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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R Jan 14. 2022

"왜 평범하게 살질 못하니"

흉부외과 전공의가 되기로 하다.

뉴하트.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다. 

흉부외과라는 과가 있다는 걸 처음 접하게 된 계기였다. 심장, 폐를 다루는 과의 특성상 극적인 사건이 많고 원래 의학드라마를 좋아하던 터라 아주 열심히 챙겨봤고 OST까지 찾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의대에 진학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장기 중에서 심장이 참 매력있고 재밌었다. 

의대 공부는 보통 절반 이상이 내과학이고 나머지가 외과학을 비롯한 세부과목들이 차지하는데 내과가 워낙 방대하고 인체의 기본 병태생리와 치료를 일차적으로 담당하기 때문이다. 

농담으로 친구들끼리 내과의사가 ‘참 의사’라고 하기도 하는 게 그런 이유다. 그래서 본과 3학년에 실습을 시작하고부터 졸업할 때까지 막연하게 내과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과 교수님들과 전공의 선생님들이 똑똑해보여서 멋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 

내과를 하고 싶고 심장이 재밌으니까 심장내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인턴을 시작하고 보니 수술방이 너무 재밌는 거다. 흉부외과 중 한 분과인 폐식도외과 인턴을 돌면서 흉강경 카메라도 잡아보고 대장항문외과 인턴을 하면서 복강경 카메라도 잡아보는데 분명 서툴어서 혼나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당시 정형외과 인턴이 힘든 편이었는데 정형외과 인턴까지 하고 나서도 수술방이 재밌으면 수술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정형외과를 돌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중에서도 수술에 많이 참여하는 편인 척추 파트 인턴을 배정받았는데 괜찮은 거다. 함께 수술에 참여하는 펠로우 선생님도 한 번씩 칭찬도 해주시고. 


외과 계열에 지원해야겠다 싶은데 심장이 하고 싶으니 수술도 하고 싶고 심장을 하고 싶으면 '흉부외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 때부터 원래 내과를 지원하려고 했었고 나중에 의료선교를 갈 때도 내과가 더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고민했다. 과에 따라서 나중에 삶이 많이 달라지게 되다 보니 인생에서 제일 고민을 많이 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실제 전공의 지원은 11월이지만 내과는 8월 말까지 사전 지원서를 작성해야 해서 일단 작성을 하는데 막상 작성하고 보니 내과를 하면 평생 수술방에 들어갈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후회할 것 같았다. 


졸국하고 난 후에 전공을 살리면서 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 인생에 6,7년이라도 정말 하고 싶은 거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흉부외과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9월 중반에 마음을 굳히고 엄마한테 얘기를 했다. 대학병원 간호사이신 엄마가 아무래도 사정을 잘 아시기 때문에 가장 말리실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외과계열에서 여자의사가 차별 받는 걸 많이 보셔서 내가 내과 가기를 더 바라시기도 했었고. 

엄마가 학회로 본원 근처에 오셨을 때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운을 띄웠다. “나 흉부외과로 돌리려고.” 

엄마는 잠시 말 없이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평범하게 살질 못하니.”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서 잠들 시간이 가까워서는 엄마랑 나란히 누워서 얘기를 했다. 

모든 수술과가 그렇겠지만 특히 흉부외과는 수술 시간도 길고 응급상황도 많은데 나중에 나이 들어서 몇 살까지 잘 할 수 있겠니. 조금만 더 나이 들면 손 떨리고 노안으로 눈도 잘 안 보이기 시작할테고 당연히 체력도 떨어질텐데.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네 성격에 네가 수술한 환자가 잘못되면 그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겠니.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의사 사회는 남자를 선호하고 특히나 외과 계열에서 여자의사가 인정받으려면 남자의사보다 훨씬 더 좋은 실력이 필요하단다. 엄마는 그래서 걱정하는 거야. 

하지만 그 이후로 엄마는 과 선택에 대해 가타부타 말씀하시지 않고 내 선택에 맡겨주셨다. 비의료인이신 아빠도 내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하셨고. (이후 흉부외과에 들어가서 한 번씩 힘들다고 얘기하면 엄마는 네가 선택한 건데 어쩌겠냐고 말씀하시곤 했다ㅋㅋ)


많이 알려졌듯이 흉부외과는 비 인기과라 전공의 충원률이 높지 않고 1년에 배출되는 전문의 숫자가 20명대 초반 정도다. 본원에서는 개원 이래 흉부외과 전공의가 원내턴(본원에서 인턴을 수료한 지원자)으로만 채워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특히 원내턴으로 경쟁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런데 특이하게 당시 인턴 동기들 중에서는 심지어 본교 출신인 현역 남자애들 3명이 이미 지원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본원 흉부외과 전공의 정원은 3명+파견 정원 1명으로 총 4명까지 뽑을 수 있었다.) 함께 인턴을 하면서 좋은 아이들인 걸 알고 있었어서 더 기꺼이 지원할 생각이 들었다. 

보통 각 과에 지원할 인턴들은 미리 의국에 연락을 해서 지원의사를 밝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흉부외과 의국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날 의국에 계시던 심장외과 전임의 선생님 한 분이 인사하는 나를 빤히 보시더니 "왜 흉부외과를 해서 인생을 버리려고 해요. 저 전임의 2년차인데 어제도 밤 꼬박 샜어요." 라고 하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해에 마침 원외턴(타병원 인턴을 수료한 지원자)이 있어서 심지어 경쟁이 된 거다. 제일 늦게 지원 의사를 밝힌 나 때문에 혹시나 미리 지원했던 동기들 중에 누군가 떨어지게 되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았는데 동기들은 너무나 고맙게도 함께 지원한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다른 과도 아니고 흉부외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1년 쉬게 되면 참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원외턴 분은 다른 병원 흉부외과에 지원하기로 하셔서 그렇게 4명이 나란히 흉부외과 1년차가 되었다. 



Epilogue. 내가 흉부외과로 돌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제일 먼저 이야기를 한 게 함께 흉부외과에 지원했던 그 동기 3명 중 한 명이었는데 바로 그 날 흉부외과 지원자 카톡방에 초대가 되었다. 그 카톡방 이름은 흉망주, 흉부외과+유망주 라는 뜻이다. 함께 전공의 생활을 하는 4년 내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카톡방은 흉망주 카톡방이다. 과연 유망한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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