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하다.
사람은 티끌이란다.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김 작가는 결혼을 했지만 자녀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계획이란다. 이유를 듣자니 수긍이 간다. 사람은 티끌이란다.
우주 속에서 사람은 티끌과도 같아서, 유전자를 남기든 말든 뭔 난리를 피우든 간에 대세에 어떠한 영향도 못 준단다. 요지는 '사람은 티끌과 같으니 나는야 딩크로 살겠다' 정도. 역시 작가님은 현명하다.
사람은 티끌과 같다. 그 말마따나 글이라는 것도 써봤자 뭐하나 싶다. 인간이 티끌이면, 인간을 그리는 글도 곧 티끌이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하루 마감에 시달린다. 티끌로 사라질 글들에 안절부절못한다.
심지어 글은 티끌보다 못할 수도 있다. 티끌은 어찌어찌 붕 떠서 우주를 떠돌 수 있다 치자. 글이란 건 기껏해야 구글 정도 떠돌면 성공한 거다. 구글이 넓어봤자 우주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도 나온다.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쓴다'. 유리와 돌에 써갈겨 봤자 티끌일 뿐이다. 하늘 끝에 닿는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다만 티끌론(論)도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사람이 티끌이고 글이 티끌이라면, 반대로 그 모든 것에도 초연해질 수 있게 된다. 어차피 모든 것이 티끌이면 모든 것이 가볍다. 모든 것이 가볍다면 내려놓으면 된다. 글이란 게, 사람이란 게 언제나 티끌보다 대단한 뭔가가 돼야 한다? 애초부터 잘못된 강박은 아닐는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특히 논리적인 글쓰기는 쥐약 수준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바로 그 쥐약이 현재 내 밥벌이가 됐다. 그래도 참고 하고 있다. 밥벌이가 요렇게나 무서운 거다. 인간 존재는 티끌 같아도 자신의 밥벌이만은 태산 같은 것일까. 티끌이라도 모아 버릇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