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식물, 자연광

“나는 여기에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

by 김윤경

HB 개인전 서문


하늘, 식물, 자연광(The Sky, Plants, Natural Light)


“나는 여기에 있었다(I Was Here)“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I Am Still Here)“


손한별 작가가 해마다 ‘하늘, 식물, 자연광(The Sky, Plants, Natural Light)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지 벌써 5년째가 되었다. 작가는 매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전시를 열었는데 푸른 자연이 그 기운을 가장 활발히 드러내는 바로 그 시기에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곤 하였다. 그래서 더욱 큰 공감을 이끌어냈던 작가가 다섯 번째 개인전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변화’와 ‘회귀’에 관한 것이다. 푸른 봄과 초여름의 빛을 여과 없이 표현했던 작가의 다섯 번째 이야기는 변화무쌍한, 그러나 그대로인 자연 속에서, 그러한 자연의 일부인 자신의 성장을 통해 언젠가 필연적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었을 빛과 그것의 부재의 관계에 그 핵심이 있다.

손한별 작가의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며 가장 큰 장점은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빛이다. 작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자연을 표현함에 있어, 우리에게 자연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빛의 표현에 있어 여전히 흰색 물감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흔히 수채화나 물을 안료와 함께 사용하는 동양화에서 작가들이 쓰는 기법이며 명암의 표현을 위해 빛을 가장 많이 받는 밝은 부분에 채색을 하지 않고 남겨두는 방식인데 서양화 재료에 어울리지 않는 기법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단지 그 효과가 좋았을 수도 있지만 사실 빛을 표현함에 있어 빛과 가까운 색이라 여겨지곤 하는 흰색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얀 캔버스 위에 흰색 물감을 칠해서 빛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흰색을 칠하는 대신 다른 색들을 표면에 칠해 흰색 표면이 하얗게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의 차이는 그 효과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은유에도 있다. 작가는 빛에 관해서 ‘빈 공간을 가득 머금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빛과 어둠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등 다른 여러 형식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왔다. 빛은 진리, 생명과 연결되는 것, 외부의 조건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어떤 근원적인 실체로 인식되어 왔다. 즉 외부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비롯되는 것, 모든 것의 시작, 창조된 첫 번째 실체이며 어둠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존재의 본질로서 생명의 근원이자 진리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어둠은 아직 닿지 못한 빛의 자리이며 빛의 부재의 상태이다. 그것은 침묵 속에 숨어 있다가 빛 앞에서 비로소 모양을 드러낸다. 손한별 작가의 작품들은 이렇듯 스스로 존재하는 빛에 대한 묵상이며 그것이 머무는 자리에 대해 사유한 기록이다. 이렇게 장엄한 빛은 실은 오히려 소소하고도 오래된 일상의 나날 속 작가의 기억에 스며들어 속삭인다.


“나는 여기에 있었다. “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작가는 2021년 새로운 잎이 돋아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를 그렸다. 20대의 막막함,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등으로 힘들던 시기 우연히 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았던 은행나무의 모습에서 강한 치유를 경험한 작가는 그때부터 무작정 그것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푸른 5월과 6월의 풋풋함과 용맹함을 지닌 은행나무, 그로부터 받는 강한 위로로 인해 은행나무는 작가에게 중요한 의미 형식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운 여름을 지나 찬란한 노랑으로 물드는 은행나무, 계절이 또 바뀌고 우수수 땅 속으로 사라지는 그 잎새들은 분명 작가에게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할 것이어서 아무것도 그를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줄 터였다.

스스로 존재하는 빛이 우리 안에 늘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자신의 기억이 투영된 그림을 통해, 그것이 이야기하는 빛과 어둠의 암시를 통해 조용히 읊조린다. 자연이 스쳐간 자리, 그 안에 머무는 생명, 그 흔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는 변화와 회귀, 그 순환의 개념 속에 ‘빛’은 절대적 조건이다. 빈 공간을 가득 머금고 있다는 빛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자연의 일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삶과 죽음의 순환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흙은 빛과 함께 생성과 소멸이 순환하는 자리를 상징하는데 작가가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온 나무들이 서 있는 곳이다. ‘나의 나무’ 작품은 이러한 작가의 내면의 성찰 과정, 그 기억을 형성한 유독 깊은 시간을 품은 빛의 흔적으로 비롯되어 ‘그림’이라는 또 다른 흔적이 되고 다시 삶을 비춘다. 시간이 흐르며 나무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고 때로 왜곡되었지만 그 왜곡된 기억조차 사라져 가는 자신의 감정의 본질을 담고 있기에 작가는 그것을 ‘나의 나무’라 부르며 조용히 마주하고자 하는 것이다.

빈 공간을 머금은 채 젯소 위에 남겨진 하얀 자리. 그곳은 언뜻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가장 깊이 차 있는 곳이다. 손한별 작가는 그 공간을 빌어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 ‘기억과 왜곡’, ‘흙과 순환’의 개념들을 겹쳐 놓는다. 그것은 지나온 시간과 머물렀던 감정, 그리고 곧 지나갈 모든 계절에 대한 조용한 의식이며 빛의 부재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백이 된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이 투영된 작품들을 통해 빛은 단지 밝은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이며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언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서 어둠의 형상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손한별 작가의 다섯 번째 이야기는 그러한 빛의 진리에 관한 것이며 그것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거칠 수밖에 없었던 인고의 시간을 압축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빛은 공간을 하나의 성소로 바꾸어 놓으며 우리에게 속삭인다.


“나는 여기에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화가, 미술번역가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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