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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Apr 19. 2021

원령공주의 섬

모노노케 히메의 실제 배경 야쿠시마

야쿠시마(屋久島)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もののけ姫)의 실제 무대로 알려졌다. 

일본 남서쪽 80km 해상, 태평양과 동중국해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제주도의 1/4 정도의 작은 섬이지만, 1,936m의 미야노우라다케(宮之浦岳)를 품고 있고, 7,200년을 살아 온 조몬스기(縄文杉)가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야쿠시마까지는 직항이 없고, 일본에서도 야쿠시마행 비행기를 운영하는 공항이 적다. 그러다보니 루트가 조금 복잡해지는데, 한국에서 후쿠오카(福岡)로 간 뒤 기차를 타고 가고시마(鹿兒島)로, 다시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여정이 보통이다.

워낙 긴 여정이다보니 새벽부터 서둘러 오전 10시 20분에는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후쿠오카공항은 특이하게도 일본 국내선 터미널이 국제선보다 크다는데, 일본인들의 대표적인 여행지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다보니 정작 국제선 터미널은 아기자기하고 버스 터미널 정도로 느껴진다.

교토의 좌석버스보다는 좀 작고, 어딘지 입석버스라는 인상을 주는 공항버스를 타고 하카타(博多)역으로 향했다. 

하카타역에서 에키벤(駅弁, 일본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사고 가고시마행 신칸센(新幹線)에 올랐다. 신칸센은 꽤 넓고 쾌적했는데, 가격을 생각하며 당연한 것이겠다.

가고시마까지는 한 시간 남짓, 창밖으로 낮은 산과 바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온천이 유명한 곳이니 화산들도 섞여있을텐데 딱히 높은 산은 보이지 않았다.

가고시마추오(鹿児島中央)역에 도착했다. 역 건물 위로 보이는 대형관람차를 헤에, 쳐다보다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야쿠시마행 페리를 타러 갔다.

가고시마 선착장에서는 사쿠라지마(桜島)가 가까이 보였다. 사쿠라지마는 2013년 분화한 활화산이다. 화산재가 5천미터 가까이 솟았다는데, 한가한 소리지만 한번 쯤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으로부터 꼬박 9시간의 여정 끝에 야쿠시마를 처음 마주했다. 선착장에는 세계자연유산이라는 플래카드가 특산인 날치 그림과 함께 붙어있었다. 렌터카를 찾고 부지런히 숙소로 향했다. 

사실 야쿠시마에서 미용실을 가보려고 했었다. 야쿠시마 관련 정보를 찾다가 10년 전 도쿄에서 낙향한 여성 마스터가 운영하는 미용실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잘라볼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예정보다 1시간 정도 시간이 더 걸린 탓에 샵은 문이 닫혀있다.

아쉽지만, 숙소로 방향을 돌려 짐을 풀고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둘째날 아침, 숙소를 나와 소박한 시골마을을 지나 센피로폭포(千尋滝)를 보러갔다.

센피로 폭포는 "못초무다케(モッチョム岳) 기슭의 거대한 화강암 암반을 다이노강(鯛之川)이 깎아서 장대한 V자 계곡의 경관을 만들어낸 것으로 폭포의 높이는 약 60미터입니다. 중앙으로부터 대량의 물이 흘러 떨어지는 야쿠시마(屋久島)를 대표하는 폭포 중 하나입니다. 폭포의 왼쪽에 있는 암반은 마치 1,000명이 손을 잡은 정도의 크기라고 해서 센피로의 폭포(千尋の滝) 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출처. 규슈관광정보) 

멍하니 폭포와 원시림을 보다 예쁜 기념품 샵 호누(HONU)로 향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호누는 야쿠시마의 조개껍질, 돌, 삼나무 조각 등을 이용해 작고 예쁜 물건들을 만들어파는 곳이다. 두 사람은 일찌감치 야쿠시마에 자리를 잡고 기념품을 만들어 팔거나, 쉬는 날에는 서핑을 다니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게 앞에는 Open/Close가 아니라, Open/Gone Surfing이라는 팻말이 달려있다.)

입구에서는 이루카(イルカ)라는 이름의 댕댕이가 손님을 반겼다. 이루카는 돌고래라는 뜻이다.

맘에 드는게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거북이 기념품과 조몬스기 유화 한장을 구입하고 히라우치(平內) 해중온천을 보러갔다. 입욕료 대신 마을발전기금 100엔을 내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해수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침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과 남녀 관광객이 온천을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일본의 남녀혼탕'이었는데, 알몸으로 서로 얘기를 나누며 눈길을 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서로 꺼리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다.

카메라를 한쪽에 내려두고 멀찌감치에서 발을 담그고 돌아섰다.

다시 길을 서둘러 오코노타키(大川の滝)를 보러갔다.

차에서 내릴 즈음 빗줄기가 굵어졌는데, 폭포까지는 10여 분 쯤 빗길이었다.

일본 10대 폭포에 들어간다는 오코노타키는, 88미터라는 높이가 주는 위용도 대단했지만 풍부한 수량과 엄청난 소음이 인상적이었다. 용소 바로 앞까지 가니 빗줄기인지 폭포수가 흩뿌리는 것인지 알 수 없을만큼 푹 젖었다.

폭포 소리에 한참 홀려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유도마리온천으로 향했다.

유도마리온천은 역시 해수온천인데, 히라우치 보다 좀 더 아늑한 느낌을 줬다.

이 곳은 탕의 가운데에 칸막이를 세워 남녀탕을 구분하고 있었다. (칸막이 한쪽에는 女, 반대편에는男이 새겨져있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어쨌든 혼탕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잠시 발을 담그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금발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나타났다. 일본에 온 기념으로 혼탕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탕 입구에서 훌러덩훌러덩 옷을 벗어제꼈다. 

아무래도 무안한 상황이 될 것 같아,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손을 흔들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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