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 아버지
심부전. 심장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상태를 통칭하는 광범위한 진단명이다.
말기 심부전의 거의 유일한 완치 방법은 심장 이식 뿐이다. 요즘은 심실보조장치라는 차선책도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기는 하다.
모든 장기 이식은 언제나 공여자 수가 이식 대기자 수를 따라가지 못해 이식 대기 기간도 길고 대기를 하다가 사망하는 환자들도 많다. 당연히 이식은 응급수술 중 최우선순위에 속하며, 뇌사자가 생기고 우리 병원이 이식 수혜의 순위권 안에 들면 업무용 톡 '이식방' 알림이 울리기 시작한다.
본원은 심장이식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하는 병원으로 1년에 약 50건 정도의 심장이식수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심장이식은 약 200건 정도다.) 이식방 톡 알람이 울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흉부외과에서는 심장이식과 폐이식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 단톡방이 있고 전공의 입장에서는 이식이 생기면 공여자의 뇌사판정 및 적출 스케줄에 맞춰 적출팀 인력과 수혜자의 수술 준비를 해야 해서 조금은 바쁜 하루가 된다. 보통 이식방에 톡이 올라오면 빠르면 그 날 오후, 아니면 다음날 이식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기증자의 정보는 수혜자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나이도 기증자의 사인(死因)도 수혜자에게는 전부 비밀로 유지되지만 의료진들에게는 장기 상태 등을 고려하여 이식여부를 결정해야하기 때문에 나이, 사인, 기저질환 등의 정보가 공유된다.
보통 뇌사의 원인으로는 뇌출혈, 교통사고, 자살 등이 많다. 교통사고 중에서는 특히 오토바이로 인한 사고가 많은데 그 날의 기증자도 10대 후반 남자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인한 뇌사자였다. (제발 오토바이 타지 맙시다 여러분)
이렇게 기저질환 없이 건강한 젊은 뇌사자의 경우 다장기이식이 시행된다. 심장, 폐, 간/간 분할, 췌장, 신장 양 쪽.
심장이식수술은 수혜자의 심장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기증자의 심장을 이식하는 과정으로 보통 약 5-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기증자의 원래 장기 적출 시간 등을 고려해 수혜자의 수술실 입실 시간을 결정하고 실시간으로 기증자 쪽 병원으로 간 적출팀과 연락하여 최대한 적출되는 심장의 허혈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보통은 기증자의 적출된 심장이 도착하면 2-3시간 내외로 수술이 끝난다.
허혈시간이란 기증자의 심장이 멈춘 시간으로부터 적출된 장기가 수혜자에게 이식되는 시간까지를 말한다. 그동안 장기에는 혈액 및 산소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허혈시간이 길어질수록 장기 손상이 진행되고 애써 적출해온 장기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기별로 견딜 수 있는 허혈시간이 다른데 그에 따라 적출 순서가 결정되어 있다. 심장이 제일 먼저, 폐가 그 다음, 간, 췌장, 신장 순이다. 각 장기별로 선택된 여러 병원의 적출팀들이 공여자의 병원으로 모여서 이 순서대로 진행을 한다.
예상대로 심장 상태는 아주 좋았고 이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심장이 좋으니 수혜자 상태도 아주 좋아 새벽에 수술을 마치고 다음날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식을 집도하신 교수님과 아침에 회진을 돌면서 흉부외과중환자실의 심장이식 수혜자 방 앞에 섰을 때였다.
집도의 교수님의 말씀이 기증자의 아버지가 일반외과 의사 선생님이시라고 하셨다. 어쩐지 원래 적출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결정을 내려준 기증자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의미로 묵념을 잠시 하는데, 그 날은 기증자의 보호자가 의료진이라서 그 자리에 함께 참여한다는 알림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냉정하게 말해서 적출이 시작되고 나면 적출팀들의 최우선 목표는 최대한 빨리 '우리 장기'를 잘 적출해내는 것이다. 장기가 적출되고 남은 자리는 적출팀의 관심 밖일 수밖에 없다.
보통은 순서대로 적출팀들이 다 떠나면 기증자의 병원 일반외과 의사(대개는 전공의)들이 기증자분의 절개 부위들을 봉합해서 유족들에게 보내드리고 화장을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기증자의 아버지가 일반외과 의사 선생님이시라서 그 정리를 직접 하셨다는 것이다. 한 대 맞은 것처럼 너무 충격이었다.
아버지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장기가 적출되고 난 후의 자녀를 봉합하셨을 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 광경이 얼마나 선명하게 뇌리에 남을까. 자녀의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기억하게 되실텐데. '참 의사'라는 말은 그 분 같은 분께 붙이는 걸까. 마음이 너무 먹먹했다.
집도의 교수님께서도 본인의 자녀 역시 비슷한 또래이고 그렇다면 일반외과 아버지와 본인도 나이가 비슷하지 않겠냐고 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 뒤로 이식방 톡 알림이 울리면 다른 파트 턴을 돌고 있어도 괜히 나이와 사인을 한 번 더 보게 됐다.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길을 다른 생명을 위해 장기기증으로 결정해주시는 모든 기증자 유족 분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진심으로 존경스럽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