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수평선(Rose Horizontal)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의 ‘장밋빛 수평선(Rose Horizontal)’
브리짓 라일리(1931~ )는 자로 잰 듯 깔끔한 선과 색의 배열, 그리고 시각적 즐거움이나 혼란을 야기하는 효과를 강조하는 장르인 ‘옵아트(Op art)’로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화가이다. 그녀의 색의 사용은 점묘법(pointillism)으로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눈이 자연을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이 평면 위에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자연이 우리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것과 같이 때때로 서로 충돌하거나 단절되기도 하며 함께 유영하듯 색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가도 또 다른 순간 캔버스가 다시 채워지며 이루어지는 시각적 향연의 경험이다.”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우리 눈을 통해 색으로 인식되는 자연의 신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브리짓 라일리의 작업은 기하학적 형태, 명도 차이가 큰 색의 대비, 어지러울 정도의 시각적 환영, 흑백의 형태, 생동감 넘치는 색 등의 요소로 그 특징을 압축할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그녀의 그림이 추상으로 간주되지만 브리짓 라일리는 자신을 추상화가로 화가로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많은 부분 자연의 재현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연을 관찰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작품은 그녀의 이러한 시각적 경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작업에 매진하면서 관객에게 자신의 그림을 통해 그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옵아트‘라는 명칭은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줄임말이다. 옵아트는 1960년대에 브리짓 라일리를 비롯하여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리차드 아누슈키에비치(Richard Anuskiewicz) 등의 작가들이 유행시킨 장르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추상화 작품에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하학적 형태를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옵아트 회화 작품들은 인간의 시지각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여 주었는데 어떻게 색채가 관객의 시각에 영향을 주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선과 색채, 그리고 형태를 조작하며 작가들은 화면에 환영, 모호함, 그리고 운동감, 때때로 명멸하는 듯한 빛의 느낌도 부여하였다. 브리짓 라일리의 작품 ‘불길(Blaze)’ 은 옵아트 작품 중 시각적 환영이 잘 표현된 좋은 예이다. 나선형의 패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생생하게 움직이는 듯 강한 운동감을 느낄 수 있다.
브리짓 라일리의 초기 작품들은 인상주의 화풍이 많았고 1958년 경부터 점묘법을 사용,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해 준 추상 계열의 옵아트 작품들은 1960년대부터 만들어졌는데 빅토르 바자렐리와 같은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시지각의 환영, 운동감 등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 흑백의 선들, 다채로운 색을 쓰게 되었다. 그녀는 바자렐리, 요셉 알버스(Joseph Albers)와 같은 당대의 유명한 작가들과 함께 뉴욕 현대미술관(New York’s Museum of Modern Art)에서 기획한 ‘반응하는 눈(The Responsive Eye, 1965)’ 전에 초대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67년부터는 더욱 많은 색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는 기하학적 형태가 파도와 같은 운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곡선의 형태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보는 이들을 어지럽게 만드는 시각적 효과를 갖는 이러한 그림들 중 하나가 1974년에 제작된 ‘갈라(Gala)’이다.
몇 년 뒤 그녀는 이집트나 인도를 여행한 뒤 받게 된 인상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Archan(1981)’은 이집트의 무덤을 비롯한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며, ‘Nataraja(1992)’는 힌두교 신화와 ‘춤의 신’이라 불리는 시바(Siva)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브리짓 라일리는 커미션을 받아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로열 리버풀 병원(Royal Liverpool Hospital)에 있는 벽화(1983), 치내티 재단(Chinati Foundation) 벽화(2012), ‘Messengers’라는 제목의 런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London)의 벽화(2019) 등이 그들이다.
브리짓 라일리의 작업 중 가장 중요한 측면은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가에 관한 탐구일 것이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시각적 경험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은 그녀의 관심사인 자연이나 예술 작품 등에서 얻은 영감으로 만들어졌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관찰부터 한다고 이야기하며 원래 예술가가 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이러한 자신의 관찰의 습관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녀의 그림에서 야기되는 시각적 환영은 종종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 인식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자극제가 되며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실제의 모습과 괴리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즉 ’ 화가‘란 너머의 것, 이면의 형태를 표현하는 사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브리짓 라일리의 작품과 시지각의 연구 사이의 연결점은 어떤 면에서 인상주의 회화, 점묘법, 그리고 그녀만의 독특한 회화 제작의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에 열린 그녀의 전시 ‘브리짓 라일리: 쇠라에게서 배운 것들(Bridget Riley: Learning from Seurat)’은 점묘법으로 유명한 조르주 쇠라의 화법과 브리짓 라일리의 옵아트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전시였다. 그녀의 작품에서 강조된 시각적 경험은 쇠라의 그림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59년 브리짓 라일리는 색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쇠라의 ‘꾸흐브부와의 다리(Bridge at Courbevoie)’를 모사하였다. 쇠라의 작품을 보며 그녀는 특정한 효과, 환영 등을 낼 수 있는 색의 사용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 그가 주로 사용한 점묘법은 서로 다른 작은 색점들을 나란히 병치시키는 방법이었는데 서로 가까이 놓인 다양한 색채들은 보다 생동감 있고 빛이 느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색을 통해 환영을 유도하는 기법은 브리짓 라일리의 작품에도 나타나곤 하였다.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인 형태의 사용, 시각적 환영, 추상주의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리짓 라일리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에게서 영감을 받곤 했다. 그녀는 자신을 추상주의 예술가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한 개척자로서의 화가’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그녀의 작품을 잘 설명해 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Titian)가 그린 ‘다이애나와 악테온(Diana and Acteon)은 신화에 나오는 오비드(Ovid)의 변신을 다룬 그림으로 사냥꾼인 악테온이 목욕을 하는 여신 다이애나를 훔쳐본 것에 화가 난 다이애나가 그를 사슴으로 만들어 버렸고 악테온은 주인을 못 알아보는 자신의 사냥개에게 죽임을 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시각적 영향, 색채의 탐구 등에 주의를 기울인 브리짓 라일리는 티치아노의 전설과도 같은 색채 연구가 후에 거장 들라크루아(Delacroix)가 ‘시지각을 위한 축제’라고 표현한 색 조합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영국 낭만주의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은 브리짓 라일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위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며 당시 풍경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는데 그의 그림 ‘데드햄 베일(Dedham Vale)은 그가 가장 선호하던 주제 중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의 풍차가 놓인 데드햄 교회의 풍경을 그림 것이다. 브리짓 라일리는 그의 그림을 ‘서로 반대되고 충돌하는 자연 요소들의 반응’, ‘아름다운 빛의 포옹’이라며 격찬하였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그림 ‘회화 수업(The Painting Lesson)’은 그림을 그리는 마티스와 소녀를 묘사한 것인데 그림에 드리워진 분위기를 시적으로 묘사한 브리짓 라일리는 이들의 그림을 통한 신비스러운 교감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그로 인해 그림의 밀도를 높여 준다고 하였다. 독특한 방식으로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 마티스는 브리짓 라일리에게 항상 흠모의 대상이었다.
브리짓 라일리는 예술의 상업화에 반대하였다. 특히 그녀의 작품이 직물의 패턴으로 사용되는 것을 꺼렸다. 무단 복제에 대한 법의 보호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 The Who 밴드의 드러머 키스 문( Keith Moon)이 그녀의 옵아트 패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고 이에 반대한 것이 이슈가 되었다.
브리짓 라일리는 젊은 작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공간 마련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다. 그녀는 동료 작가인 피터 세즐리(Peter Sedgley)와 함께 1968년 SPACE(Space Provision Artistic Cultural and Educational)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젊은 작가들이 작업할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뉴욕을 방문하여 본 작가들이 주거와 작업을 어느 산업 단지에서 함께 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았으며 런던에 있는 빈 창고를 예술가들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오직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예술에 반대하며 브리짓 라일리는 모든 사람들의 시각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들을 선보였고 그러한 이유로 그녀의 작업은 사회적 예술이라 간주된다. 관객을 끌어들이고 또한 관객의 경험과 해석에 의해 완성되는 작품인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창작자와 관객의 반응이 중심이 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개인의 순수한 영혼의 발현이다. 브리짓 라일리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순수한 눈의 소유자는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 말하였다. ‘순수한 눈‘이라는 말, 공감과 소통의 부재의 시대 속에서 가장 요구되는, 어쩌면 너무 멀리 떠나온 것만 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화가, 미술번역가 김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