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할 때 이후로는 거의 10년 만인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제일 좋았던 이유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었어요. 물론 저를 수술해 주신 교수님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말도 제일 잘 통하고, 생각이 비슷하기도 하고, 제일 제 사정을 많이 봐주시는(?) 선생님이세요.
요즘도 전공의 strike 때문에 힘들다고는 하시는데, 이제는 그냥 저한테 장난으로 '없어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라고 하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요즘 실험을 하시는 중이신가 봐요. 제가 마지막 환자였는데, 영상검사 다 받고 혈액검사 결과 다 나오고 난 뒤에 저한테 갑자기 이러시더군요.
Calm(가명), 잠깐만.
이거 좀 해주고 가라.
사실 오늘 너 예약만 내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거든.
도대체 의사 선생님이 저를 기다릴 이유가 없으실 텐데...... 궁금하기도 했고, 항상 도움을 받는 처지라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진료실에서 마무리를 하시고는 저를 연구실로 데려가시더군요.
갑자기 이걸 쓰라고 주시는데, 수술용 루페였습니다. 현미경이나 루페를 써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제 지도교수님이 누구인지 의사 선생님은 알고 계셨고, 실험을 하시다가 안되시는 부분이 있으셨는지 고민을 하시다가, 아픈 환자한테 이런 거 부탁을 해도 되나 고민을 하시다가 저한테 이야기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음...... 의사 선생님이 고민하셨던 부분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생물학이나 의학이나 약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지나칠 수 있는 절차를 생략해서 생긴 문제(?)
라고 생각하면 가장 적합했던 것 같아요.
하는 방법을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려고 했는데, 키보드가 약간 상태가 안 좋아서, 종이에 적어드리고 왔어요.
그러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저한테 말씀하시더군요.
너무 부모님한테 집착하지 말고, 연구를 더 해보는 게 어떠겠니?
말씀을 하셔서 마음속으로는 의사 선생님 좀 진심이 느껴져서 놀라기도 했고 감사했는데요.
말은 또 제가 독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 말이 이렇게 나가더군요.
저 연구하다가 망하면 지금보다 인생이 더 바닥으로 갈 텐데,
그러면 못 버틸 것 같아요. (웃음)
의사 선생님이 그냥
알았어.
집에 택시 타고 가라.
이러시면서 돈을 쥐어주시더군요.
다시 드렸어요.
그러고서 버스를 타고 집에 왔어요.
그냥 마음이 좀 싱숭생숭하면서, 루페를 착용해서 무언가를 내가 했을 때의 그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음을 아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