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차려 주는 꽃

난초와 사랑에 빠진 남의편

by 초록여유

이렇게 꽃은 피었다.

보름에 한 번씩 바께스에 담아 놓은

물을 준다. 바로 받아 놓은 수돗물이

아닌 2~3일 전에 미리 받아놓아라고

말한다. 주말 토요일 물주느라 부산하다.

얘기 다루듯 애지 중지 한다.

'난초가 밥을 차려주겠다,"

질투가 난 마누라는 주말이라도 잠을

잘 수 없는 안타까움을 이렇게 말한다.

7~8년을 물을 주고 지극 정성이었지만

꽃이라고는 필 조짐조차 없어서 기어이

그러면 난초에게 밥을 차려 달라고

했더랬다. 이말도 벌써 몇년 전이다.

작년부터는 자신이 물을 주었는지 안 주었

는지 깜박한다고 했다. 그래서 달력에

표시를 해 가면서 수행을 했다.

불가피하게 주말에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내 몫의일이 한가지 늘어났다.

남편은 난초에 물을 주어도 자신의 밥은 절대 안챙겨서 먹는다. 버릇이 아주 잘못되었다. 남편을 모시고 사는게 아니라 시아버지를 모시고 눈치보며 살고 있다. 결혼 초장에 잡아서야 하는데 잡는 시늉조차 하지 않아서 기강 잡는 것은 이 번생은 포기했다.

난초처럼 입맛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아들은 엄마가 한 것이라면 뭐든지 맛있다고 하지만 남편은 여지껏 '맛있다'는 단어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맛이 없을 경우는 짜다, 싱겁다. 비리다, 2%부족하다는 둥 아주 표현이 늘어진다.18년동안 주말마다 김치콩나물 국밥을 끓여서 가게를 낼 정도다. 아들은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엄마, 아빠는 지겹지도 않아'라고 말했다 지겹게 국밥을 끓여서 줘도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는절대 먹지 않는다.

난초 물 주는 이야기를 하다가 옆으로 샜다. 아이고! 하소연 하느라 정신이 없다. 비교가 아니라 다른 집 남편들은 잘도 하더니만 내 남편만 아니었다. 남편 대회가 있다면 꼴등하지 싶다. 초장에 잡지 않아서이고 롤모델이 없어서 이기도 하고 아무튼 기강을 못 잡은 내 탓이 제일 크다. 남편을 교체해버리든지 해야겠다. 말 못하는 식물에게는 지극정성을 들이고 있으니 화가 안날 사람이 있을까 생각한다.

분갈이도 할 줄 모른다. 화분이 꽉 차서 분갈이를 해야겠다고 말하면 어디선가 빈 화분을 주워온다. 분갈이용 흙을 쿠팡으로 주문을 하라고 지시한다. 모든 것은 지시와 명령이다. 권유와 배려는 없다. 나이 들어서 쫒겨나기 딱 좋은 케이스다. 그렇다고 혼자서 분갈이를 하느냐 절대 하지 않지 말입니다. 성질급하고 분갈이에 다년간의 노하우가 있는 능숙한 마누라의 몫이지 말입니다.

그래 난초도 양심이 있었나 보다!

지극 정성에 감읍해서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어 주었다.

사진 촬영은 누가했을까? 여러분들이 한 번 맞춰보시라.

또 꽃이 피고 보니 그동안 화분 밑바닥을 수건으로 감싸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물을 담아두는 파란 통은 햇볓에 바래졌다. 플라스틱도 세월을 견디느라 하얗게 되어가고 있다. 남편은 방향제를 두지 못하게 한다. 세제 향이나, 샤프란 을 쓰지 않는다.아니 못한다. 아들방에만 방향제가 있다. 난초꽃에는 코를 박고 있다.

우리집에도 이제 좋은 일이 있겠다.

남편의 묵묵하고 세심한 손길을 받은 식물에게서 화려한 듯 소박한 절정을 보았다.

한 십년 뒤에는 난초가 밥을 차려주겠다. 아니 이렇게 자연스레 베인 습관으로 밥을 차려 주겠다.

김치 국밥 빼고 꼭 브런치로 해달라고 해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