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내적갈등과 고민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이렇게 없었나…
나름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주부라는 직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입 전업주부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일단 절망과 무수한 반성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이다. 처음 살림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살림을 하면서 잘하는 것의 기준도 없고 성과와 보상체계도 없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족스러울 만큼 잘하는 것도 어렵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나오는 성과가 없는 그 일이 나에겐 너무 버거웠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스스로에 대한 우울감이 올라왔고, 주부를 무능력하게 여기는 사회적 시선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1989)
우리는 경쟁체계에 익숙해져 있다. 초중고, 대학, 그리고 취업의 모든 과정에서 경쟁에는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평가를 통해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목표를 세우고 달려갈 수 있는 성취의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무력하다고 느껴지는 주부의 시간은 기존의 경쟁시스템과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시스템 안으로 혼자 들어가야 하는 길이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내 살림을 꾸려가야 한다. 새로운 회사 하나를 설립해서 맨 땅에서 새로 일궈나가는 것과 그 과정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기틀이 잡히고 성장한 회사의 대표는 수익을 벌어들이고 사회의 인정도 받게 되지만, 한 가정의 주부는 그럴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우선 주부의 길에 들어서면, 사회에서는 경력단절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경력단절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은 주부직에서 다른 직으로 이직을 하려 할 때, 그 이전에 했던 경력들이 모두 무시된 채 새로운 직업의 신입처럼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동력을 잃게 되는 사회적 비용을 보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나오지만, 보통은 그것 또한 이전의 경력을 쉬는 개념으로 이어갈 때에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들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다시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남은 인생에 대한 주도적 결정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자극한다. 결국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한 불안감이 전업주부에게는 큰 불안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불확실한 인생에서 불안은 선택을 가로막고 정신을 갉아먹는다. 전업주부에게도 가장 어려운 장애물은 불안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에 대한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감수해야 하는 상황들이 싫었다. 결혼 전까지 삶의 최우선 순위라고 믿었던 커리어와, 당장 들어오는 월급을 손에서 내려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일 순위는 가정이 되었고, 그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부부 중 한 명의 커리어였다. 생리적으로 출산, 육아는 여성에게 최적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일을 포기하는 게 더 당연해 보였고, 이 선택은 100% 자의에 의한 선택은 아니기에 확신보다는 불안이 더 크게 동반되는 결정이었다.
주변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하지 말고, 나로 살라는 메시지를 많이 듣게 되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은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부정할 수 없는 고전이고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나의 내면이 단단해지고 성장해가야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통하고 서로 인정받고 인정할 때 더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주부에게도 남편과 가족들의 인정과 존경이 동반돼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도 집안일의 가치와 주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주부에 대해 오해했던 지난 시간을 반성해 본다. 부모님의 자녀로 그 가정에 속해있을 때, 엄마의 딸로 살면서 엄마의 직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직접 주부가 되어보니 참 서러운 순간들이 많이 생긴다. 무력하다고 질책하고 우울해하는 나 자신을 다독여 본다. ‘이제 불안을 내려놓고 한 걸음 내디뎌보자.‘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한 후, 많이 설레고 활력이 돋는 한 주를 보내며 두 번째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작은 코멘트에도 귀 기울여 듣고 회신하고 싶어요. 소통하고 싶으신 분들, 비슷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분들 댓글 남겨 주세요 :)