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진 작가론

캔버스 위 생명나무

by 김윤경

캔버스 위 생명나무


손은진 작가의 회화 연작 ‘Process’는 작가 자신의 일관된 주제인 ‘생명’에 관한 것이다. 이는 자연을 주제로 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화두이며 특히 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 이유는 여성이 생명 창조의 과정에서 많은 것을 감각하고 경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생명의 근원에 관한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경험인 임신과 출산, 여성으로서 갖게 되는 특별한 축복이자 고통이 많은 여성 작가들의 회화 세계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어 주는 것으로 더 나아가 인간의 생과 사, 우주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신비와 성찰을 아우르는 시각적 형식으로 발전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손은진 작가의 경우 그것은 2차원의 평면 위에서 ‘선인장’이라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나타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가 보편성을 획득하며 보다 힘 있는 예술의 형식이 된다는 진리를 내포한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다는 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생명에 관한 가장 강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여성 작가 로이 홀러웰(Loie Hollowell)은 자신의 전시 타이틀이었던 ‘신성한 계약(The Sacred Contract)’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신성한 계약은 출산의 실제 시간, 더 정확히 말하면 진통의 시간을 자세히 탐구한 것이며 그 고통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예술의 여정에 관한 것이다(Sacred Contract is a detailed examination of the actual hours of childbirth, or more precisely, the labor pains. Art becomes a journey into the epicenter of pain)” 여성이 온몸으로 겪게 되는 특별한 이 경험은 실로 ‘생명’이라는 황홀한 결실을 맺는 일이며 오랜 인류가 지속되어 온 방식이기에 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가 되어 왔다. 이는 예술의 창조와도 맥락을 같이 하며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현대의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라 불리는 로이 홀러웰이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강한 색조로 특유의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육체에 각인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과 같이 손은진 작가 또한 ‘생명의 잉태‘라는 보편적 자연의 질서 안에서 자신만의 미적 경험, 추상 충동을 이끌어내어 2차원의 평면 위에 독특한 입체감, 초록의 황홀경을 펼쳐 보인다. 반복적인 형태로 화면에 등장하는 선인장은 작가 자신에게 ‘생명’이라는 주제를 대변하는 의미심장한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거의 3m에 달하는 거대한 화면 위에 무한증식이라도 할 듯 펼쳐지는 아름다운 초록의 향연, 그토록 오랫동안 작가의 캔버스를 지배해 온 강인한 선인장의 의미 형식에 대해 작가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그 모든 것이 찰나의 ‘우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이다.


손은진 작가는 우연히 시 계간지를 통해 선인장에 관한 시를 읽게 되면서부터 선인장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또렷이 기억이 나지도 않는 한 편의 시가 기나긴 그녀의 작업의 여정을 시작하게 해 준 계기였던 것이다. 선인장이 한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한 화가로 하여금 ’ 생명‘이라는 신비를 시각화하게 해 준 것인데 이는 문학이나 미술이 또 다른 ’ 자연’을 그 형식 속에 품게 되는 방식이다. 그것은 인간의 논리나 계획을 뛰어넘는 차원에 속할 때가 많다. 새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경이로운 순간, 즉 생명이 움트는 자연의 현상을 목도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킬 때 관객 또한 그 속에서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예술의 탄생에 있어 그 동기나 목적, 예술가와 관객의 상호 작용 등의 메커니즘 또한 명확한 해석을 거부한다.


사막의 건조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수분을 저장하는 조직을 진화시키고 거대한 동물, 추위, 강한 햇살 등으로부터 성장점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써의 가시자리를 갖는 선인장을 그리는 과정 중에서 손은진 작가는 생명을 잉태하고 보호하며 유지하는 자연의 본능, 그 법칙에 강하게 동화되었을 것이다. 끈질긴 선묘, 켜켜이 쌓아 올리는 색의 중첩, 그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선인장의 형상을 긴밀히 연결시키며 전체의 화면을 채우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수많은 세포 분열을 통해 생명을 창조하고 성장시키는 대자연으로서의 어머니를 대변한다. 끈질긴 반복의 프로세스를 거치며 화면 위에는 어느덧 환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장식적이면서도 동시에 삼차원적인 입체감, 공간감과 함께 신비스러운 생동감이 드리워진다. 생명을 잉태하고 품고 마침내 빛을 보게 하여 자라게 하는 것, 자연의 이치를 듣고, 깨닫고 그에 순응하는 것, 손은진 작가의 그림에는 그러한 인고의 과정, 그 흔적이 형상화되어 있다. 생명력의 표상인 선인장의 형상 자체 역시 중요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아마도 맹목적인, 본능에 가까운 몸짓, 끈질긴 생명을 연상시키는 알이나 식물의 둥근, 혹은 곡선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반복적 수행과도 같은 그녀의 작업 과정이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생명의 표상인 선인장 자체에 관한 것인 동시에 그것의 형상화를 이루는 신비한 과정에 관한 것이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모더니즘 미술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던 꽃이나 사막, 도시의 풍경 등이 순수한 자연적 형태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녀를 미국의 제1세대 추상화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중요한 단서이다. 생명을 품는 개체로서의 여성의 몸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하는 로이 홀러웰과 달리 붉은 칸나를 비롯한 꽃 그림들이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작되었다는 해석을 강하게 부인했던 조지아 오키프는 “선택과 단순화, 그리고 강조에 의해 우리는 사물의 진실과 마주한다(It is only by selection, by elimination, and by emphasis that we get at the real meaning of things)”라고 하며 자신의 화풍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였다. 두 여성 화가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선택’, ‘단순화’, 그리고 ‘강조’의 요소는 예술이 본질에 관한 것이며 동시에 생명을 창조해 내는, 온 우주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서 여성 아이콘의 창시자라 칭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조지아 오키프는 자신이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로 분류되기를 원치 않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의 여성주의에 관한 거부였다. 즉 그녀의 작품이 표방하는 본질인 자연의 질서와 조화는 그녀가 갖는 여성으로서의 생물학적 본능이 의도와 관계없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지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생명의 형상화를 통해 자연의 법칙,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손은진 작가의 작품에 강하게 녹아 있는 중요한 개념이며 강약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여성이 갖고 있는 특질일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기거하는 장소와 환경을 포함하는 대자연으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나의 그림은 세상이 나에게 선사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돌려주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My painting is what I have to give back to the world for what the world gives to me)”라고 말한 조지아 오키프처럼 손은진 작가는 자신의 작업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척박한 세상을 향해 굳건히 서 있는 선인장의 모습을 통해 생명의 희망을 전달하는 것은 세상이 그녀에게 선사하는 것들에 대해 그녀가 돌려주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사명이 되었다. 우연처럼 읽게 된 선인장에 관한 시는 작가에게 평생에 걸친 작업의 화두를 선사하였고 사명처럼 그녀의 캔버스 위에서 비로소 한 그루의 생명나무가 된 것이다.


화가, 미술 번역가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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