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사랑만은 독학이 안 되더라고요

현실주의자의 대책 없는 사랑 찾기

by 생각이 과함

내 인생은 늘 ‘시기적절한’ 정답들로 채워져 왔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려 활자와 씨름했고, 대학에 가서는 남들 하는 만큼 뜨겁게 놀고 추억을 쌓았다. 3학년 때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해서, 남들은 취업 준비로 열병을 앓던 스물 넷에 나는 이미 교단에 서 있었다.


공부든 일이든, 나에게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사랑도 그럴 줄 알았다. 서른 즈음이면 운명의 짝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처럼 잉꼬부부로 사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다음 챕터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하는 건 줄 알았던 '사랑'은,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도 도무지 정답을 써낼 수 없는 유일한 과목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외동딸이다. 우리 가족의 유대는 유독 끈끈했는데, 거기엔 시린 기억의 조각들이 박혀 있다. 내가 일곱 살 무렵, 아버지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 생사를 건 큰 수술을 하셨다. 그리고 내가 임용고시를 치르던 해에 아버지의 병은 다시 재발했다.


아빠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망. 그 거대한 파도를 함께 넘으며 우리 세 식구는 독립된 개인이라기보다는 한 몸처럼 단단해졌다. 불과 몇년 전인 20대 중후반까지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내 자아는 부모님과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었다.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도 폐쇄적인 울타리였다.


가족과 경험한 ‘절대적 사랑’은 내 연애의 기준점이 되었다. 내가 아는 사랑은 서로가 없으면 죽고 못 사는 것,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타인과의 연애는 많이 달랐다.

상대가 나에게 마음을 다 내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만 마음을 열고 싶었지만, 그 확신은 늘 신기루처럼 잡힐듯 흐렸다. 남자의 호감으로 시작된 연애도 끝날 때쯤이면 늘 내가 마음을 구걸하는 모양새가 됐다. 사랑받고 싶어서 울고불고 매달리다, 결국 지친 내가 관계의 끈을 놓아버리는 패턴의 반복.


지금 돌이켜보면 스무 살 남짓의 그들에게 내가 너무 가혹한 문제를 내밀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을 했겠으나, 가족간의 사랑을 모범 답안으로 삼았던 나에게는 늘 성에 차지 않는 오답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답을 찾지 못한 채 10년이 흘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스스로 성찰하고, 상처받고, 공부하고, 심리학 유튜브도 열심히 보며 사랑의 정답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일이든 공부든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하면 발전하기 마련인데, 사랑은 내가 투자한 노력에 비례하게 찾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지난 시간은 내 입맛에 맞는 완벽한 퍼즐 조각을 찾는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를 거울삼아 내가 가진 모순과 결핍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혹독한 수행에 가까웠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방식이야말로, 나조차 미처 몰랐던 내 안의 뾰족한 모서리와 축축한 그림자까지 기어이 마주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내 오답노트에 적힌 수많은 이름은 사실 '그들'이 아니라 '나'에 대한 기록이었다. 누군가를 찾으려 헤맸던 그 길 위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었으므로. 완벽을 꿈꾸던 현실주의자가 '낭만'이라는 대책 없는 오답을 선택하기까지. 그 긴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