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Acts

소년이 남긴 슬픔에 세계가 답하다.

by 서랑

1. 들어가는 말

오월의 피눈물이 인류의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노벨상은 한 명의 작가에게 주는 상이니, 한강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녀를 이 시대 최고 문학상의 길로 이끌었겠으나, 그 정점엔 역시 『소년이 온다』가 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의 중심엔 1980년 5월의 광주가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한국사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조직적 폭력과 그에 대한 시민 저항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충돌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더불어 오랜 시간, 공적 담론에서 침묵 되었고 피해자들의 경험은 왜곡되었다.

그러나 5.18은 광주만의 역사로 머물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정면으로 관통했다. 은폐로 인한 집단적 기억의 균열 속에서도 투쟁으로 지켜낸 진실된 증언이 있었고, 수많은 사적 속삭임을 지속적인 공적 담론으로 펼치고자 했던 목소리가 있었다. 그렇게 지난 40년간 체계적으로 지워진 아픔은 서서히 복원되었고, 많은 것들이 바뀌고 달라졌다. 그러나 40년의 시간으로도 해결되지 못한 것들은 여전히 많다.

바뀔 수 없는 과거,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오히려 문학이 남기고픈 메시지는 강하다. 몇 줄의 역사적 사실로써는 담아낼 수 없는 수십 페이지의 이야기가 있기에 가능하고, 이는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역사로 이어졌다.

노벨상을 받은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음은 감동이다. 그러나 감동 밑바닥에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있다. 한국어로 표현했기에 한국인들에게만 고스란히 전달된 생생함도 있지만, 그 너머엔 한글로 담아낸 인류 보편의 진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또 다른 언어로 이어졌기에 무한히 펼쳐졌고, 그 이어짐은 더 깊은 다채로움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소년이 온다』 책 한 권이 가질 수 있는 무궁무진함을 다시 한번 크게 새기며, 한강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조심스레 접근해 보고자 한다.



2. 역사적 진실 너머 인간적 진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배경인 『소년이 온다』는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과 그들의 주변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단지 광주에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소년이 온다』의 시작은 어쩌면 억울함이다.

아무런 잘못 없이 국가폭력에 의해 살해된 소년이 있고,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기억을 떨쳐낼 수 없었던 또 다른 소년이 있다. 말하지 못하는 침묵 속에 갇혀 살며 삶이 완전히 파괴된 이가 있고, 매장 조차 허락되지 않은 수많은 익명의 시신들이 있다. 무고한 희생, 존재의 상처, 언어의 한계는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밖에 없는 억울함이다.

그러나 한강 작가는 이 억울함들을 감정 공유를 통한 호소 방식이 아니라 섬세하고도 복합적 방식으로 입체화하여 보여주었다.


‘억울함’을 넘어선 존재의 윤리

한강 작가는 단순히 ‘이들은 아무 죄가 없었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표상하지 않았다. 그들을 단순히 역사의 피해자라는 추상적 플레임을 넘어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감정, 상처와 고통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형상화하였다. 다시 말해 5.18의 피해자들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 삶의 의미 속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5·18이 개인의 몸과 감정, 언어,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각인되고 남아 있는지를 깊이 파고들어, 역사적 진실 너머 인간적 진실로써 말하고자 한 것이다.


죽음 너머로 말하는 존재

2장 검은 숨은 사망한 소년 정대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정대는 죽은 뒤에도 의식을 유지한 채, 시신으로서 땅에 묻히는 과정을 경험한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방치되고 훼손되는지를 지켜보는데, 이는 슬픔을 넘어 존재가 완전히 부정당한 억울함의 절정이다. 한강 작가는 억울함을 죽은 자의 몸 안에도 남아 있는 감각으로 보았고,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은 고통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정대는 죽음 이후에도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증언자가 되었고,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강한 윤리적 긴장과 책임을 느끼게 하였다.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수 십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의 사체처럼 한덩어리가 된 우리들의 몸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다면, 깜박 잠들 수 있다면, 캄캄한 의식 밑바닥으로 지금 곤두박질칠 수 있다면.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 속으로라도, 54쪽(정대의 소리 없는 목소리)


말할 수 없는 진실

한강작가는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동시에 침묵 속에 도사리는 고통도 직시했다. 말조차 할 수 없는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침묵조차도 하나의 증언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정대의 억울함도 죽은 이의 말이니 침묵이나, 죽은 이의 억울함은 살아있는 억울함보다 더 뚜렷하고 명확했다. 그러나 선주는 그날의 일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의도적 고립을 선택했다.

선주의 침묵은 너무 아파서 말할 수 없는 개인적 침묵으로 시작해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사회의 침묵,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윤리적 침묵, 그리고 독자가 그 고통을 직접 상상하게 만다는 문학적 침묵까지 담아내고 있다. 침묵의 층위를 통해 그 고통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침묵은 피해의 증명 불가능성을 의미하지만, 한강 작가는 바로 그 증명할 수 없음이 오히려 억울함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보았다.


썰물처럼 잠이 밀려나가며 고통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순간, 어떤 악몽보다 차가운 순간이 다시 왔다. 당신이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166쪽 (선주의 말할 수 없는 독백)



한강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역사의 피해자들을 불쌍한 존재나 숫자로 소비하지 않고, 그들 각자의 이름, 감정, 목소리, 삶을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되살려내었다. 그와 더불어 사건을 설명하거나 서사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숨결, 피 냄새, 찢기는 살과 부서지는 뼈 같은 생생한 언어로 접근하였다. 이는 이 고통이 한 개인의 억울함이 아니며 모두의 억울함이라는 보편적 감각으로 만들어 주었고, 들어주지 않으면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말해 주고 있다. 더불어 5.18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뿐만 아나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트라우마로 연결시켰다.



3. 인류 보편의 문학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며 “그녀는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Han Kang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invisible sets of rules and, in each of her works,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She has a unique awareness of the connections between body and soul, the living and the dead, and in her poetic and experimental style has become an innovator in contemporary prose.

광주의 5.18이 남긴 역사적 트라우마는 개인의 고통, 광주의 고통, 대한민국의 고통을 넘어 인류 보편의 고통으로 연결됨이다.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며 또한 거대한 역사 앞에서 인간은 늘 나약할 수뿐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 화두를 담고 있는데, ‘폭력의 본질’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이어져 결국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간행위’ 자체로 귀결된다.

참고로 『소년이 온다』 영문판 제목 『Human Acts』는 인간이 저지른 폭력과 인간이 감내한 고통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서 인류 보편에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한강의 문학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제목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인간됨의 조건, 연대, 침묵, 저항 등 모든 인간적 행동의 가능성을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고 한다.


폭력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폭력은 당한 자 뿐만 아니라, 명령을 내린 자, 고문을 가한 자, 침묵한 자 모두가 비정상적 인간으로 남게 된다. 여기서 폭력은 단순한 물리적 강제력 너머다. 말을 지우고 존재를 부정하는 인간 존재의 근본을 위협하고 무너뜨리는 절대적인 억압이다. 폭력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힘이 있으며, 고통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고통을 가한 자, 목격한 자 모두를 인간성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한강 작가는 폭력을 단지 사건의 구성 요소로 다루지 않고, 폭력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침투하고, 파괴하며, 영혼에 어떤 상흔을 남기는가를 윤리적이고 존재론적인 시선으로 깊이 있게 응시하였다. 폭력을 감정적으로 고발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된 언어와 섬세한 감각 묘사로 폭력의 비인간성을 드러냈다. 폭력의 충격 후의 후유증, 즉 몸의 망가짐, 기억의 반복, 감정의 마비를 통해 드러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폭력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한강 작가는 폭력을 당한 자의 시선으로, 그 고통을 끝까지 응시함으로써, 독자에게 그들의 고통 앞에서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 또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에서 등장하는 모든 폭력의 최고 꼭대기에는 국가가 있다. 또한 너무나 답답함에 가장 본질적이면서 가장 원시적인 질문을 하게 하는 주체도 국가다. 도대체 왜 국가가....? 어떻게 국가가....?

『소년이 온다』는 국민을 지켜주어야 할 국가가 폭력의 주체가 되었을 때, 국가가 인간에게 얼마나 쉽게 폭력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국가란 무엇이고, 그 힘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도 묻고 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119쪽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의 ‘그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의 ‘우리’는 다름 아닌 ‘국가’다.


죽지 말아요.

한강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말을 꼭 소설에 쓰고 싶었다고 했다. 4장 ‘쇠와피’에서 그렇게 고통받고 그 길을 갔던 그분들의 이야기 다음에 5장 ‘밤의 눈동자’에서 생존자인 선주의 목소리로 "죽지 말아요"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곧 죽음이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135쪽


4장 쇠와 피의 화자로 고문 후유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름 없는 인물의 목소리다. 그의 삶과 죽음 앞에 문학이 남기고픈 메시지를 우리는 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가장 존엄하면서도 가장 잔인하다.

광주 시민들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했으며, 피해자들은 마지막까지도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았다. 동호는 상무관에서 시신의 인상착의를 장부에 기록하며 시신 하나하나에 개별성을 부여한다. 죽은 시신을 수습하고, 깨끗이 닦고, 제대로 누이는 장면은 참혹함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끝까지 지키려는 노력이며, 한강 작가는 너무 끔찍해서 외면하고 싶은 장면에 오히려 존엄을 담아 끝까지 묘사하였다. 무엇보다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는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임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처참한 폭력과 죽음 앞에서도 서로를 돌보고, 슬퍼하고, 위로한다. 여기서 피해자들을 수동적인 고통의 수용자가 아니라, 존엄과 연대, 인간다움을 지켜낸 능동적인 존재였다.

인간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여전히 타인을 위해 손 내밀 수 있는 존재이니 위대하다. 그러나 그 위대한 인간은 가장 순수한 존재조차도 예외 없는 희생자로 만들었다. 도청 안의 시민군과 자원봉사자들은 서로 도망가지 않고, 함께 남기로 선택하고, 동호 역시 그들과 함께한다.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끈끈한 공동체의 연대이나 그 아름다움 속에서 가장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 동시에 교차하니 아이러니다.

그 아이러니 속에서 소설은 국가 폭력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개인들이 겪는 도덕적 갈등과 내면의 분열을 통해,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죄책감, 윤리적 고뇌를 깊이 있게 그려냈다. 그리고 이 모습들은 꼭 집어 한 장면만 뽑을 수 없을 정도로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소설 속 인물의 독백, 대화, 행동 뿐만 아니라 행간의 여백에서도 등장한다. 아마도 소설에서 드러날 수 없는 작가의 깊은 무의식의 반영이지 않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인간 안에 담을 수 있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4. 문체에 담긴 내면의 깊이

한강의 문체는 매우 세밀하고 섬세하며, 상징적이고 시적인 특성이 강하여 보편적인 인간 감정과 경험을 표현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논함에 있어 문체를 제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과 전개로써 글을 읽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한강 작가의 깊이 있는 문체까지 섭렵하여 소설을 바라봄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얕은 이론적 지식으로 접근했다가는 오히려 섣부른 판단을 초래할 수 있기에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한강 작가의 문체를 이해해 보았다고 미리 밝히는 바이다.

더불어 말하고 싶은 것은 한강 작가 노벨상을 수상에 있어 분명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의 번역의 힘도 컸다. 그래서 여기서는 한강 작가만의 그 고유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가 그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살짝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의 언어로 전달이 되었기에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읽은 소설은 분명 우리가 읽은 소설과 같겠지만,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시신

소설을 읽음에 있어 시신을 묘사하는 장면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묘사가 오히려 더 큰 충격과 감정의 여운을 남겼고, 이는 영문 번역본에서도 간결한 어휘와 조용한 톤으로 시종일관 시적인 긴장감이 유지됐다고 한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보일 때마다 너는 부패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서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 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11쪽

When you first saw, she was still recognizably a smallish woman in her late teens or early twenties now, her decomposing body has bloated to size of grown man. Every time you pull back the cloth for someone who has come to find a daughter or younger sister, the sheer rate of decomposition stun you. Stab wounds slash down from her forehead to her left eye, her cheekbone to her jaw her left breast to her armpit, gaping gashes where the jaw flesh show through. The right side of her skull has completely caved in, seemingly the work of a club, and the meat of her brain is visible. These open wounds were the first to rot, followed by many bruises on her battered corpse. 11쪽


꿈과 혼

한강 작가의 작품들에는 유난히 꿈이 등장한다. 꿈이란 의식적인 억압에 대한 무의식적인 요소이다. 보고 싶지 않고 잊고 싶어 눈감고 싶은 것들을 말하고자 할 때 꿈은 용이하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으로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꿈이라면, 그것을 가장 마지막까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혼이다.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혼이 되어서라도 남겨야 하는 아픔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의식의 너머이며, 상식의 너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실재이고 경험이기에 의식과 상식을 꿰뚫을 수 있는 문체와 함께 할 때 빛이 난다.


다시 옥상에서 서슴없이 낙하한다. 이번에도 죽지 않고 비상계단을 오른다, 한번 더 떨어지기 위해서, 그렇게 높은 데서 떨어지는데 갑옷이 무슨 소용이야. 한 겹 꿈을 열고 나오며 당신은 자신에게 묻는다. 그러나 깨어나는 대신 다음 겹의 꿈으로 스며들어간다. 거대한 빙하가 당신의 몸을 내리누른다. 고체인 당신은 으스러진다. 빙하 아래로 흐르고 싶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바닷물이든 석유든 용암이든, 어떤 액체가 되어서 이 무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 길밖에 없다. 그 꿈까지 열고 나오면 마침내 마지막 겹의 꿈이 기다리고 있다.

161쪽. 선주의 꿈(한강 작가는 실제 자신의 꿈이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언급하였다.)

walk straight over to the edge of the roof, and tie yourself off. Still you don't die, and it's back up the stairs to fall one more time. One layer of the dream unpeels, and you're sufficiently aware of the situation to wonder : what good is a suit of armor if I'm falling from such a great height? You haven't woken yourself up, though, merely passed through into another layer. You feel the weight of an enormous glacier bearing down on your body. You wish that you were able to flow beneath it, to become fluid, whether seawater, oil, or lava, and shuck off these rigid, impermeable outlines, which encase you like a coffin. Only that way might you find some form of release. Now this layer, too, unseams itself and collapses softly around you, exposing the dream's ultimate core. 159쪽


고문

4장 쇠와 피에 등장하는 고문 장면은 시신들만큼이나 잔혹하나, 살아있는 이의 고통이고 그들의 목소리기에 더 끔찍하다. 공간, 시간, 감각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트렸으며 해체시켰다. 문체 자체로서의 특성은 잘 모르겠으나,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욕구 속에서 존재를 느껴야 했던 절규는 처절함 자체로 다가왔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겪은 일들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묽은 진물과 진득한 고름, 냄새나는 침, 피, 눈물과 콧물, 속옷에 지린 오줌과 똥, 그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아니, 그것들 자체가 바로 나였습니다. 그것들 속에서 썩어가는 살덩어리가 나였습니다. 120쪽

I was constantly racking my brain. Because I wanted to understand.

Somehow or other, I needed to make sense if what I'd experienced. Watery discharge and sticky foul saliva, blood, tears and snot, piss and shit that soiled pants. That was all that was left to me. No, that was what I myself had been reduced to. I was nothing but the sum of those parts. The lump of rotting meat from which they oozed was the only me there was. 121쪽


어머니

『소년이 온다』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자 백미는 동호 어머니의 내레이션이다. 꿈과 같은 초현실적 장면을 정제된 언어로 묘사하여, 인간 감정의 절정을 과장 없이 시처럼 표현해 치유의 정서까지도 함축시켰다.


알 수 없다이, 그날은 왜 내가 이름 한자리 못 불러봤는지, 입술이 달라붙은 사람맨이로, 쌕쌕 숨만 몰아싐스로 뒤를 밟았는지, 이번에 내가 이름을 부르면 얼른 돌아봐라이. 대답 한자리 안 해도 좋은 게, 가만히 돌아봐라이.

아니제. 그럴 수 없는 것을 내가 알제.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180쪽

I can't get my head around why I didn't just your name that day. Why I just came tottering on behind, struggling for breath and dumb as a mute. If I call next time will you please just turn around? You don't need to say "yes, Mum?" or anything like that. Just turn round so I can see you.

But it wasn't really you, was it? No. It can't have been. I buried you with my own two hands. 178쪽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절절하고 먹먹하다. 동호 어머니의 목소리며 눈빛, 표정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며, 무엇보다 글에 고스란 묻어 있는 어머니의 억양과 톤이 자식 잃은 심정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영어로 번역된 어머니의 목소리에 한국인끼리만 통할 수 있는 한국인의 숨소리가 어느 정도 담겨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어머니의 애끓는 모정이 또 다른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되었음이다. 비록 머리로만 이해되는 그들의 글이지만, 그들 역시 느꼈을 법한 감정은 충분히 짐작이 가기에 이해하여 느끼는 것이 아닌, 느끼면서 그 이해의 깊이를 더해 본다.



5. 기억의 윤리와 인간 회복

『소년이 온다』에는 시신과 고문에 대한 적나라하면서도 생생한 묘사, 죽은 이의 억울함, 살아남은 이의 처절한 죄책감과 한 맺힌 그리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품고 있는 우리네 인간이 있다. 한강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작가만의 아름답고도 세심한 문체를 통해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기억하고, 견디고, 응시하라.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 자체가 억압된 기억의 역사이다. 그 억압된 기억을 언어로, 이야기로 끌어올리고자 함이 누군가의 몫인 것이다.

망각이나 회피가 아닌 슬픔의 증언을 통해 아픈 기억이 공유될 때, 우리는 서로 간 상처를 껴안을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잔인하고도 끔직한 장면들은 단순히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소년이 온다』는 상처 입은 이들의 기억을 누군가에게 새기게 하고, 그 기억으로써 서로를 연결시켜 준다. 이는 개인의 고통을 고립시키지 않으며,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게 하는 또 다른 장치이며, 독자에게 윤리적 감각을 깨우고, 감정적으로 참여하게 하려는 치밀한 문학적 전략인 거다.


동호의 기억

『소년이 온다』의 소년이며, 소설의 서사를 여는 존재이고, 친구 정대의 죽음을 기억하는 인물이다. 또한 『소년이 온다』의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다층적 시점에서 동호를 기억한다. 가장 순수하고 여린 존재가 기억하고, 그가 기억되는 방식은 우리를 많이 생각하게 한다.


너는 앞장서서 모서리의 사람을 향해 걷는다. 거대한 자석 같은 게 힘껏 밀어내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네 몸이 뒷걸음질 치려 한다. 그걸 이기려고 어깨를 앞으로 수그리고 걷는다. 천을 걷기 위해 허리를 굽히자, 파르스름한 촛불의 눈동자 아래로 반투명한 촛농이 흘러내리고 있다.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눈이 더 나빠져 가까운 것도 흐릿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명천을 걷기 전에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45쪽


여기서 무명천을 걷기 전에 눈을 감지 않는 ‘너’가 동호이며,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나 결국 동호 역시 죽은 자가 된다. 『소년이 온다』에서 유일하게 ‘나’가 아닌 ‘너’로써 서술되며, 동호를 ‘너’로써 바라보며 동호의 말해질 수 없는 고통, 증언되지 못한 진실까지 풀어내고 있다. 독자 역시 무고한 이의 시선으로 광주를 바라보게 하고, 동호가 품었을 법한 말과 생각을 온몸으로 접하게 한다.


작가의 기억

소설 마지막 장, 에필로그에는 동호의 흔적은 찾는 한 작가의 기억이 등장하다. 그 작가를 한강 작가라 할 수는 없겠으나, 연상이 된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마지막 장 ‘눈 덮인 램프’은 부록 같은 느낌의 에필로그인데, 오히려 더 흥미롭게 읽었다는 이가 많다.

시간은 많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동호를 잘 기억하고 있는 동호의 형이 있고, 기억 저 편에서 동호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작가가 있다. 그들에겐 기억 자체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픔이고 고통이 었다.


가지고 온 초들을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았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앉아 불을 붙였다. 기도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묵념하지도 않았다. 초들은 느리게 탔다. 소리 없이 일렁이며 주황빛 불꽃 속으로 빨려들어 차츰 우묵해졌다. 한쪽 발목이 차가워진 것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무덤 앞에 쌓인 눈 더미 속을 여태 디디고 있었던 것이다. 젖은 양말 속 살갗으로 눈은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


소설의 마지막 장면으로 어느 작가의 독백이다. 그리고 작가의 행위는 첫 장의 동호의 행위를 연상 시킨다. 첫 장에서 동호는 참혹한 시신들에게 하얀 천을 덮어주고 그 머리맡에 촛불을 밝혀준다.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넋이 되어 돌아오는 동호를 상상한다. 어쩌면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누군가의 바람일 수도 있다.


우리의 기억

‘그들은 왜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을까?’ 이 질문에 그들은 무엇이라고 답을 할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소설이 말해주고 있다.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116쪽


『소년이 온다』는 5·18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에게 그 고통이 지금의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끈질기게 묻게 하는 소설이다. 누군가는 인생의 꽃 같은 황금기를 보낸 시간, 누군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글과 이야기로써 전달되고 기억될 때 그 울림은 더 커질 것이다. 숫자와 데이터로 접하게 되는 5.18에는 사람이 없다. 영상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5.18은 직관적인 충격 혹은 관찰자적인 입장에 머물 뿐이다.

책 한권으로 얻게 된 개인의 기억은 작고 미미하겠지만, 기억으로써 공유될 때 그들 역시 나와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되고, 또 다른 연대, 더 나아가 인류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6. 글을 마치며

- 미래의 고전을 읽었다.

한강 작가는 압도적인 고통으로 『소년이 온다』를 썼다고 했다. 한강작가의 손에서 한강 작가의 고통과 눈물로 완성된 소설이지만, 『소년이 온다』는 이미 그 자체로써 생명력을 가졌다. 그렇기에 지금은 현대소설이지만, 언젠가는 인류의 고전이 되어 몇 세기 뒤에도 읽힐 것이다.

노벨상이라는 어머어마한 무게와 아우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무게와 아우라 덕분에 한 편의 이야기가 어떻게 인류 전체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지 살펴 볼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폭력적이고 허무해 보이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디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나? 라는 질문에 한강 작가의 답변은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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