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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한 Jun 18. 2023

4. 테세우스의 배:      원본과 복제본의 딜레마

AI는 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화성 이주계획’을 발표하며 우주로의 장밋빛 디아스포라를 호언장담했다. 2050년까지 지구인 100만 명을 화성에 이주시킬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허풍이 과한 영리한 사업가의 우주쇼로 보였다. 하지만 2002년 설립된 민간 우주 탐사기업 스페이스 엑스(Space X)가  세계 최초의 상용 우주선 발사, 세계 최초의 궤도 발사체 수직 이착륙, 세계 최초의 궤도 발사체 재활용,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 비행사의 국제 우주 정거장 도킹 등 혁신적인 업적들을 달성하였고 21세기 인류의 우주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그들의 성과를 보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조만간 인류가 우주로 갈 듯도 하다.

 조금 늦추어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몇 년 뒤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약속을 지켜낸다면 이는 분명 우주 개척사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어이 우리 세대에 화성에 가고야 만다.”

일론 머스크의 호언장담     


그러나 날 더러 비용을 지불할 테니 화성에 갈 거냐 물으면 썩 내키지 않는다.  화성으로 가는 데 드는 비용도 문제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발생하는 돌발적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은 썩 유쾌하지 않다.  간다 한들 그곳이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 또한 수 세기 전 지리상 발견과 식민 개척사를 겪은 인류에게는 또 한 번의 위대한 도전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래 우주 개척이 인류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고 모두에게 골고루 그 혜택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우리 행성 지구는 지금 기후 변화, 노동 문제, 빈부의 격차, 계층 문제 등 실질적으로 많은 문제들로 몸살을 겪고 있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지구에 모두 남겨둔 채 우주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까? 물론 얼마 전 작고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주를 개척하면 지금 지구가 겪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니 걱정 말라고...  과연 그럴까?

사실 2022년에 출간된 『미키 7 Mickey 7』은 우리가 우주에 간다 한들 지구 행성에서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와 인간적 문제는 여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Edward Ashton)의 장편 SF 소설이다.  출간이 되기도 전 감독 봉준호가 다음 차기작으로 선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영화 《미키 17》는 2024년 3월 미국에서 개봉예정이다.

이 작품이 봉준호의 간택을 받은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우주 개척과 복제인간을 소재로 하고 있어 소설을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유머와 등장인물 간의 티키 타카는 독자에게 폭소를 선사한다. 작가인 에드워드 애슈턴은 현재 학생들에게 양자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어 그런지 소설 여기저기에서 해박한 과학적 지식의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 책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과학적 지식을 뽐내느라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와 흐름을 끊지 않는 사건과 빠른 전개를 통해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SF 장르가 가지는 신박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낯선 미래 공간을 그려내지만 지금 인류가 가지는 실존적인 문제와 현실적 문제를 우주 공간에 여지없이 반영한다.   

  

“항상 느끼지만 SF 소설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독자들이 각자의 감정적 맹목을 배제한 채 오늘날의 문제들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날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식민주의의 사악함을 풀어낸다면  많은 독자들은 고발당한다는 기분이 들어 여러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천 년 후 미래에 50광년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똑같은 이슈를 다루면 말할 기회를 공정하게 줄 거다.”

            에드워드 애슈턴               



1. 우주에서도 인간의 문제는 여전하다.

『미키 7 Mickey 7』은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 니플하임 개척민 소속의 익스펜더블(소모품 역할을 하는 작업자)인 미키 7(Mickey 7)의 이야기이다. 그를 제외하곤 지원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익스펜더블은 위험하고 험한 임무를 하는 노동자이자 복제인간이다. 인간 미키 반스는 정착 행성인 미드가르에서 새로운 우주 개척지 니플하임으로 떠나는 우주 개척선 드라카에 승선하기 위해 그 일에 지원했다. 익스펜더블은 죽음에 처할  가능성이 높기에 미리 미키의 몸과 인격이 백업되었다. 죽을 때마다 재생탱크에서 몸은 바이오 프린트되고 함께 백업된 인격이 다운로드되어 복제인간이 만들어지니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업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미키 7은 원래 인간인 미키 반스의 죽음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죽음을 맞이한 후 복제된 존재이다. 지금의 미키 7 또한 죽음에 이르게 되면 그의 기억과 몸으로 복제된 미키 8이 다시 임무에 투입될 것이다. 이제 복제인간 미키 7이 처한 상황을 통해 인간이 미래 우주 공간에서 맞닥뜨린 문제들을 한번 살펴보자.     

 A. 인간은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다

보통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만드는 인간(호모 파베르 Homo Faber)의 성향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규정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생각하고 놀고 생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 3가지 중 생산하는, 일하는 인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상가 중 하나이다. 그는 아예 노동을 동물과 구분시키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라 본다. 다시 말해 노동은 고유한 인간적 존재 방식, 즉 인간의 의식적 생활 활동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공동체의 구성원,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일하면서 개인적 존재로서 자존감을 획득하고 성숙한 사회적 존재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자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의식적 생활 활동은 인간을 동물적 생활 활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구별 짓는다."

 칼 마르크스     


『미키 7 Mickey 7』의 주인공 미키 반스가 개척 행성인 니플하임으로 향하기 전 정착 행성 미드가르에서 삶의 무료함을 느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다른 정착 행성들처럼 미드가르는 모든 산업과 농업이 자동화되어 있고 정부는 수확물을 인구수대로 나누어 배급한다. 게다가 일정 정도의 기본 생활비도 지급한다. 한마디로 미드가르에선  인간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미키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의 직업은 역사가였다. 태블릿을 두들기면 필요한 정보를 얻는 시대에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정부로부터 주어진 생활비는 먹고살기 충분하지만 삶은 무료했다. 무료한 청춘들이 으레 그렇듯 그는 사고를 친다. 정부 보조금만으로 살고 싶지 않아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건다. 결국 엄청난 빚을 지고 사채업자에게 쫓기게 되며 위험에 처한다. 친구 베니토의 권유로 그는 니플하임으로 가는 우주 개척선인 드라카에 탑승하기로 결심한다. 우주선에 탑승하려면 전문적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는 조종사도 아니고 유전학자, 식물학자, 우주생물학자가 아니다. 엔지니어는 더더욱 아니었다. 미키는 쓸만한 기술을 가지지 못했기에 익스펜더블에 지원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비록 기계도 하기 힘든 험악한 임무로 죽을 순 있지만 복제인간으로 다시 재생될 수 있는 불멸의 존재라는 것이 이 직업의 유일한 장점이다.

미키 반스가 익스펜더블에 자원한 근본적 이유는 무서운 사채업자의 협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절박감뿐 아니라 미드가르 행성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쯤에서 미키가 역사가인 것은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담긴다. 미래 AI와 복제기술, 생명과학, 첨단기술 시대에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미드가르에서 미키는 무용한 인물인 것이다.  작가는 미키반스를 통해 미래 인간이 기계보다 쓸모없는 위치로 밀려 날 가능성과  인간의 존재감과 삶의 만족감에 있어 노동, 즉 일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여유로운 삶이 주어진다 해도 할 일이 없는 세상,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세상이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이것이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우리에게 닥칠 미래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AI들이 등장하게 되면 소수의 전문직이나 특수 직종이 아니고는 원치 않아도 우리의 일자리를 그것들에게 내주어야 할지 모른다. 물론 자판 앞에 앉아 있는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지금 선진국들은 인간이 생산의 주체, 노동의 주체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위기감과 그로 인해 다가올 미래의 사회적 문제들을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그들조차 그다지 뾰족한 수는 없는 듯하다.

 사실 주인공 미키가 살았던 행성 미드가르에선 딱히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인간은 먹고사는 것만 해결된다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만드는 인간(호모 파베르)인 우리는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을 통해 무언가 획득하고 성취하는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다. 그래서 어쩌면 미키는 위험하더라도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이 처해 있었던 무기력하고 무능한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녹녹지 않았다. 사실 그의 기대와는 너무나 상반된 상황에 처한다.

     

B. 쓸모없어지면 버리고 대체할 수 있는 노동

미키는 우주 개척지 니플하임에서 새로운 정착촌을 세우는 역사적인 일에 동참하지만 그의 직업은 이미 말했듯 존중받는 직업이 아니다.  미키의 직업, 익스펜더블은  개척단에서 험하고 궂은일을 하는 계층의 말단에 위치한다. 복제인간 익스펜더블은 기계나 로봇이 할 수 없는 일, 생체 바이러스 실험 대상이 되거나 방사선 피폭이 발생시킨 무시무시한  일 등을  처리한다.  기계들을 동원해 처리하는 비용보다 복제인간을 고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더 효율적이다. 기계가 고장 났을 때 수리하는 비용보다 70그램 정도의 단백질로 만들 수 있는 복제인간은 더 싸고 손쉽게 이용가능한 노동력인 것이다. 간단하다. 위험한 일에 투입되어 죽게 되면 단백질 몇 그램으로 다시 만들면 된다.

오히려 불멸이라는 직업적 장점이 노동의 가치를 훼손한다. 계속 복제될 수 있어 익스펜더블은 쓸모없으면 버려지고 다음 버전으로 대체된다. 게다가 동료들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나는 복제인간 미키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했다. 미드가르에서 무익하게 삶을 흘려보냈다면 니플하임에선 누구도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을 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해가며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만  존중받지 못하고 따돌림당하고 소외된다.

이런 모습은 노동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일상 속 직장이나 일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은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배제하고 인간을 외롭게 하는 ‘소외된 노동’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말은 어렵지만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작가 애드워드 애슈톤은 전문직 종사자도 아니며 엘리트 계층도 아닌 미키의 모습을 통해 인간 사회에서  가장 아래 계층을 형성하는 노동자들의 소외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생명을 소모품처럼 갈아 끼우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모순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계층 갈등의 모습을 가져다 미래 우주 공간에 그대로 투영시킨다.      


“.. 나는 봉준호 감독과 ‘미키 7’은 물론 그 외에도 많은 것에 대해 두 시간 정도 긴 토론을 했었다... 그때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계급 갈등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을 포함한 광범위한 이슈에 관해 우리가 매우 비슷한 관점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에드워드 애슈턴     


사실 미키는 미르가르에서도 가장 밑바닥 인생이었다. 하지만 절박한 현실적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미키가 선택한 익스펜더블 되기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마저 지키기 힘들게 했다.  위험하지만 쓸모 있는 일을 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미키의 시도는 자본주의적 속성과 어디에나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계층적 질서로 인해 금세 무력화된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인간이 인간적 삶을 살기 위해 노동권이 보장되느냐 안 되느냐 이전에  인간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적 환경이 앞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못지않게 개인 또한 노동 현장의 부품이 아닌 스스로의 가치를 회복하고 노동하는 주체로서의 인격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소설의 막바지에  미키는 자신의 생명권을 타인에게 양도한 수동적 타자가 아닌 능동적인 인격을 가진 주체가 된다. 말 그대로 계층 간의 갈등 구조와 억압적 구조에 저항하며 당차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우주선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개척지에서 먹을 것을 구할 때까지 우주선에 싣고 온 것으로 생존해야 한다. 그래서 익스펜더블은 하나만 존재한다. 중복된 익스펜더블까지 먹일 식량이 없다. 함께 임무를 수행하러 간 미키 7이 죽은 줄 알고 조종사인  친구 베니토는 그의 죽음을 상부에 보고 하자 미키 8의 재생을 지시받는다. 살아남은 미키 7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숙소로와 재생된  미키 8의 존재를 보고 멘붕에 빠진다.  먼저 둘을 위한 식량을 확보하는 문제도 있지만  중복된 익스펜더블은 살인범이나 납치범보다 못한 취급을 받기에 둘 중 하나는 필연적으로 제거될 것이다. 그야말로 절박한 생존적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둘 다 살아남기로 한다. 그때부터 더 이상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권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 상부 명령에 복종하는 타자가 아닌 스스로 능동적 판단과 결정을 하는 주체로 탈바꿈한다. 미키 7과 미키 8은 그들이 제거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 온갖 노력을 한다. 독자들의 눈엔 그 노력이 우습기도 하지만 눈물겹다.

동시에 독자는 미키 7과 미키 8이 단지 서로를 복제한 복제품이지만 동일한 존재가 아닐 수 있음을 목격한다. 그 둘은 동료들에게 들키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각자 자율적이며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그들을 단순히 동일한 복제본으로 취급하기엔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이제 소설은 독자에게 미키 7과 미키 8이 신체와 인격이 같은 복제인간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인격과 영혼을 가진 각각의 독립체로 보아야 하는지 질문한다.     

     

C. 원본과 복제본의 딜레마

미키는 이런 난제를 체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적의 인물이다. 미키 반스라는 원본과 나머지 7명의 복제본이 모두 같은 미키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뿐 아니라  나머지 7명의 복제본 또한 모두 동일한 지도 의문이다.

소설 속에선 이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세계관이 충돌한다. 먼저 하나의 세계관은 하나의 몸에 하나의 영혼만이 깃든다 주장하고 신체와 영혼은 분리되지 않는다 말한다.      


“ 나탈리스트 교회의 주요 교리 중 하나가 하나뿐인 영혼의 신성성을 믿는 거야.”

... “백업은 필요 없단 거지. 신체마다 영혼이 하나 있다고 믿어. 신체가 죽으면 영혼도 죽는 거야.” 듀건이 말했다. “ 맞아. 그들한테는 바이오 프린팅된 신체에 백업된 인격을 심어 만든 존재는 영혼 없는 괴물일 뿐이지,”“혐오스러운 존재랄까.”“완전한 인간은 아닌 거지.”

 p.104


나탈리스트는 우주 세계에 존재하는 종교의 일종이다. 그들에게 미키는 인간이 아니다.  미키 1 이전의 원본인 미키 반스가 죽었을 때 인간 미키는 사라졌다. 백업된 인격을 다운로드한 복제인간들에겐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탈리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익스펜더블은 그저 작은 구조물, 즉 큰 구조물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며 개척지의 자산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세계관이 나탈리스트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것은 미키의 원본과 복제본을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젬마: “.. 테세우스는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어요. 그동안 배 여기저기가 망가지고 뜯어져 배를 고쳐야 했어요. 몇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원래 선체를 구성했던 목재는 모두 교체되고 없었어요. 이 경우 테세우스의 배는 출발할 때와 같은 배일까요? 아닐까요?”

미키: “멍청한 질문이네요. 당연히 같은 배죠.”

젬마: “좋아요. 만약 배가 폭풍을 만나 산산조각이 나서 다시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완전히 새로운 배를 지어야 하면요? 그래도 여전히 같은 배인가요?”

미키: “아니요. 그건 완전히 다른 경우죠. 배 전체를 다시 지었다면 테세우스 2호가 되겠죠. 후속작인 셈이니까.”

젬마: “그래요? 왜죠? 모든 부품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고쳤을 때와 한 번에 배 전체를 다시 지었을 때가 어째서 다른가요?” 나는 답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젬마: “이 임무를 맡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에요. 당신이 바로 테세우스의 배라고요. 사실 우리 모두 그렇죠. 지금 내 몸을 이루는 세포 중에서 10년 전에도 존재했거나 몸의 일부였던 세포는 없어요. 당신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 지어지죠. 한 번에 한 부분씩 수리되는 셈이죠. 당신이 이 임무를 맡게 된다면 당신은 한꺼번에 새로 지어지는 셈이에요. 하지만 결국 똑같지 않나요? 익스펜더블이 재생탱크에서 나오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진행될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셈이에요. 기억이 남아있는 한 진짜 죽은 게 아니에요...”

p. 132-133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는 신체의 모든 세포를 한 번에 복제하는 미키 익스펜더블의 속성을 정확히 요약한다. 이 대화에서 교육관 젬마는 미키에게 그의 복제인간들과 그가 동일하다고 말한다. 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주장을 온전히 인정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복제인간의 정신은 전 선임자 미키가 백업시킨 기억을 다운로드한다. 다운로드한 정신은 선임자의 경험, 기억, 인격을 모두 그대로 이어받는다.  그렇다고 원본과 복제본이 정확히 동일한  영혼을 가질 수 있나? 단정 지을 수 없다.

사실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규명은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우리에게도 풀어야 할 숙제일 수 있다. 사고로 팔을 다쳐 인공 팔을 착용한 사람은 인간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사고로 몸이 부서져서 뇌만 간신히 살아남아 그의 뇌를 로봇에 이식한 것은 인간인가? 물론 나의 가족 중 하나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뇌만 살아남아도 인간으로 규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럼 다음 사례는 어떤가? 오래전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영화 《루시》에서 여자 주인공이 강력한 신종 마약 성분이 온몸에 퍼지자 비정상적으로 뇌 기능이 발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는 사라지고 뇌만 살아남아 방대한 뇌의 기능과 정보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으로 변하면서 영화가 끝났다. 물론 영화 속 가상 인물이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루시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다... 음...... 어렵다.

말도 안 되는 예일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CD가 발매되었을 때  CD의 복사본이 아닌  원본을 손에 넣으려 하는 팬심은 CD의 원본과 복사본을 물리적으로 구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정적 측면에서도 원본과 복사본을 명확히 구분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D. 원본과 복제본은 같을 수 없다.     

주인공 미키 7은 자신을 미키 8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 외모는 똑같을지 모르지만 , 에잇은 확실히 나를 잇는 존재가 아니다. 솔직히 에잇은 나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p.59     


소설은 미키 7과 미키 8이 각자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개별적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다. 미키 7이나 미키 8은 자신이 죽으면 자신과 동일한 복제인간이 재생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불멸의 존재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즉, 자신이 아닌 다른 복제인간을 자신이라 여기지 않기에 각자 자신이 살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애인 나샤와 미키 8이 함께 있는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미키 7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철저히 미키 8과 자신을 분리해 생각한다. 마지막 임무 수행 시 각자 독특한 개성과 인격적 사고와 기지를 발휘하며 자기 만의 방식과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그들이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은 복제인간 설정을 어린 시절 본 영화 《스타트렉》의 전송기에서 착안한 것이라 했다.      

 그는 전송기라는 시스템이 실제로 누군가를 전송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 끝에서 사람들을 녹이면 다른 쪽 끝에서 완전히 똑같이 복제해 내는 시스템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전혀 다친 곳이 없이 전송기에서 나온 사람이 전송기로 들어간 사람과 완전히 똑같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주관적인 경험을 따지면 어떨까요? 그들은 세포 수준으로 조각조각 찢어지는 순간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거다. 그러고 나서 사라져 버리는 거다.”

에드워드 애슈턴     


작가의 말처럼 나를 복제한 인간이어도 물리적 세포와 근육, 그리고 나의 인격들이 분자구조로 조각조각 나뉘는 순간 기존의 나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 된다. 하물며 그것을 조합해 복제한 인격체는 원래의 나와 완전 다른 존재인 것이다. 내 장기를 다른 이에게 이식한다면 그 사람의 것이지 그것은 내 것이 아니듯 나를 복제한 인간은 더 이상 내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뿐 아니라 복제인간이 출시될지 모른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규명해야 할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숙제가 된다. 그것을 규명하는 기준점은 분명 인간적 시선이어야 한다.  인간은 공장에서 찍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적인 가치와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복제인간이나 미래의 기술 결과물들이 무엇이든 간에 좀 더 긍정적인 방향이나 인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참고 문헌

『미키 7 Mickey 7』, 에드워드 애슈턴, 배지혜 옮김, 황금가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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