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다차원의 빛의 공간.2
류메아에서는 빛을 나누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나눈다'라는 개념조차 빛들에게는 희박했다.그들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발산하고 있었고, 더 많이, 더 멀리 빛을 발하여 그들의 에너지를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 비춰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자신의 빛을 숨기지 않고 정원에서 함께 모아 류석에 되돌려주는 의식은 단순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사회의 유지 장치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가장 먼저 ‘네 빛은 네 것만이 아니다’라는 말을 배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네 빛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책임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네가 힘들 때에도 다른 이들의 빛이 너를 지탱해 줄 수 있다는 위안의 뜻이다. 류메아에서 ‘빛을 나눈다’는 것은 단순한 베풂이나 친절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방식이며, 존재 그 자체의 구조와도 같다. 류민에게 빛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은 곧 숨을 참는 것이나 다름없다.
류민이 감정을 느낄 때마다 그 마음은 곧바로 색과 온도를 가진 파동으로 번져나가, 주변의 공기와 다른 존재들의 결에 스며든다.류메아의 공기에는 언제나 미세한 공명음이 흐르고, 서로가 서로의 숨결을 나누며 살아가는 한 이 세계는 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류메이아의 대현자가 했다던 어떤 말을, 한 음유시인은 이런 노래로 지어 불렀다.
네 빛을 내어줄 때, 두려움의 끝에서 진짜 네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많이 내어주어도, 그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어놓을수록 세상은 더 깊고 넓게 확장된다. 진짜 사라지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움켜쥐고 스스로를 놓지 못할 때뿐이다.
류메아의 삶은 끊임없는 나눔과 순환 위에 꽃핀다. 어머니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새 생명을 품듯, 빛 또한 두려움을 통과해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 그리고 그 빛의 확장은, 언제나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낸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빛을 발산하는 행위가 꼭 자기 자신을 소모하는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수학처럼 뺄셈만이 흐르지 않는 이 세계의 본질에는, 계산을 초월하는 창조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빛의 나눔과 확장의 진리. 많은 이들이 두려워한다 — 자신의 빛을 내놓고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말이다. 그것은 확산과 발산 그 자체인 빛들마저도 그러하였다.
하지만 류메아의 기록자들은 말한다.
“한 존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때,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확장이 펼쳐진다.”
이 원리는 어머니가 생명을 품어내듯, 자신 안의 힘과 고통까지 온전히 내어줘야만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과 같다.심연을 두려움 없이 건넜을 때, 세상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공간으로 확장된다.빛을 나눈다는 것은 조금씩 자신의 껍질을 벗고 더 넓은 ‘우리가 되는 과정’일지도 몰랐다.내어준 만큼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눔 속에서 새로운 결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성숙한 빛일수록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더크게 자신을 내어주며 더 많은 빛들을 탄생시켰고 품어내었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나눔의 흐름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으며. 빛들의 태생적인 미묘한 딜레마를 안고 있기도 했다.바로 이 무한한 나눔이 역설적으로 류민들의 가장 큰 한계이기도 했다.빛은 발산을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그리고 대부분의 빛들은,빛을 내보내는 데 능숙할수록, 안으로 쌓아두는 일에 서툴렀다.나누지 않으면 자기자신으로 존재함을 유지할 수 없고, 너무 많이 나누면 결국 스스로가 소진되고야 만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발산의 존재’이기 때문에, 내면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오랫동안 되돌려 모으는 일은 류민이 성장의 단계에서 가장 흔하게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류민들의 일부는 자신이 내보낸 빛을 되찾지 못하고, 바람 속의 가루처럼 희미해지기도 했다.그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소멸에 가까운 퇴색’이다 — 점차 색이 옅어지고, 결이 흐릿해는 것이다. 이렇듯 빛이 언제나 안전하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에너지의 발산이 되돌아오는 흐름을 모르거나, 발산 자체를 관리하지 못하거나, 혹은 외부 힘의 흐름을 경계하지 않을 때 빛들은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결을 잃곤 했다.
오래전부터 빛들에게 중요한 경고로 남아 있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나친 희생으로 스스로를 소모한 경우였다.빛들이 가장 흔하게 자신을 소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가장 아름다운 빛의 모습이기도 했으나, 또한 그 다음 단계로의 성장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느정도 에너지를 응축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의 성장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빛의 차원 뿐 아니라, 빛의 행성이나 성단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어떤 빛의 행성은 행성 전체가 발산만 하다 성장을 멈춘 경우도 흔했다. 우주의 외곽에 있던 어떤 빛의 행성의 빛들은 어려서부터 “빛은 나누는 것이다”만 배웠고, 회수하거나 저장하는 감각은 배우지 못했다. 정원에서도, 거리에서도, 의식에서도 늘 발산이 우선이었다. 덕분에 표면은 언제나 부드러운 빛으로 덮였고 특별한 어둠도 보이지 않았다.멀리서 보면 늘 밝고 평화로워 보였지만, 조금만 체류하면 그 밝음이 오래 이어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행성이 성장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축적되어야 할, 임계에너지가 도무지 모이지를 않았다. 도시와 빛의 기술은 수백 년 동안 정체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늘 피로했고, 이유 모를 공허가 넓은 대륙을 따라 퍼졌다. 발산은 넘쳤지만, 그 발산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아무도 살피지 않은 결과였다.
외부에서 스며드는 어둠으로 인해 빛의 차원이 소멸한 경우도 흔했다. 어떤 빛의 공간에서는, 하늘강의 끝에서 아주 미세한 끊김이 나타났다. 누구는 공명의 흔들림이라 했고, 누구는 기상 변화쯤으로 넘겼다. 그러나 그 끊김으로 어둠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처음 사라진 것은 작은 것들이었다. 기억무늬 몇 개, 오래된 잔광들. 커다란 변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도 위험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은 틈을 확장했고, 도시의 중심공명에서 핵심 결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가 공격한 것도, 전면전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빛이 비워둔 자리로 어둠이 부드럽게 흘러들어왔을 뿐이었다. 결국 차원의 일부가 통째로 비어 버린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그 구멍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기록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이 차원은 침공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 빛의 경로를 지켜보지 않은 채 기반을 내어주었다.”
빛이 스스로의 흐름을 관리하지 않으면 외부 힘은 굳이 공격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실제로 어둠의 침공이 있기도 했었다. 많은 어둠들은 빛에 타버리거나 눈이 멀었지만 빛들 또한 만만찮은 에너지적 손상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장의 영향은, 그들이 품고 있는 수많은 어린 빛, 혹은 어둠에까지 미치기도 했다. 오랫 동안 살아온 빛들은 많은 경험치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빛을 더 확장하기 위한 지혜도 쌓아갔지만, 한편으로는 빛이라는 존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존재적 한계 때문에 스스로가 만들어온 한계들이 상흔처럼 남아있기도 했다. 빛의 한계를 깨달은 류민들은 빛을 아예 숨기거나 멈추려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스스로를 질식시키는 일이었다.류민의 존재는 순환에 맞춰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발산을 하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 강처럼 속의 빛은 탁해진다.빛이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으면 원래의 결을 잃고, 얼룩처럼 굳어 버린다. 그렇게 자신의 빛에 갇힌 류민은은 때로 다른 이들의 빛과 섞이지 못하고, 끝내는 ‘닫힌 자’가 된다. 류메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상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체의 상태. 실제로 많은 빛들이 어려워하는 지점이기도 했으며, 그 성장의 문턱에서 많이들 좌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