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여류화가. 색채
시대를 앞서갔던 여류화백 천경자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더 이상의 소음과 절연한 채~
우연히 그녀의 고향에서 다시 만난 작품 들 속 색채는 강렬하고 화려하지만 표정은 처연한 그 여인들 은 화백의 자화상 일수도 있지만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 여인들의 고독과 견딤의 얼굴 로도 다가왔다
그녀의 생을 더듬어 보면 아버지의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이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지 않았고 짧게 끝났다
전통적인 아내역할은 숨 막혔고 자유로운 영혼의 그녀는 감정을 감각적 색으로 풀며 홀로서기를 처절하게 해 나갔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홀로 서 있는 여인들의 얼굴을 그렸으며 대부분 혼자 인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집안에서 반대하는 동경미대를 끝내 다녀오고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하지만 한국 미술계에서는 채색화는 무조건 일본화로 매도 되었기에 국전의 중심은 수묵화로 돌아갔고 색이 좋아 그림을 시작한 천경자는 어느 화풍 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양화ㆍ동양화ㆍ구상ㆍ비구상의 구태의연한 구분을 그녀는 뛰어넘어 유화의 풍부한 색감을 동양화의 재료로 실험했으며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 드문 여성화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사조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했던 샤갈을 연상케 한다
그녀는 글쓰기에도 탁월해 박경리ㆍ김동리 등 당대에 유명한 문인들과 교류하며 수필집을 몇 권 내었고 그림에서 문학적 서사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생활이 안정되면 오히려 작가로서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작가의 새로운 환상적 영감을 찾아 지구촌 여러 곳 이국적 풍물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특히 아프리카 여행 후 그곳에서 스케치한 159점을 1974년 현대화랑에서 전시하고 4년 후 그 감흥을 그린 밀도 있는 채색화 전시는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전시 첫날에 완판 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면서~
그녀는 타이티 고갱의 흔적을 따라갔고 에일리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찾아 나섰으며 헤밍웨이의 단골술집에 가서 그를 추억했다
그녀가 20대에 보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저자 마가렛미첼의 생가에 가보아야 직성이 풀린 그녀는
막상 가보니 허름한 집을 초록색 지붕의 하얀 집으로 재탄생시켜 동화 같은 집으로 그리고서는 돌아섰다
천경자 화가는 모델 없이는 인물을 그리지 않았다
가족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의 눈과 혼을 느끼며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린 여인상 은 웃지 않고 눈으로 말한다
크고 검은 눈 은 호소 하지도 않고 응시할 뿐 , 슬픔 은 간직 한채 자신과 함께 있을 뿐입니다
그 고독 은 꽃과 장신구 들로 화려하게 가려져 있었고 그것들은 동정받기를 거부하는 도구로 쓰였다
화려함과 고독이 어우러지면 그 아름다움 은 깊이 스며든다
천경자의 여인들이 거의 혼자 인 이유는 혼자여야만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예술가의 선택을 대변한 것 같다
화단에서 이름을 얻은 후 에도 그녀는 안주하지 않았고 끝내 고독과 싸우는 전쟁에 더욱 매진했다
그녀는 규범과 시선에서 멀어지며 스스로
화단의 평가, 여류화가라는 수식어로부터 자유로워 지려 했고 오히려 인물들의 눈 들 은 더 고요해지고 표정은 침묵 속 강화된 내면이 느껴진다
마치 미인도의 위작 논란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침묵의 권리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고향 고흥은 삼면이 바다라서 해안선이 유난히 길다 비옥하며 드 넓은 농토, 붉은 흙을 품 은 언덕들을 가진 고흥에서는 때때로 그녀를 기리는 전시회를 어렵게 해낸다
다시 만난 작품들을 보며 이렇게 현대적 일수 있을까? 동서양의 느낌이 이렇게 잘 어우러질 수 있다니! 미처 몰랐던 감흥을 새삼 느끼며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꽃은 연약하지 않고 강렬한 색으로 생명력을 잔뜩 품고 있다
뱀과 새, 고양이는 신비한 모습으로 감각과 본능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녀는 내가 겪은 것만 그린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캔버스는 그녀에겐 증언의 장이다
그녀의 그림이 화려한 색채의 그림으로만 소비돼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작품 안에 농축된 삶의 조용하고 치열한 경건함 과 삶의 위대함 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물의 눈을 과장되고 크게 그렸다
슬픔, 고독, 관능, 자존감을 감출 수 없는 감정을 눈 안에 응축시키고 그 눈을 보는 우리는 스스로 에게 진실을 물어보게 한다. 그 눈의 시선은 밖이 아닌 내면의 자아에게로 향하게 한다
국립 현대 미술관과 미인도의 위작 논란으로 대치할 때 작가의 목소리는 묻혔고 그녀는 격렬했던 논쟁을 멈추고 단호해진다 권력과 제도를 향해 "아니요"를 외치고 한국을 떠났다 커다란 눈을 남긴 채~
작가의 심정은 이미 그녀의 작품에서 예견된 듯 침묵의 권리로 그려져 있었다
이 해결되지 않은 논란 은 근 현대 여성 예술가의 위치를 재 조명 하게 만든다
실망과 지친 작가 가 절필과 침묵을 선언하게 만든 이 사건은 여성 예술가의 존엄 성을 얼마큼 헤쳤을까?
작가의 작품을 말하고 논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까?
서툰 감상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가 말 대신 느낌으로 해석하는 자세가 관객의 자격이라면 , 자기 삶과 겹쳐서 보는 사람이라면 작가는 만족할까?
작품 해석을 사조와 기법, 미술사적 위치나 맥락으로 분석하는 학문적 태도는 비평가나 전문가의 영역 일 텐데 그 해석이 작가의 의도나 진위를 벗어났다면 그것은 영혼 없는 껍데기가 아닐까?
작품활동 은 사람 이 한다 그의 영혼을 꺼내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것을 부정당한다면 침묵과 침잠 이 남 는 걸까? 그리고 감상과 평가도 사람이 한다 각자의 영혼으로~
단 예술가의 자존을 존중하는 기본적 태도와 감성으로 다가가야 하는 것이 우선시 되면서 이다
꿈꾸는 작가, 환상을 현실과 작품 안에 녹여내려 혼신의 힘을 다했던 그녀가 죽음을 예견했을까? 귀국 후 시립 미술관에 대부분의 작품을 기증한 이유는 작품들이 흐트러지는 걸 원치 않아서라고 한다ㆍ
늘 자식이라고 말했던 작품 들이었기에~
화가는 도망이 아닌 구원을 환상적으로 작품에 녹이려 했다고 나는 감상한다
화려하지만 쓸쓸한 그 눈동자가 사후 10년이 지난 후 우연히 나를 만나서 이제야
한국화단에 이토록 선구적이고 열정적 화가가 있었음을 감사하면서 경의를 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