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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Oct 20. 2022

고양이섬

일본 시코쿠 아오시마는 고양이섬이다

일본 시코쿠에 위치한 아오시마(青島)는 사람보다 고양이가 훨씬 많이 살고 있는 섬이다. 

한때 천 명 가까이 살던 주민들은 대부분 떠나고 이제는 13명만이 남았다. 반면 고양이는 숫자를 계속 늘려 200마리 쯤 살고 있다는데, 둘레가 4km에 불과한 섬 치고는 무척 많은 숫자겠다.

일본철도여행 중 아오시마를 찾아갔다. 고양이와 살아가던 집사가 아오시마를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시코쿠 오우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하고, 새벽부터 아오시마행 배가 출발하는 나가하마항으로 길을 나섰다.

숙소를 나서는데 길안내라도 하듯이 냥이 하나가 앞서갔다. 너도 아오시마를 가볼테냐, 말을 건네자 화단 안쪽으로 훌쩍 사라졌다.

나가하마항은 낡고 작은 항구였다. 

아오시마행 배는 워낙 작은 탓에 정원이 35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를 넘으면 아예 태우지 않다보니, 항구까지 왔다가 헛걸음하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고 했다.

아오시마행 배에 올랐다. 승선기록부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요금을 내니 작은 티켓과 함께 방명록이 건네져왔다. 올 들어 벌써 26권째인 방명록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는 인사를 적어놓았다. 여백에 괴발개발 글을 쓰고 냥이떼 그림도 그려넣었다.

오우즈로부터 고작 13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세토내해가 생각보다 웅장해서였을까, 제법 멀리 나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배로 30여 분을 달려 아오시마에 도착했을 때 멀리 방파제의 냥이가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섬 맞구나.

배에서 내리니, 수많은 냥이들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반가운 사람을 기다리기라도 하는건지, 주민들 사이에 모여있는 녀석들이 귀여웠다.

고등어 한 녀석이 눈을 계속 마주쳐와서 간식을 꺼냈다. 간식에 몰두하는 녀석들의 뒤통수를 보니, 무늬는 달라도 귀와 뒤통수의 생김새가 똑같았다. 형제들이구나.

간식에 홀린 녀석들을 뒤로 하고, 섬 구경에 나섰다.

섬 곳곳은 그야말로 풍경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보이는 냥이들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골목대장을 하고 있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간식을 뺏기지 않고 섬의 반대편 쪽으로 향했다. 

TV동물농장 아오시마편에 나왔던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니, 문지기라도 하는 듯, 고양이가 지키는 집이었다. 

집 안쪽으로는 여러 마리가 뒹굴고 있는 걸 보니, 녀석은 문지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중에 몇 놈은 어느새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집을 돌아나와 숲길의 지장보살상을 보고 언덕을 넘으니 갑자기 넓은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었다.

아오시마에는 숙소는 물론, 매점도 없다. 섬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먹을 것과 물을 챙겨가야 하는데, 냥이 간식만 챙기다가는 정작 사람이 굶을 수도 있다. 

선착장 앞 마을회관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냥이들에게 밥주는 곳으로 향했다.

밥주는 곳이라고 해서 가보니 정작 대부분의 냥이들은 잠들어있었다. 아무래도 대낮이다보니... 제각기 잠든 모습이 귀여워 셔터를 눌렀다.


아예 녀석들 옆에 자리를 잡고 같이 낮잠을 잤다. 

오후에는 멀리 보이는 언덕으로 산책을 갔다. 언덕은 폐교와 낡은 등대로 이어진다고 했다.

폐교까지는 10분 쯤 걸렸다. 문은 모두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건물 앞 지장보살들을 들여다보다 돌아섰다. 등대로 가는 길은 잡초가 무성하게 덮여 있어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을로 내려오자, 잠에서 깬 녀석들이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은 간식을 탈탈 털고 있으니 한 무리의 방문객이 나타났다. 사료와 간식을 꺼내놓는 걸 보니, 이 분들은 아예 냥이들을 먹이기 위해 방문한 것 같았다. 좋은 분들이구나, 어쩐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참을 어울려 놀다보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침 8시 30분에 도착해 오후 4시까지 있었으니, 제법 오래 있었던 셈이다. 냥이들과 같이 뒹굴고 잠들었던 시간이 근사했다. 무릎에 앉아있던 녀석에게 인사를 하고 천천히 부두로 향했다. 

배에 올랐을 때, 창밖으로 한 녀석이 보였다. 인사라도 하러 온거냐. 잘 지내렴. 손을 흔들었다.

잠깐 사이 아오시마가 멀어졌다. 

배의 뒤로 긴 흔적이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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