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에세이 3
브런치에서 알림이 뜬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글을 쓰라는 격려이자 재촉의 알림이다. 몇 주간 독서나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 방전 상태였다. 뭔가로 충전해야했다. 돈도 벌고 집안 일도 하는 바쁜 와중에 짬짬이 글 쓰고 책 읽는 것이 주제넘었던 듯 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이 문제라 생각했다.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쇼핑도 하고 친구 만나 수다도 떨었다.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하루 종일 몸에 지니고 다녔다. 거의 좀비 수준으로 며칠간 인터넷 세상을 멍하게 헤맸다. 웬 걸 그래도 충전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지루해졌다. 온갖 오락 거리가 모두 재미없어졌다. 급기야 나라는 존재에서 뇌는 사라지고 손가락만 남은 듯했다. 게다가 자판 앞에 앉아 집중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해야 할 일을 옆에 두고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평소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학업 성취가 낮아지면 그들의 집중력 문제를 혹독하게 힐책하곤 했다. 이제 사돈 남 말이 되었다. 아이들의 절박한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집중이 되지 않는데 어찌 교과서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겠는가? 그들도 하고 싶은 마음은 나처럼 굴뚝같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집나간 집중력을 데려오려면 개인적 의지로만으론 힘들다는 것과 그 이상의 강렬한 정신 상태가 필요하다. 평상시 독서와 글쓰기 근육을 잘 단련했다 자부한 나조차도 이런 문제에 직면해보니 깊이 있게 집중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듯하다. 지금 나의 문제가 뭐지? 두서없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책장에 꽂힌 한 권의 책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요한 하리 Johann Hari가 쓴 『도둑맞은 집중력 Stolen Focus』!!! 난 그 책을 집어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서 자주 가던 까페 구석탱이에 자릴 잡고 앉아 읽기 시작했다.
A. 도난당한 집중력 찾기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미국, 영국의 알 만한 주요 신문사들에 글을 기고해온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켐브리지 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 『도둑맞은 집중력』엔 그도 비켜 갈 수 없었던 우리 시대 집중력의 위기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룬다. 글쓰기와 독서가 직업인 그 조차 집중력 문제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흔히 스마트폰 기기나 디지털기기에 대한 개인적 통제력을 잃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라 말한다. 사실 현재 우리가 겪는 집중력 문제는 바쁜 일상에서 오는 수면의 질 저하, 집중력을 파괴하는 음식들과 생활 습관, 소설과 같은 긴 문장을 읽는 능력 저하, 집중력 파괴로 사업적 수익을 얻는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통제 등 다양한 원인들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요한 하리는 집중력의 위기를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며 시스템의 문제라 지적하고 그 해결책도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주장한다. 뭐 어쨌든... 그의 말이 구구절절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 타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집중력 저하와 산만함이란 개미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법을 알아보려는 작가의 심정이 바로 나의 것이었기에 그의 말은 더 설득력 있었다.
B. 집중력은 만들어지는 거야! 통제하라고!!
요한하리는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집중력이라는 인간의 정신이 무엇이며 어떻게 발생되는지 이야기하고 이런 인간의 심리와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라보는 두 가지 입장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 한 가지는 강화와 처벌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B,F.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1990)의 관점이다. 스키너는 주로 뇌의 행동 강화 실험에 대해 연구하였다. 일명 '스키너 상자(Skinner Box)'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행동주의 학파의 선구자이다. 스키너는 강화 훈련을 통해 동물의 어떤 행동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통제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보상만 제대로 한다면 동물은 어떤 특정 행동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행동주의로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고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관점에서 인간에겐 정신은 없다. 인간이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존재라는 신념은 모두 환상인 셈이다.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행동과 사고는 살면서 경험한 강화 훈련의 총합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집중력이란 정신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적 자극이나 보상에 의해 강화시킬 수도 약화시킬 수도 있는 행동이다.
사실이다. 외부적 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의 몸과 정신은 반응한다. 기술 발전에 따른 생활변화가 인간의 집중력을 빼앗아 간 것을 보면 스키너의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게다가 그의 말대로라면 도난당한 집중력을 찾아올 적당한 외부적 자극과 보상 방법을 생각해 낸다면 내가 겪고 있는 집중력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먼저 핸드폰을 좀 멀리하고 온라인 접속을 제한하는 디지털 디톡스와 더불어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 집중해 본다. 그리고 책 읽고 글 쓰고 포스팅하고 게다가 그것에 관한 타인들의 관심과 칭찬을 얻으면 더 열성적으로 그 일에 달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속적 집중력 획득엔 실패했다. 오히려 외부적 자극과 보상이 지속적으로 들어오지 않거나 줄어들면 일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이 낮아지는 부작용을 겪는다. 분명 외부적 보상과 동기로 만은 집나간 집중력을 찾기엔 뭔가 부족하다...
C. 그러지 말고 흐름에 올라타라
다행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심리학자가 있었던 듯하다. 『몰입 Flow』을 집필한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 1934-2021)는 인간 정신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는 심리학에 매료되어 심리학자가 된 인물이다. 그가 심리학 연구를 할 당시 스키너의 행동주의는 엄청나게 유행했던 이론이었다. 하지만 미하이는 인간의 정신과 심리를 공허한 기계적 반응 이상의 것으로 보려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예술가들이 창의적 예술행위 도중 강화와 처벌만으론 설명하지 못하는 깊은 최면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일종의 깊은 집중의 형태였다. 게다가 예술가들은 작품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는 작품이 완성된 후에 더 이상 결과물엔 미련을 두지 않았다. 타인들의 관심과 칭찬을 얻을 수 있는 완성된 결과물을 음미하기보다 오히려 예술가들은 외부적 자극이나 보상이 없었던 예술 활동 과정을 즐기는 듯했다. 예술행위에 집중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미하이에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흐름에 올라탔어요. flow~~~~!!”라고 표현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을 경험한거다. 미하이는 이처럼 비상한 집중력을 끌어내는 활동 상태를 ‘몰입 flow’이라 명명했다.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을 나는 ’몰입 경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by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그렇다.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은 진정한 집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데서 온 것이다. 이제껏 난 표면적 자극에 반응하는 얄팍한 집중력만 찾아 헤매고 있었는지 모른다. 질적이고 묵직하지만 순간적으로 나 자신조차 사라질 정도의 집중력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흐름에 올라타기가 어디 쉬운가? 과거 내가 그런 경험을 해보았던 적이 있었나? 눈에 보이는 보상과 결과가 없고 힘들어도 무언가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며 나의 몸과 정신이 반응해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던가? 있었다. 20대 후반 학교를 막 졸업하고 결혼 해 연년생으로 아이 둘이 태어났다. 인생에서 가장 벅찬 시기에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죽도록 힘들었다.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느라 사투를 벌였다. 그래야 공부할 시간을 사수할 수 있었기에.. 아이들을 재운 후 밤새워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고 나면 동이 훤하게 터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그 순간 마법이 일어난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보려고 책장을 덮고 잠자리에 누우면 피곤함과 고통보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뿌듯함과 행복함을 느낀다. 지금도 생생하다. 내 돈 내고 고생을 사서했지만 그토록 미친 듯이 행복했던 이유가 뭘까? 어쩌면 그 시절 그런 마법이 일어났던 건 힘들었지만 내가 진정으로 그 일에 몰입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몰입은 언제든 깨지기 쉽고 연약하다. 그리고 고도로 집중하는 그 순간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의미한 목표까지 가는 고통과 어려움을 뚫고 몰입해 본 경험이 반복적으로 많은 이들의 몰입은 매우 단단하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하고, 그러다보면 정작 눈 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하지만)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들을 돌아볼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는 몰입의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by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미하이는 야물딱진 몰입의 상태가 되려면 자신에게 유의미한 목표에 집중해 자기 능력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 붙여야한다 말한다. 몰입은 엄청난 내면 동력에서 비롯된 정신의 흐름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몰입의 경험을 누적시키면서 몰입하는 방법을 익힐 뿐 아니라 행복한 삶을 되새김질하는 몰입부자가 된다.
최근 현실과 온라인 세상을 오가며 정신없이 무의미한 행동을 하며 지루함과 죄책감에 허우적거렸다. 지금 난 자판 앞에 앉아 벌떡 일어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집나간 집중력을 되찾는 중이다. 역시 온전한 몰입은 힘들다. 하지만 점점 몰입되는 듯해 기분이 좋아진다.
아!!!!!!!! 벌써 밥해야 할 시간이다.
* 참고 문헌
『도둑맞은 집중력』, by 요한 하리, 김하현 역, 어크로스, 2023.
『몰입의 즐거움』,by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이희재 역, 해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