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 된 배경과 상황
10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결혼을 하며 한국에 들어오면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간의 경력과 노력이 아깝다면서 이것저것 문어발을 펼쳐놓고, 하나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일상.. 그렇게 어영부영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냥 전업주부가 된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 3년의 기간 동안 석사과정 4학기를 다니며 사업을 벌여보기도 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며, 더 이상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 있었다. 출산 후 조부모나 지인이 아무도 없는 지역에서 육아를 하면서, 선택이 아닌 닥쳐버린 현실 앞에 굴복하였고, 그렇게 전업주부가 되었다.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는 치열한 내적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그리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이육사, <꽃>(1946)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관계의 역학 안에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 결혼으로 묶인 가족 안에서도 완전히 평등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합의와 애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뿐… 그래서 때로는 나에게 불합리할 수도 있고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에 있어야 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은 바뀔 수도, 지속될 수도 있다.
전업주부가 된 지금, 남편은 정글 같은 사회생활에서의 싸움을 내 몫까지 같이 해내고 있다. 그리고 아내는 새로운 공동체의 실제적 주인이 된다. 내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일은 어쩌면 회사에서 한 직무를 맡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지만 말이다... 아내의 수고를 통해 집에서 더 편안하면 남편은 밖에 나가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르고, 또 각자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 다름이 때로는 불공평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혹은 맡은 역할의 차이로 인해 불공평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다름 혹은 불공평이 늘 한쪽에게만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상황에서의 어려움과 불편함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과도기적 시대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남녀 간의 역할과 대우가 극명히 달라졌다. 사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아들과 딸의 구분이 없었고, 호적에도 남녀 출생순으로 기록되던 게 일반적이었다. 재산상속도 균등하게 이뤄졌다. 조선후기가 되면서 중상농업의 발달에 따라, 계급이 무너지고 서민들의 의식 수준이 올라오게 되었다. 계급의 평등을 넘어 현대에 이르러 남녀의 평등을 주장하게 되었으나, 사회와 환경의 변화는 더디 온다.
스스로를 전업주부라고 인정하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는 정신없는 오전이 지나면 집을 정리하며 내 안의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하루를 보낸다. 브런치를 통해 주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개인의 갈등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나가려 한다. 그리고 기업의 살림을 담당하던 전직 회계전문가로서, 매뉴얼화하며 만들어온 살림하는데 조금 편해지는 팁을 나눠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