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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Apr 06. 2024

여섯 번째 : 의도치 않게 의사 선생님께 성토하다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의료대란에 대한 대화

이번이 여섯 번째 글입니다.


나이가 꽤 있는 저는 정확히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죽을 수 있는 고비를 6번 정도 넘긴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조금씩 아프기는 하는데 의사 선생님은 저한테 주로 하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야, 너 그러다가 진짜 죽어. 몸 좀 챙겨. 다른 환자한테는 말 못 해도 너는 친하니까 내가 강하게 말하는 거야."


어떤 일에 집중을 하면 몸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게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조금 바꿔서 이야기하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서투른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현재 제가 다니는 병원은 종합병원입니다. 주기적으로 경과관찰도 해야 하고,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 상황도 있어서 의사 선생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 유형 중에 하나가 저일 것 같아요. 제가 사는 곳에서는 그래도 전공의 파업의 영향이 적기도 하고 의사 선생님들이 크게 동요는 없어서 다니던 대로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 오전 마지막 환자라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셔서 의사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의사 선생님이 궁금하신 것은 '환자' 혹은 '일반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주변에는 전부 의료인력 밖에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진료를 보면서 이런 부분을 환자와 문답을 할 수도 없거니와 진료시간 자체를 오래 가져가기가 힘들어 점심을 먹는 김에 이야기 좀 하자고 하셔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고 제 입장에서 대답을 하겠다고 하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의 수가 아니라 major과 그러니까 생명유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분야의 의사 수가 모자란 거잖아요. 그런데 의대생을 많이 뽑았다고 모든 졸업생이 major과로 가지는 않잖아요. 예를 들면 의대정원을 늘리는 건 좋은데, 그 늘어난 정원이 major과로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겠죠. 필수의료패키지 그건 뜬구름 잡는 소리고, 예를 들면 성형의 경우에 재건성형을 제외한 미용성형의 경우 진찰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다 비급여로 만들어서 무한 경쟁을 시켜서 정말 시장경제체제에 맡겨서 거기에 쓰이던 재원을 필수의료로 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의대정원 늘어나는 게 그렇게 싫으면 늘려놓고 의사고시 합격률을 낮추는 방법도 있어요. 지금 합격률이 90%가 넘어간다는데 이걸 시험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의과대학을 입학하면 그냥 의사를 시켜주기 위한 '통과의례'로 봐야 하는지도 궁금해요."


"신문기사를 보다가 '족보'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대학교 다닐 때 어떤 과목 중간고사 보고 너무 화가 나서 그 과목 교수님한테 따진 적이 있어요. 정말 피 터지게 공부를 했는데, 교수님이 작년 중간고사 문제하고 똑같이 내서 그 시험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공부 안 하고 답만 외워서 주관식 다 쓰고 저는 공부 다하고 쓰고, 이게 뭐냐고...... 그래서 교수님이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기말고사는 새로운 문제를 내셨습니다. 다행히 성적은 잘 받았고, 당시 수업받던 반 자체가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나요. 그 교수님이 항상 윗학번 선배들 사이에서는 시험문제를 항상 그대로 낸다는 불문율이 있었나 봐요. 당시에 시험문제가 다 바뀌고 그러니까 교수가 미쳤네부터 시작해서 안 하던 짓 하면 빨리 죽는다던데 교수가 돌았나 이런 말까지 돌았었어요."


"어쩌면 의과대학 교수님들의 나태함이 '족보'라는 문화를 만들고 의과대학 학생 개개인이 휴학결정도 자기 의지대로 못하고 집단의 의지에 끌려가는 정말 미성년자와도 같은 결정들을 하고 있다고 봐요. 의대생들은 그리고 의대교수들은 그것도 '사회생활'의 일환이라고 떠들겠지만, 정말 실전에 나갔을 때 환자가 족보대로 오나요? 저만 봐도 그렇잖아요. 선생님 저 때문에 힘드신 거 저도 아는데, 지금 제 케이스만 봐도 엉망진창이잖아요. 사회는 냉혹한 곳인데, 의과대학에서는 너무 지식만 때려놓고 현실인식을 시켜주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이 만큼 공부를 했으니 이 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는 기준은 없어요. 대부분 의과대학을 입학하기 희망하는 학생들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1) 현실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2) 사회지도층에 편입되고 싶다. 3) 직접적인 경험이나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의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4)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의학'과 연관이 깊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전공의의 대표라는 사람은 향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AI가 도입이 되고 하면 의사가 환자를 더 볼 수 있다는 궤변이나 내놓고 있고, 정확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어요. 어린아이가 "싫어."라고 말하고 이유를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거죠. 저는 그런 이유가 결국은 나중에 자기들이 벌어야 할 '돈'이 줄기 때문에 그걸 직접 돌리지 않고 이야기하기에는 쓰레기 소리를 들으니 그게 싫어서 아예 무조건적인 반대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의사들은 나이가 들지 않을까요? 물론 자기 친구나 선배 또는 후배들한테 부탁하면 수술도 빨리 받고 하겠죠. 그러나 저도 돌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봐왔지만, 요즘은 전문분야가 특히 많이 나뉘어 있어서 1명의 환자에게 최소 3명 이상의 의사가 붙어야 병을 고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더 들수록 고려사항이 많아지기 때문에 다학제적 진료가 더 필요해지는 시점이 오겠죠. 만약 의사가 모자라서 다학제 진료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의료미스의 확률이 높아지면 그때 의사들은 우리를 위해서 법적 면책사유를 만들어달라고 데모를 할 건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인원을 늘리고 줄이는 게 충분히 유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부도 의사들도 전부 이 문제를 장기간동안 관찰을 하면서 해결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끝내려고 하는 오만함의 끝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 너무 랩을 하듯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국하고 밥이 다 식어버렸더군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는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말을 하다 보니 좀 숨기고 싶었는데 말이 다 나오게 되고, 사람이 진심을 숨기는 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통감했습니다.


그냥 뉴스에 하도 나오니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말 의사 전부를 대표하는 단체가 맞나? 그리고 대한전공의협의회라는 곳은 전공의를 전부 대표하는 단체가 맞나? 그리고 정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같은 단체와 모든 의사가 다 뜻을 같이하고 있는 건가?'


최소한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의사들도 집단을 대표하는 생각으로 개인의 반론을 가로막는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21세기에 기원전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도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선(線)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의사단체들의 대표들은 자기 생각 하나 관철시키자고 모든 의사들을 다 악마화시킬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저도 대학병원의 전공의들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은 하나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에 자주 입원을 했었는데 한 번의 케이스가 생각이 나네요. 그 당시에 제가 대학병원에 가서 입원을 했을 때 전공의 하나가 저를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더군요. 그래서 제가 없는 줄 알고 전공의들끼리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시한폭탄의 스위치를 제거할 능력이 없는 모양이네요. 담당교수님한테 이야기해야겠네요. 저는 제가 지금 죽더라도 부모님이 제가 살아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해주는 처치나 수술은 다 받고 싶은데, 지금 선생님들은 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담당 교수도 나한테 그런 말은 안 합니다. 당신들 능력이 없는걸 제 탓을 하면 기분이 좋으신가요?"


이렇게 말하니 얼굴이 빨개지더니 어디로 도망을 가더군요. 저는 교수님 회진을 왔을 때 교수님 뒤에 있는 사람들이 저한테 시한폭탄이라고 합니다라는 것을 이야기드렸습니다. 교수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전공의들에게 병실 밖으로 나오라고 하시더니 그다음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시에 저에게 정말 혼신을 다 해주시던 전공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저한테 대신 미안하다고도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어렸지만 저 사람은 나중에 분명히 큰 병원에서 일을 하겠구나 했는데 몇 년 뒤에 병이 호전되고 외래를 갔을 때 그 4년 차 선생님 어디 가셨냐고 교수님께 물어봤는데, 모 병원에 조교수로 계신다고 하시더군요.


분명히 의사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존재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정부도 의사단체도 전부 다 같이 죽자는 것 밖에 아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라는 말도 있듯이 저는 아니지만 저와 비슷한 처지의 타 지역의 환자들은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확률이 점점 높아집니다.


그냥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앞의 글에서 제가 '교사'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만, '교사'나 '의사'나 더 전에 언급한 '기자'나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선민의식(選民意識) : 한 사회에서 남달리 특별한 혜택(惠澤)을 받고 잘 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우월감.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우리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현대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소한 의사도 교사도 기자도 자신들이 이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구성원 중에 하나임을 잊으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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