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중 만난 기차들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얘기다.
처음 도쿄에 갔을 때, 일본에 있던 후배가 키노쿠니야를 권했다. 신주쿠에 자리잡은 키노쿠니야는 당시의 일본 대표서점답게(지금은 츠타야겠지, 아마도) 커다란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그 규모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문고판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놀란 건 '실용' 코너에 갔을 때였는데, 아주 세분화된 주제의 책들이 많았다. 가령 '집에서 화분에 꽃을 기르기'와 같은 식의 책들이었다. 이런 책들이 서가 하나를 채우고 있었는데, 주제도 다양했다. 얘들은 대체 이런 걸 다 언제 고민하고 있나, 이게 덕력의 배경인가 싶었다.
본래 기차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기차 특유의 냄새도 좋아하지 않았고, 수 년간 시달린 만원 지하철 덕에 기차고 전철이고 그다지 좋아할 수 없었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가 아니면 왠만하면 버스, 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던 것이, 일본 종단 철도여행 이후 바뀌었다. 다양한 신칸센들(종류가 하나가 아니다), 틸팅으로 놀라게 했던 로컬의 특급들,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해 바다 밑을 달리던 기차, 시코쿠로 이어지던 해상 철교, 홋카이도의 구석구석까지 데려다 준 한 량짜리 열차, 사가노의 풍광 사이로 달리던 토롯코 열차, 여전히 서민들의 발이 되고있던 전차들까지 수 많은 기차들을 경험했다. 열차에서 사람들도 만났다. 담배를 물고 전철에 오르던 시모키타자와의 젊은이, 내가 길을 잃을까봐 기어이 따라 내린 하코다테의 할머니, 노루 가족이 길을 건너도록 열차를 세우고 기다리던 쿠시로의 차장까지 ...
왜 일본에 철덕들이 많은지도 알게 됐다. 노선과 열차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래핑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르게 디자인할 정도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모습들, 여기에 에키벤까지 더해지니 기차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몇년 간 일본을 다니며 담았던 기차들을 꺼내놓아본다. 누군가에게는 기억을,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을,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어느 날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