행한 그녀의 자유로운 변주는 적어도 그녀가 예술 세계의 힘과 권력의 문제를 시사한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김윤경, 그림이 가리키는 곳(After Sherrie Levine), Oil on canvas, 265x155cm,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