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차원의 빛의 공간
3. 다차원의 빛의 공간
류메아는 우주가 처음 숨을 들이켰을 때 함께 피어난, 가장 오래된 빛의 공간이다. 빛은 이곳에서 직선으로 뻗어나가지 않는다. 한 점에서 태어난 빛이 수없이 갈라져 나가며 물결처럼 번지고, 다시 다른 빛과 섞이고, 겹치고, 희미해졌다가 또렷해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류메아의 하늘은 언제나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아침에는 옅은 금빛과 분홍이 겹쳐지고, 낮에는 푸른빛과 은빛이 얼룩처럼 번지고, 밤에는 깊은 남색 위에 하얀 실선 같은 빛줄기들이 천천히 흐른다. 별은 점이 아니라, 천천히 움직이는 빛의 얼룩이다.
류메아의 땅은 우리가 아는 행성처럼 둥근 구체가 아니다. 끝없이 떠 있는 거대한 빛의 섬들이 층층이 겹쳐진, ‘부유 대지’의 세계다. 각 섬은 고체이면서도 완전히 단단하지 않다. 발을 디디면 분명히 단단한 감촉이 있지만, 멀리서 보면 그 경계가 흐릿하게 흔들린다. 섬들의 가장자리에서는 바위와 흙이 서서히 빛의 가루로 흩어져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그 빛의 가루가 다시 다른 섬의 아래쪽에서 응축되어 새로운 땅이 된다. 이 순환 덕분에 류메아의 지형은 늘 조금씩 모양이 바뀌지만, 완전히 무너지는 일은 거의 없다.
류메아에 사는 존재들은 스스로를 ‘류민’이라 부른다. 류민들은 육체와 빛이 반반 섞인 존재다. 겉모습만 보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피부 아래로 미세한 빛의 결이 흐르고, 감정이 크게 요동칠 때면 눈동자와 심장, 손끝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이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류민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기쁨이 크면 따뜻한 금빛이 번지고, 슬픔이 깊으면 푸른빛이 가라앉으며, 분노나 두려움이 크게 일렁일 때는 붉은빛이나 자주빛이 들끓는다. 류민들은 말보다 먼저 서로의 ‘빛결’을 읽고 상대의 상태를 짐작한다.
류메아에는 세 가지 큰 빛의 계열이 있다. 확산하는 빛, 기억하는 빛, 그리고 길을 여는 빛이다. 확산하는 빛은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로, 모든 생명과 땅에 생기를 준다. 기억하는 빛은 과거의 흔적을 품고, 시간을 따라 흘렀던 감정과 사건을 빛의 무늬로 보존한다. 길을 여는 빛은 서로 다른 섬, 심지어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힘이다. 류민들은 대체로 하나의 빛에 강하게 공명하지만, 드물게 세 가지 빛을 모두 조금씩 다루는 ‘조율자’들이 태어난다.
류메아의 도시들은 높은 탑이나 빽빽한 건물 대신, 빛을 모으는 ‘정원’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정원에서는 뿌리 대신 빛줄기로 땅에 닿아 있는 나무들이 자라는데, 나무의 줄기와 잎맥을 따라 은은한 빛이 흐른다. 이 빛나무들이 모여 있는 정원 한가운데에는 ‘류석’이라 불리는 거대한 결정체가 박혀 있다. 류석은 각 섬의 심장 같은 존재로, 섬 전체에 흐르는 빛의 농도와 결을 조절한다. 류민들은 주기적으로 정원에 모여, 류석 앞에서 자신의 빛을 조금씩 내어놓는다. 그러면 류석은 그 빛을 흡수해 섬 전체로 고르게 되돌려 보낸다. 이것이 류메아의 기본 순환 방식이다.
류메아에는 어둠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의 어둠은 다른 공간에서처럼 모든 것을 삼키는 구멍이 아니라, 지나치게 확산된 빛을 잠시 쉬게 하는 ‘그늘’에 가깝다. 빛이 끝없이 퍼지기만 하면 결국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형태가 무너진다. 그래서 류메아 곳곳에는 빛이 천천히 가라앉아 고요한 그림자를 이루는 장소들이 있다. 이곳을 류민들은 ‘가온지’라 부른다. 가온지에서는 빛이 흐르지 않고 웅크려 있기 때문에, 류민들의 눈도 덜 빛나고, 몸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많은 류민들이 중요한 선택을 앞두었을 때, 일부러 가온지에 들어가 마음을 정리하곤 한다.
류메아의 사회는 위계가 뚜렷하기보다는 ‘공명’으로 나뉜다. 어떤 빛과 가장 깊이 공명하는가에 따라 맡는 역할이 달라질 뿐이다. 확산의 빛과 공명하는 류민들은 주로 농업, 치유, 예술 쪽에 많다. 그들이 손을 대면 황량한 땅에서도 빛의 풀과 곡식이 자라나고,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이 천천히 회복된다. 기억의 빛과 공명하는 류민들은 기록자이자 해석자다. 이들은 오래된 류석이나 빛나무의 나이테에 남아 있는 빛의 무늬를 읽어, 과거의 사건과 감정을 현재의 언어로 풀어낸다. 길을 여는 빛과 공명하는 류민들은 탐험가이자 수호자다. 이들은 류메아와 다른 빛의 공간, 혹은 어둠의 공간을 잇는 통로를 열고 닫는 일을 맡고 있다.
류메아의 가장 큰 특이점은, ‘밤’이 단순한 어둠의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류메아의 밤하늘에는 다른 차원의 빛들이 비쳐 들어온다. 다른 빛의 공간에서 새어나온 파편들, 어둠의 공간에서 반사된 미세한 잔광들이 얇은 막을 통과해 류메아의 상층부에 부딪힌다. 그래서 밤이 되면 하늘에는 끝없이 흐르는 광류(光流)가 나타난다. 류민들은 이를 ‘하늘강’이라 부른다. 어떤 날은 푸른빛이 강하게 흐르고, 어떤 날은 붉은빛의 띠가 유난히 짙게 드리운다. 하늘강의 색과 흐름을 읽으면, 지금 우주의 다른 공간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류메아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빛을 다루는 놀이’를 한다. 마당에 나가 손바닥을 마주 대고 서서, 서로의 손 사이에 떠오르는 빛의 실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웃는다. 처음에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던 빛줄기가, 감정과 집중력이 자라날수록 점점 선명해진다. 일정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빛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는 점처럼 튀는 빛을, 누구는 물결처럼 흔들리는 빛을, 누구는 얇은 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빛을 다루기 좋아한다. 이 패턴이 곧 그 아이가 어떤 류민으로 자라날지를 암시하는 징표가 된다.
물론 류메아가 늘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빛이 확산되는 곳에는 언제나 ‘더 멀리, 더 많이’ 퍼지려는 욕망이 생긴다. 오래전 류메아에는 자신의 빛을 한없이 넓히려 했던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다른 류민들보다 유난히 강한 빛을 타고난 이들이었고, 자신들이야말로 이 공간을 이끌어갈 ‘중심’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류석에서 빼낸 빛을 독점해 자신들의 몸에 축적했고, 그 결과 그들의 몸에서는 눈부시게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빛은 너무 강해서, 주변의 빛나무와 땅, 그리고 다른 류민들의 빛까지 서서히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류메아의 기록자들은 ‘과잉의 시대’라고 부른다. 과잉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빛이 너무 쏠린 탓에 류메아의 몇몇 섬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하늘강도 일시적으로 뒤틀렸다.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처음의 ‘심연 가온지’였다. 빛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몰리자, 우주는 이를 균형 맞추기 위해 깊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과잉의 빛을 품어 삼켜버리는, 류메아 최초의 진짜 어둠이었다.가장 빛들이 집결한 곳에 어둠의 구역이 탄생한 것. 이것이 라트(우주)의 신비이자 법칙이기도 했다. 빛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나, 그곳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그 원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창조'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류메아에서는 빛을 나누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나눈다'라는 개념조차 빛들에게는 희박했다.그들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발산하고 있었고, 더 많이, 더 멀리 빛을 발하여 그들의 에너지를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 비춰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자신의 빛을 숨기지 않고 정원에서 함께 모아 류석에 되돌려주는 의식은 단순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사회의 유지 장치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가장 먼저 ‘네 빛은 네 것만이 아니다’라는 말을 배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네 빛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책임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네가 힘들 때에도 다른 이들의 빛이 너를 지탱해 줄 수 있다는 위안의 뜻이다.
류메아와 다른 공간들과의 연결은 주로 길을 여는 빛을 다루는 자들, 즉 ‘개화자’들이 맡고 있다. 개화자들은 하늘강의 흐름과 류석의 떨림을 읽으며, 언제 어느 방향으로 문을 열 수 있을지 계산한다. 문이라 해도 거창한 포탈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공기 중의 빛이 미세하게 뒤틀리고, 주변의 소리가 한순간 멀어졌다가, 다시 다른 차원의 공기와 빛이 밀려 들어온다. 개화자들은 이 문을 통해 다른 빛의 공간으로, 때로는 어둠의 공간의 가장자리까지 다녀온다. 다른 공간의 에너지 흐름을 탐색하고, 그곳의 존재들과 조심스럽게 접촉하며, 류메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살핀다.
그러나 개화자 중 일부는, 다른 공간을 보고 온 뒤 ‘류메아의 한계’를 뚜렷이 느끼곤 한다. 너무 부드럽고, 너무 고요하고, 너무 조화롭다는 것. 끝없는 전쟁과 파괴가 일어나는 공간에 비하면 분명 축복이지만, 동시에 류메아만의 위험도 있다. 갈등이 적은 만큼, 변화도 느리게 찾아온다는 것. 위기가 닥쳐온 뒤에야 겨우 균형을 맞추는 경험을 한 번 겪었지만, 그 이후로 류메아는 의도적으로 큰 충돌을 피해 왔다. 이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언젠가 또 다른 심연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류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류메아에 태어나는 영혼들 중 일부가 주기적으로 다른 공간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이다. 기록자들의 말에 따르면, 확산된 빛이 어느 정도 경험과 기억을 쌓으면, 스스로를 더 압축해 어둠과 혼합되는 차원으로 내려가고 싶어 한다. 류메아는 그런 이들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정원에서 송별 의식을 열어 준다. 떠나는 이의 빛을 잠시 류석에 비추고, 그 빛이 새로운 차원에서 어떻게 변주될지 조용히 지켜본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존재로 길을 틀지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빛이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뿐이다.
류메아의 일상은 겉으로 보면 매우 단순하다. 아침이면 섬을 감싸는 빛이 서서히 농도를 높이고, 류민들은 각자의 정원과 작업장으로 향한다. 빛나무를 돌보고, 빛풀을 수확하고, 류석의 진동을 점검하고, 아이들에게 빛을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벽에 새겨진 빛무늬가 은은하게 일어나, 작은 방 안을 따뜻하게 비춘다. 식탁 위에 놓인 것은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각자의 빛과 공명하는 단순한 재료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날이면, 그 집의 벽과 식탁, 그 사람의 그림자에까지 미세한 빛의 물결이 번져 나가, 온 가족이 그 감정의 떨림을 함께 느낀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한 사람의 빛은 결코 혼자서만 울리지 않는다.
류메아는 그런 곳이다. 빛이 끝없이 확산되지만, 서로를 지우지 않도록 조율하는 공간. 과거 한 번의 과잉을 통해, 빛도 한계를 넘어서면 어둠을 부른다는 사실을 배운 차원. 언젠가 류메아의 빛들이 다른 차원들과 깊이 섞이게 될 때, 이 공간에서 자라난 ‘확산의 기술’과 ‘나눔의 기억’이, 우주의 다른 곳에서 흔들리는 존재들에게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