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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Apr 03. 2024

세 번째 : 냉정과 열정 사이

지금 생각나는 영화 제목 그리고 내가 냉정해진 이유

이번 순서에서는 저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 자신이 저에게 문제의식이 있기도 하고 나름의 변명 겸 설명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목으로 정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의 내용과 저의 삶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단순히 제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제목을 저렇게 적어놓게 되었습니다.


우선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의 배경을 알아가는 게 중요할 텐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가족적 배경을 통해 그 요점을 알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간단히 우리 가족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가족 간의 생존의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하되 서로의 사생활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다. 서로 감정을 터놓기보다는 사실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 안에서 혹은 외부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에 절대로 다른 가족 구성원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이 해결한다. 단,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의견은 충분히 주고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을 최대한 지켜나가면서 살아가는 가족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거나 앉아서 차(茶)를 마실 때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 어느 정도의 적정선만 공유를 하고 그 선에서 어느 정도의 오차범위를 두고 생각이 다르다고 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된 데에는 부모님의 삶과 많은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아버지도 가족 중에 막내이고 어머니도 가족 중에 막내입니다. 그래서 전 친척을 다 둘러봐도 제 대(代)에서 저는 나이가 제일 적고 동생이 없습니다.


사회적 통념으로는 부모님이 각각 가족의 막내라서 '오냐오냐' 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좀 방치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흔히 진학이나 취업을 이야기하는데요. 그럴 때 '막내라서 해줄 수 없다.'라는 논리가 작동해서 모든 것을 다 자력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아가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강요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준 만들기 숙제를 하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쳐서 수술만 수차례를 하게 되고, 당시에 다녔던 학교 선생님들은 보통 부모님이 도와주는데 너는 왜 스스로 하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취학연령이 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내면서 그렇게 학교생활을 편안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 중 하나의 표현으로는 '너무 불쌍해 보였고 희생양이 왜 너여야 했던 건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더 냉정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내가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모든 불이익은 제가 다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학교의 모든 구성원과 하나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발버둥 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자신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었지, 부모님이 누구입니다 이런 말을 해본 적도 없고 몸이 아픈 게 아니면 선생님한테도 부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10대에 매일 타박을 당하고 이유 없는 괴롭힘 그리고 여러 가지에 시달리면서 항상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공계열의 전공을 하다 보니 교수님의 연구를 도우면서 연구에 근거한 사실을 찾아내려는 끝없는 노력과 저 자신에게 절대로 불리한 데이터를 적지 말자는 유혹과도 엄청나게 싸워야 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관련된 연구 같은 것들을 꿈과 희망의 연구가 아니라 실험 데이터에 기반한 정확한 연구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같은 학부생들이나 석사과정에 있는 혹은 박사과정에 있는 조교들에게는 '벽창호'나 '통곡의 벽'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누가 내 흠을 잡아서 또 괴롭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집안에 큰일이 있어서 잘 준비를 해서 가족이 다 발을 맞춰서 해도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가족이지만 각자가 주어진 역할이 있겠죠? 그 안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서로 이야기를 해서 톱니바퀴 돌아가듯 잘 맞춰나가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님이 나이가 드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한테 항상 "세상에서 너를 도와줄 사람은 없고 자기 문제는 항상 자기가 해결하고, 주어진 것은 책임을 지고 확실히 해내야 한다."라는 것을 심어주셨던 부모님이 이제는 모든 게 다 귀찮아져 버리신 겁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제일 친한 선배에게 했을 때 저에게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야, 그냥 좋게 생각해. 미리 다 받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제 문제가 아니고 '가족의 문제'인데......


그리고 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난 몰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시는 부모님께 좀 심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시기를 놓치고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것 같았습니다.


"이 문제는 다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고, 만약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전부 다 망하면 그때는 분명히 저를 탓하고 원망할 텐데 지금 부모님이 하고 계신 건 현실도피 혹은 처한 상황에 대한 회피일 뿐입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연히 부모님은 저한테 섭섭하셨고, 고성이 오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온 저에게 갑자기 몇십 년 만에 갑자기 저한테 어떤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도 제가 능력이 된다면 아무 말을 안 하겠지만, 제가 감당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지금도 부모님과 냉전 중입니다. 부모님이 그리고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제가 과도하게 냉정해서 그런 말을 정말 참다 참다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도 유(柔)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너무 급하고 한 발짝 잘못 내딛으면 잘 가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니까 현실인식을 시켜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 부모님이 저에게 하시던 부분이거든요.


저는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저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대부분 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어른들 전부 관계가 20년 이상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중간에 변해서 요즘 용어로 '손절'을 당하는 경우도 생기기는 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시지 않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아닌 것 같아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는 어떻게 될까?'


지금도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차라리 진실과 사실을 쫓고 최대한 침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바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20대 이상의 성인 분들은 어떻게 가족생활을 영위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여러분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적정선을 잘 유지하고 계신가요?


항상 '보통' 혹은 '중간'을 유지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가장 쉽지 않은 게 그런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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